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원은 어떻게 시작됐나 4

경주는 스피드와 끈기의 대결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01 Nov 2018

제1회 대회 평균시속 24킬로, 48시간 달려 전용트랙 없이 마을 도로이용 보호벽 없는 구경꾼들 치이고


이태리 알파로메오 7 대회 6 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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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포뮬러원은 어떻게 시작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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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처음으로라는 움직이는 물체가 등장한 10 만에 인간은 경쟁을 시작했다. 스피드 경주에서 이겨야 하는 본능을 타고났나 보다.

1895611 스피드를 자랑하던 세계 최고의 25대와 이를 운전할 운전자들이 파리의 뽀떼 마이옷을 떠났다. 사상 경주였다. 경주는 파리에서 보르도Bordeaux까지 1,190킬로(토론토에서 뉴욕까지와 비슷) 왕복하는 대회였으니 차의 성능도 좋아야 하지만 운전자의 끈기와 인내심이 크게 요구됐다.

차들은 마을을 지나고 도시들을 관통해서 농장 울퉁불퉁한 작은 길을 달렸다.

보르도에 먼저 도착한 운전자는 프랑스 엔지니어 에밀 르바소였다. 운전자도 도착했는데 사람들은 그를 찾을 없었다. 그는 너무 지쳐서 호텔에서 자고 있었다. 르바소는 샌드위치를 두개 먹고 약간 다리운동을 왔던 길을 따라 파리로 향했다.

놀랄 만한 뉴스는 그보다 먼저 파리에 전해졌다(전보통신). 그가 613 모습을 들어내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람이 나와서 그를 열광적으로 맞았다. 그의 기록은 48시간 47분이었다. 이틀이 꼬박 소요된 . 무엇보다 그는 번째 차보다 6시간이나 앞섰다. 그의 속도? 시속 24킬로!

번째 경주는 프랑스 자동차회사들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기차가 아니라 자동차가 여행하기에 빠르고 좋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해서 였다. .

1901 차들은 지금 같은 둥근 운전대를 가졌고 바퀴에는 공기를 넣자 최고 시속은 120킬로까지 올라갔다. 스피드가 오를수록 문제가 따라붙었다. 사고가 많아진 것이다. 그래도 차의 인기는 치솟았다. 아마 요즘 셀폰이 나올 때마다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마음과 같을 것이다.

고든 베냇이라는 미국 신문사 발행인은 1900 파리에서 고든베냇 대회를 열었다. 이때부터 경주는 더욱 국제적 행사가 됐다. 유럽은 물론 미국에서도 운전자들이 참가했다. 이런 대회를 통해서 프랑스의 르노Renault회사는 성장, 오늘을 만들었다.

1903 프랑스에서는 13천대가 팔렸다. 이때 파리마드리드(스페인) 왕복 국제경기가 벌어져 수많은 구경꾼이 도로변에 나왔다. 이들은 앞에서 쌩쌩 달려가는 차들을 보면서 흥분했다. 그러나 구경꾼 앞에는 방어벽이 없었고 사람들은 달러오는 차를 보려고 길로 나섰다가 차하는 사이 사고를 당했다. 이래서 운전자 3, 기술자 2명이 시골길에서 죽었다. 이보다 사고가 프랑스 샤텔러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대회 아기가 길로 걸어나가자 이를 이웃 사람이 그를 잡으려고 뛰어나갔으나 때는 늦었다. 둘은 달려오던 경주차를 피하지 못했다. 차는 이들을 넘어 도로변 관중들을 덮쳐 1명이 죽고 구경꾼들이 부상당했다. 모두 3명의 목숨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경주는 중단되고 모든 차들은 기차에 실려 파리로 돌아왔다. 이것이 도시간 경주의 마지막이었다.

이후부터는 서킷Circuit 등장한다. 경주는 반드시 안에서만 하도록. 이것은 시골길로 들어가거나 안전보호대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경주 중에는 사람들이나 가축들, 다른 차들은 길에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906 1 프랑스 그랑프리(대상大賞)대회가 르망Le Mans타운 주변 104킬로미터의 시골길에서 열렸고 1908년에는 미국 조지아주 사반나에서 미국 그랑프리가 열렸다. 미국 관중들은 유럽서 운전자들이 6위까지의 상을 도맡는 것을 가슴 아픈 심정으로 받아들였다.

경주는 1 대전 중인 1914 - 18년에는 중단됐다. 전쟁 이전 경주차들은 차체가 크고 무거워서 엄청나게 14 - 18리터 엔진을 얹었다. 전쟁 이후 피아트나 알파 로메오같은 이태리 회사들은 디자인을 크게 발전시켰다. 엔진은 작지만 힘은 셌고 결과적으로 차체가 가벼웠다. 후에 아돌프 히틀러 나치 수령은 독일 자동차회사를 재정지원, 독일차들이 세계 넘버 원임을 드러내게 했다. 덕택에 1939 멀세데즈 벤츠나 오토유니온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차들을 생산했다. 이들의 최대 시속은 무려 300킬로나 됐다. 그러나 2 대전 중이어서 경주는 1946년까지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때인 1948 국제자동차연맹FIA 경주에 대한 규정(formula) 만들었는데 이것이 포뮬러원 Formula 1이다. 당시 차들은 4.5리터 엔진이나 1.5리터에 수퍼차저, 가지 하나를 가질 있었다. [수퍼차저: 공기를 엔진에 밀어 넣어 휘발유를 완전연소시키는 장치]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 포뮬러원 세계참피온대회가 시작됐다. 이태리 알파로메오는 7 대회중 6 대회에서 우승, 전통적 이름을 날렸다. 진짜 경쟁은 알파로메오 운전선수 주세페 파리나 알젠틴의 후안 팡기오 간의 대결이었다. 파니나는 세계 최초의 세계참피온이 됐으나 다음해 타이틀을 팡기오에게 빼았겼다. 세계인들이 이들 얘기에 열광했다.

50 포뮬러원 대회때부터 차의 기계구조가 대폭 개선됐다. 차체는 작아졌고 빠르며 운전자 보호기능이 강화됐다. 공기저항도 줄었다. 이래서 매년 차가 나오고 참피온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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