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키우면 길이 열린다

바늘구멍 통과한 의지의 '워홀러'



  • 원미숙 (edit1@koreatimes.net) --
  • 14 Dec 2017

사표 낸 후 토론토 온 윤지영씨 언어·문화장벽 극복하고 취업 유명 화장품점서 바닥부터 배워 6개월 만에 본사 마케팅팀으로 저축 시작...목표는 MBA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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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어지는 게 사람 마음. 그러나 1989년생 윤지영(사진)씨는 모든 행동이 그 반대로 움직인다. 

한국 대기업 마케팅팀에 사표를 내고 워홀(워킹홀리데이)러가 됐고, 어렵게 찾은 일자리를 버리고 더 힘든 직장으로 갔다. 회사에서도 적당한 업무와 편안한 휴식 대신 '사서 고생'을 택했고, 결국 경영진의 눈에 띄어 유명 화장품회사 마케팅팀에 입성했다. 이 모든 게 1년 안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난해 6월 캐나다로 오기 전까지는 그녀도 꿈에 부풀어 있었다. 한국서 쌓은 마케팅 경력을 살려 외국회사에서 일해볼 심산으로 무려 50통이 넘는 이력서를 발송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교육받은 적이 없고 경력도 없고 영어도 부족한 그녀에게는 면접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지금은 추첨으로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워홀이 선착순 마감이었어요. 캐나다는 경쟁도 센 편이어서 어렵게 승인을 받았는데, 문제는 취직이 안 되는 거예요. 워홀 승인을 받으면 1년 내에 출국해야 하는데, 결국 만료 하루 전에 불안한 상태로 비행기를 탔어요.”

연락온 회사가 몇 곳 있기는 했지만 결국 좌절감만 더 키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가 “너는 캐나다 문화도 잘 모르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 없고, 영어도 못 한다”는 사장의 독설에 울면서 돌아오기도 했고, 마케팅 직종이라고 믿고 갔다가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다이렉트 마케팅직’이라고 해서 2차 면접까지 보고 어렵게 들어갔는데, 첫 출근하니 C유통업체 매장이더라고요. 장당 4달러씩 커미션을 주겠다며 제휴신용카드를 팔라는 거예요. 어차피 왔으니 하는 데까지 해보자 하고 버텼는데, 8시간 동안 달랑 두 장 팔았어요. 그마저도 하루 하고 그만뒀다고 돈도 못 받았고요.”

반복되는 좌절 끝에 지영씨는 마케팅의 꿈을 내려놓고 레스토랑에서 손님을 안내하는 일자리를 구했다. 처음에는 일의 종류를 떠나 ‘돈을 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쁘고 감사했다. 일도 생각보다 괜찮았다. 하루종일 서서 일해야 했고, 영어도 많이 써야 했지만 비슷한 것을 반복하다보니 적응도 금세 됐다.

“취직을 하니 안도감이 몰려왔어요. 일단, 집세는 낼 수 있게 됐으니까요. 그런데 며칠 지나고 나니 안도감이 더 불안하더라고요. 안주하게 될까봐.”

 

애써 마음을 다잡은 지영씨는 마케팅에 대한 정의를 조금 달리해봤다. 거창할 것 없이, 사실 손님의 마음을 읽고 얻는 것이 마케팅의 핵심이다.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새로운 기회가 보였다. 그래서 이직한 곳이 이튼센터의 유명 화장품 매장이었다. (편집자주: 브랜드 이름은 취재원의 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는다)  

“일단, 제가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손님의 취향을 파악한 뒤 그에 맞는 제품을 권하는 일련의 과정이 마음에 들었어요. 제품과 소비자의 최접점에서 경험을 쌓고 트렌드를 읽는 것도 좋았고요. 화장품 판매는 영어 난이도가 다소 높고, 제품 재고 관리도 해야 해서 레스토랑보다 더 두렵고 힘들긴 했어요.”

피고용자가 근무환경에 대처하는 자세들은 실로 제각각이다. 손님이 많으면 좋아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연신 짜증을 내는 직원도 있고, 시키는 일만 겨우 하는 직원이 있는 반면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해내는 직원도 있다.

지영씨는 손님이 많은 걸 즐기고, 손님이 뜸할 때 다른 직원들과 수다떠는 대신 창고에 가서 제품을 정리하고 매장을 쓸고 닦는 직원이었다. 본사 직원들이 오면 평소 메모해둔 질문들로 공세를 펼치며 열심히 제품을 공부하는 모범생이기도 했다.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나니 매장 문을 열고 닫는 ‘키홀더’ 권한을 주더라고요. 더 열심히 했더니 네 달 됐을 때 부점장으로 승진을 시켜줬어요. 본사 마케팅팀 직원들이 오면 하도 질문을 많이 하니까, 매장에 특이한 직원이 있다는 소문이 본사에까지 퍼졌대요. 6개월 됐을 때 본사로부터 마케팅팀에 자리가 났으니 인터뷰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원하던 직종의 회사에 안착한 그는 지금도 한국에서처럼 열심히 또 바쁘게 지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불필요한 노동을 강요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개인의 생활을 존중해주는 캐나다의 직장문화에 그는 매우 흡족해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의지의 지영씨'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학비가 비싸서 유학생이 아닌 워홀러로 올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부터 열심히 돈을 모아 마케팅 MBA 과정에 도전할 계획이라고.    

“지난 11월부터 조금씩 저축을 시작했어요. 언제 그 많은 학비를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꿈은 크게 가지고 있으려고요. 되든 안 되든 꿈을 꽉 쥐고 있어야, 제 몸이 조금씩이라도 그 쪽을 향해 움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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