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사원 특집(1)

40년이 지나도 비극의 끝은 없다 (1)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0 Dec 2018


인민사원(Peoples Temple of the Disciples of Christ)은 짐 존스(목사)가 1955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에서 시작한 종교운동이다. 존스는 기독교 교리에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 사상을 가미하고 인종차별이 없는 평등한 인권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교리를 전파했다. 한때 그는 3천~5천여 명의 신자들을 거느렸고 좌파 정치인들과 교류했다. 본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겼다가 비난이 심해지자 남미 가이아나에 새로운 사원을 창설했다. 40년 전인 1978년 11월 18일 신자들과 봉사자 등 918명(흑인이 대부분)이 존스 목사의 유도와 명령으로 집단 자살 내지 사살됐다. 이를 조지타운 대학살이라 부른다. 이 사건은 2001년 9월11일 아랍 테러리스트의 뉴욕 공격(3천여 명 사망) 이전의 미국인 관련 참사로는 최대의 사건이었다. 공산주의자였던 존스는 52년 기독교 교회의 학생 목회자였다가 흑인 교인을 수용했다는 이유로 교회서 쫓겨난 이후 자신의 교회를 설립했다. 그의 인민사원은 50~60년대 서울 근처의 박태선 장로가 세운 신앙촌(현재 천부교. 부산 이주)과 유사했다.

본보는 창사 47주년을 맞아서

짐 존스 목사의 인민사원 사건을 수회에 걸쳐 재조명 한다.

인민사원컴파운드 copy.jpg

인민사원 컴파운드

오클랜드=캘리포니아가이아나 수도 존스타운(Jones Town) 부근에서 지낸 시간은 마이크 투셰트(Mike Touchette)의 황금기였다. 잠시동안이었지만.

 

인디애나 주 출신의 21세 젊은이는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남아메리카 북단 가이아나(Guyana)에서 정글을 개척한 것에 큰 자부심을 가졌다. 불도저 운전법을 매뉴얼 만으로 배워 인민사원(Peoples Temple : 종교단체)을 건설하느라고 신도들과 함께 뜨겁고 습한 곳에서 살았다. 길을 닦고 집터를 마련하는 역할이 그의 몫이었다. 목조건물로 지붕은 강철로 덮었다. 900명이 넘는 신자들은 신석기 시대의 농경인처럼 살았으나 그들에게는 큰 식당과 깨끗한 집, 학교, 의료시설, 그리고 먹고 남을 만한 식량들이 있었다.

‘우리는 빈손으로 4년 만에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었다’고 투셰트는 회상한다. 이제는 손자를 둔 65세의 할아버지로 마이애미에서 거의 30년을 일했다. “내가 존스타운에 있었을 때는 짐(존스 목사)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는 내 인생 최고의 날들이었다.”

그가 말하는 짐 존스 목사는 지도력은 있으나 변덕스럽고 성격이 매우 포악했다. 인민사원(Peoples Temple)을 건설했다가 파괴한 장본인이다.

1978년 11월 18일 미국 국가대표로 방문한 레오 라이언(Leo Ryan) 하원의원 등 5명이 공항활주로 근처에서 사살됐다. 그 뒤 대량 학살과 수백 명의 집단 자살을 유도, 40년이 지난 지금 상상도 못할 공포와 비극을 남겼다.

몇 명의 신자는 살아남았다. 일부는 가이아나를 빠져나왔거나 마침 존스타운에 외출 중이던 사람들이었다. 사원 단지에서 자란 신도들은 가졌던 모든 것을 잃었다. 교회, 직장, 집,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과 친구들.

생존자들은 그때부터 40여 년간 존스목사의 범죄를 방조했다는 후회와 죄책감에 시달렸다. 목사는 여러 인종이 조화롭게 예배하는 교회, 사회주의적 공동사회 건설을 이상으로 하는 인민사원 건설, 종교적 장사술로 사람들을 모았다.

 

버클리의 아이(Child of Berkeley)

* 역주: 버클리는 캘리포니아주의 도시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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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단 빌체즈

조단 빌체즈(Jordan Vilchez)의 부모는 1960년대 버클리 시에 살던 진보주의자였다. 아버지는 아프리카계 미국인(흑인)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계의 혼혈이었다. 그들은 빌체즈가 6세가 되던 무렵 이혼했다.

가족은 어느 날 친구로부터 인민사원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들은 이들 포도밭 구역 안에 건설된 커뮤니티로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의 언니가 23세 때 인민사원에 합류하자 12세였던 빌체즈 또한 그를 따랐다.

“사원은 내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사원의 이상적인 지향에 헌신하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발견했다. 16세 때 그는 기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에 들었다. 그런데 회의는 이상하게도 교회업무와 섹스이야기, 존스 목사에 대한 아첨이 대부분이었다. “우리의 이상이라 생각했던 것이 실은 목사를 위한 것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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