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노는 것은 사치”, 김소일 ‘터치캐시 ATM POS’ 사장

김소일 ‘터치캐시 ATM POS’ 사장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13 Apr 2017

75세 나이에 전국 누비는 사업가 곳곳에 2,500대 설치…연매출 1천만 불 매년 실협 자녀 25명에 장학금 700불씩 크고 작은 한인행사 해마다 7만 불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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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M’이 탄생한 것은 1967년 영국 런던에서였다. 

‘Automatic Teller Machine(현금인출기)’은 주머니에 크레딧·데빗카드는 있으나 현찰이 필요할 때 영리하게 현찰을 내주는 일을 한다. 소매업에 따라서는 업소가 카드결제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를 피하기 위해서 현찰을 요구한다. 편리한 문명의 이기지만 공짜는 아니다. 

이런 편리를 주면서 이를 사업으로 연결해 성공한 사람으로 한인사회에서는 김소일 사장을 꼽을 수 있다.

2면 터치캐쉬 로고.jpg풀타임 직원 17명이 바쁘게 일하는 터치캐시(TouchCash ATM POS·820 Denison St. Suit 3. 마캄)는 거래실적으로 보면 캐나다에서 4번째로 크다. 

터치캐시가 현재 전국에 설치한 ATM기는 2,500대를 육박한다. 연간 1천만 달러의 매상이며 이것이 모두 수수료 수입이어서 700만~1천만 달러가 그로스(Gross) 소득이라고 김 사장은 사업내용을 스스럼 없이 밝힌다. 

이중에서 ATM(현금인출기) 1,300대, 데빗머신(일명 Interac, Debit: 현금거래, Credit: 외상거래)은 1,200대다. 터치캐시 수입은 이런 기계의 임대료와 이용한 고객이 내는 수수료다. 

올해 목표는 새 머신 500대를 추가 확보해서 전국적으로 총 3천대를 만든다는 목표에 가까이 가는 것이다. 

그가 17년 전인 2000년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본국서 온 친구의 권유 때문이었다. 김 사장은 20여년 간 편의점을 경영한 끝에 새롭게 비상할 새 사업을 찾던 중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더욱 빛내는 것은 버는 돈의 상당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하는데 있다. 그에게 돈이란 살았을 때 쓰다가 저 세상 갈 때는 놓고 간다는 순박한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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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타리오한인실업인협회 회원 업소 200곳이 그의 큰 고객이므로 김 사장은 해마다 실업인협회 자녀 25명에게 장학금을 준다. 올해로 8년째, 지금까지 젊은이 200명이 500~700달러씩 받았다.


장학금 외에 크고 작은 한인사회 행사를 후원한 터치캐시의 기부액은 연간 7만여 달러, 지금까지 합산하면 50만 달러가 넘는다. 

“고객의 80~90%가 한인이므로 어떤 보답을 해야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지난 8일 열린 아리랑시니어센터 모금만찬에서도 그는 3천 달러를 쾌척했다. 

은퇴 나이를 훨씬 넘은 75세지만 그는 이민 1세답게 “노는 것은 사치”라면서 위니펙, 캘거리 등 캐나다 전국을 직접 누빈다. 세일즈를 위해서 본인이 나설 때와 직원을 보낼 때가 다르다는 것. 

“기업은 생물과 같다. 성장하지 않으면 죽는다”라는 말을 직원들에게 늘 강조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같은 학년으로 지내던 학창시절이 1965년 끝나자 김 사장은 곧 산림청 공무원이 됐다. 9년 후인 74년 이민.

일본 출생이며 불교 성향이다. 평소 와인을 즐긴다. 오후 6시면 반드시 귀가, 저녁식사 후 부인 김숙열(스지) 여사와 함께 산책하고 독서하는 것으로 하루를 마친다. 

두 아들은 웹디자이너와 엔지니어로 있다. 집에서도 화를 내본적이 없는 온화한 성격이어서 말소리도 조용하다. 

그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음식 40번 씹기다. 초등교시절 좋아하던 여교사가 가르친 음식씹기를 늘 실천한다. 그래서인지 배탈 한 번 없이 위장은 항상 평화롭고 당뇨병 같은 노인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