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탑 스토리] 박광명 투병기 <2>

내가 어떻게 아직도 살아있죠?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14 Jun 2017

귀가 허락 위해 갖은 이유 내세워 내 고집에 꺾인 의사는‘하루 반’외출 허락 숨 가쁘게 토론토로 도망, 서니부룩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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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후 요양차 자메이카에서 몸이 앙상하다.

내가 의사가 요구한대로 해도 회복된다는 확신이 없었다. 생명을 6개월 또는 1년을 연장한다 해도 정신적 불안과 육체적 고통을 견디기가 무척 힘들 같았다. 간병하는 가족에게도 많은 부담을 주고 회복이 아니라 고통에 괴로워하면서 미이라처럼 말라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하는 것이 가족을 고문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다. 더군다나 현대 의학도 치료의 한계가 있다고 의사가 분명히 알려주지 않았나.

 

이런 상념에 사로잡히면서 이상구박사의 건강테이프가 자꾸 마음에 다가왔다. 거기서 가닥 빛을 보았다. 결론을 내야했다. 현대적 항암치료냐? 아니면 이상구의 자연치료냐?

나는 마리 토끼는 포기하고 마리 토기라도 잡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마음이 결정되자 가족과 충분히 의논후 알려주겠다고 의사에게 통고했다. 말에 의사는 대뜸 “치료는 환자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치료를 안받으면 당신은 죽는다”고 경고했다.

나는 퇴원 무척 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식도 일부를 자르고 음식을 위해서 만든 임시 파이프가 기관에 달라붙어 모금도 넘길 없었다. 먹은 음식물이 역류하지 않도록 음식통로를 좁게 만들다 보니 통로가 막힌 것이다. 침도 삼킬 없었다. 3일을 견디다 못해 다시 입원했다. 그후 5일간 재검사를 받느라고 모금의 물도 마시지 못하면서 시달렸다. 몸은 극도로 쇄약해졌다.

나는 다시 의사와 흥정을 시도했다. “치료를 감당할 체력이 되면 그때 다시 오겠다”고. “그러므로 3~4 주만 집으로 보내달라”고. 의사는 “걱정말라. 병원에서 1~2 동안 체력회복을 돕겠다.”고 하면서 내보내 주지 않았다.

나는 사업체를 이유로 내세웠다. 10일만 시간을 주면 업체를 정리하겠다”고. 의사는 “직장동료를 병원으로 불러라”라고 대답했다. ‘장군, 멍군’식이었다. 마이동풍馬耳東風하던 의사는 결국 내고집에 꺽였다. 그는 ‘하루 반’ 외출을 허락했다.

막상 병원을 나왔지만 뚜렷한 대책도 없으므로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이런 상태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할 일은 가족을 설득, 그들의 협조를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병원 치료를 거절하고 나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일이나면 어린 것들 셋과 함께 자기가 어떻게 이역 땅에서 살아가겠느냐면서 울었다. 나도 마음으로는 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병원은 전화를 걸어 “오후 5시까지 입원하라”고 통보했다. “만약 그때 안오면 앰블란스를 보내겠다”. 물에 빠진 사람 짚으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는 나를 수술한 집도의사에게 전화했더니 자기 사무실로 오라고 시간을 특별히 내주었다. “암이 임파선과 간에 옮겨갔다는데 병원치료가 도움이 되겠는가. 피할 방법은 없는가.”고 물었다.

의사는 이렇게 비유했다. 주위에 벽이 있는데 속에 쥐가 마리 있다. 그럼 쥐를 잡기 위해 벽을 모두 허물어버리면 쥐는 잡을 모르지만 벽은 모두 깨졌다. 라고. 빈대 마리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운다는 우리 속담과 같은 의미였다. 의사는 이어서 “항암 방사능 치료를 받느냐 거부하느냐는 환자의 결정이다. 당신 생명은 당신이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듣던 말과는 전혀 달랐다. “만약 당신이 처지면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질문에 그는 “나같으면 받는다. 그런 치료법은 대단히 무서운 극단적 방법이다”라고 설명했다.

집에 돌아오자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들어오라는 전화였다. 나는 5 이전에 도시를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서둘로 공항에 나가 주법이 다른 토론토행 비행기에 올랐다. 수술 의사가 예약해준 토론토 서니부룩 병원서 7일간 다시 검사를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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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명은

40 일본태생. 서독광원 근무, 74 토론토 이민, 1년반 거주하다가 76

에드몬튼으로 이주. 87 47 발병. 부인 이화순, 12. 뉴마켓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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