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훈칼럼] 끝의 시작

민경훈 LA한국일보 논설위원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15 Jun 2017


리처드 닉슨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인물이다. 그는 닉슨 재선위원회 돈을 받은 몇명의 인물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는 워터게이트 건물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기 위해 들어갔다 잡힌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물러났지만 그의 탄핵 사유는 주거 침입 지시가 아니었다.

1974년 7월 연방하원 법사위원회가 탄핵 사유로 채택한 것은 '사법 방해'와 '권력 남용' 그리고 '의회 모독'이었다. 1998년 연방 하원이 빌 클린턴을 탄핵 했을 때도 탄핵 사유는 클린턴이 르윈스키와 섹스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아니라 위증과 사법 방해였다. 클린턴이 애초에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깨끗이 인정하고 사과했더라면 탄핵에 갈 필요가 없는 문제였다. 

클린턴은 탄핵 위기 직전까지 몰리면서도 감히 자신을 수사하고 있는 케네스 스타 특별 검사를 해임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1973년 10월 20일 닉슨이 자신을 조사하던 아치볼드 콕스 특별 검사를 해임했다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콕스 해임이 닉슨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주 2,000만명의 미국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의 연방 의회 증언은 트럼프 행정부는 물론 미국 정치사에 한 페이지를 기록할 사건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이번 증언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다른 사람들을 물러가게 한 후 자신과 독대한 자리에서 러시아 대사와 만난 후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해 쫓겨난 마이클 플린 전 국가 안보 보좌관이 "좋은 사람"이라며 이에 대한 수사를 종결할 것을 "희망한다"면서 자신에 대한 충성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또 코미는 트럼프가 자신과 FBI를 모독했다며 자신이 FBI를 제대로 이끌지 못했고 부하 직원들의 신뢰를 잃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자신이 트럼프와 만난 후 메모를 작성한 것은 트럼프의 인격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했다.

트럼프는 코미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며 자신이 러시아 스캔들과 무관함이 입증됐다고 강변하고 있으나 공화당 내부에서도 이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분위기다. 청문회장에서 공화당 의원들은 트럼프 편을 들으려는 척 하기는 했으나 아무도 코미가 거짓말을 지어냈다는 주장을 펴지는 못했다. 트럼프와 코미 누가 더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큰가는 질문할 필요조차 없이 명백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코미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이보다 명백한 사법 방해와 권력 남용은 없다. 대통령 측근의 비리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라는 것이 사법 방해와 권력 남용이 아니라면 뭐가 사법 방해며 권력 남용인가.

물론 코미의 증언만으로 트럼프가 권좌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위해 특별 검사로 임명된 로버트 뮬러 전 FBI 국장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상태고 이것이 종결되려면 최소 몇 달, 길어지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통상 새 대통령이 당선되고 취임 후 6개월 동안은 가장 힘이 막강한 시기다. 로널드 레이건과 버락 오바마도 이 기간 동안 임기 중 업적의 상당 부분을 이뤄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트럼프는 이 기간을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린 보좌관과 이를 수사하던 FBI 국장 해임, 이로 인한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으로 보냈다. 이 때문에 주요 선거 공약이던 오바마케어 폐지와 대체, 세제 개혁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처지에 놓인채 관심밖으로 밀려났고 추진 동력도 상실된 상태다.

이렇게 어영부영 몇달 보내고 새해가 되면 중간 선거가 있다. 통상 중간 선거에서는 집권당이 패하는 것이 상례인데다 역대 대통령 중 도널드의 지지도가 사상 최저를 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공화당이 이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연방 상하원 중 한 곳에서라도 다수당을 차지하면 트럼럼프 탄핵 움직임은 더욱 활기를 띄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트럼프 시대는 끝났다고 봐도 된다. 훗날 역사가들이 미국 역사상 가장 무식하며 무능하고 부정직한 대통령이 어떻게 몰락했느냐를 기록할 때 그 시작은 아마도 코미의 해임과 의회 증언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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