[독자광장] 결국은 ‘언어의 싸움’

조윤성 LA한국일보 논설위원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16 Jun 2017


몇 년 전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을 비판하면서 ‘대통령’이라는 호칭이 이런 폐해를 초래한 것일 수도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냥 ‘통령’이란 호칭에서도 강한 권력이 느껴지는 데 거기에 클 ‘대’자까지 붙여 놓았으니 명칭 자체가 이미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프레지던트’라는 영어 단어를 일본이 번역한 걸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는 이런 제도가 없다.

언어는 중립적이지 않다. 모든 낱말은 뇌의 프레임 회로를 통해 정의된다. 대통령이란 호칭을 들을 때 마다 우리 뇌는 ‘큰 권력을 가진 자’로서 대상을 자동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국민도 그렇게 여기고 대통령 역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민주주의’와 ‘대통령’이라는 호칭은 그리 훌륭한 조합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이미 반세기 이상 써온 호칭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불가능하다. 이제는 민주주의 의식과 가치로 언어적 프레임의 영향을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언어적 프레임을 떠올릴 때마다 아쉬운 또 하나의 단어는 ‘최저임금’이다. 최저임금은 ‘미니멈 웨이지’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고 이 번역은 표준어로 자리 잡았다. 새 정부가 약속한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당사자들 간 협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협의는 처음부터 삐걱대고 있다.

미니멈 웨이지의 취지로 볼 때 이 단어는 ‘최저임금’보다는 ‘최소임금’이라고 번역하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최저임금은 말 그대로 가장 낮은 상태의 임금을 뜻한다. 그러나 최소임금이라는 단어에는 어떤 수준 이상은 주어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성이 좀 더 강하게 함의돼 있다. 만약 그동안의 미니멈 웨이지 협상이 ‘최저임금’이 아닌 ‘최소임금’ 인상 논의가 됐더라면 그 과정은 좀 더 순조로웠을 것이란 상상을 해 본다.

최근 한국 정치권을 달궜던 이슈 가운데 하나는 일부 정치인들에게 쏟아진 문자메시지에 관한 논란이었다. 항의와 비난 메시지를 받은 정치인과 소속 정당은 이를 ‘문자폭탄’이라 부르며 맹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옹호하는 측은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보낸 의사 표현을 마치 테러인 양 묘사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맞서고 있다.

테크놀러지를 이용한 수많은 국민들의 동시다발적인 의사표현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의 차이는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자폭탄’ 논란이 커지자 여당의 한 정치인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시를 너무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며 ‘문자폭탄’ 대신 ‘문자행동’이라는 말을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같은 행위에 대한 표현임에도 ‘문자폭탄’과 ‘문자행동’은 상당히 다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표준화된 표현을 정하거나 강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니 정치적 입장과 필요에 따라 각자의 입맛대로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

이렇듯 언어가 우리 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그래서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투는 정치는 ‘언어의 싸움’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언어싸움에서는 대부분 보수가 우위를 보여 왔다. 부시행정부 시절 감세 조치에 붙은 ‘세금 구제’라는 호칭이 대표적이다. 구제라는 말을 갖다 씀으로써 감세(결국 부자들에게 대부분 혜택이 돌아가는)는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덧입히는데 성공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의 보수와 진보사이에 계속돼 온 싸움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진보는 거의 항상 열세였다. 진정성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전략은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5년 역시 반대세력과의 ‘말의 전쟁’이 될 것이다.(보수야당은 새 정부 인선에 대해 노무현 시절 단골로 써먹던 ‘코드인사’라는 말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 성패는 자신들의 정책을 얼마나 효과적인 언어 프레임으로 만들어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국국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 대북정책, 한미관계, 복지정책, 개헌 등 문재인 정부 5년을 규정할 굵직한 현안들은 결국 언어 프레임의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