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사원 (2)

기독교서 희망 찾던 흑인들이 주 피해자 (2)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7 Dec 2018

목사 보좌관은 욕실서 아이 셋 죽이고 자기도 자살 친아들 스테판은 예배모습 보고 “모두들 미쳤다” 생각


고등학교를 끝내지 않고 빌체즈는 샌프란시스코 사원으로 이주했다. 1977년 뉴 웨스트 잡지는 사원의 폭행과 학대를 폭로했다. 사원은 재빨리 빌체즈를 존스타운으로 보냈다. 그가 더 이상 사실을 알지 못 하도록.

빌체즈는 혹독한 노동과 밤을 새우며 마세테(긴 칼)를 들고 존재하지도 않는 가상의 적과 싸우는 교육이 싫었다. 이를 알게된 사원은 그를 수도 조지타운에 보내 후원금을 모금 하도록 했다.

11월18일, 믿기 어려운 라디오 메세지를 받았다. 집단살인과 집단자살이 150마일(약 24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인민사원에서 일어났다는 뉴스였다.

“광신적인 목사의 보좌관이 내게도 자살하라고 명령했다.”

몇 분 후 보좌관과 그의 세 아이들이 욕실에서 칼로 목을 베고 자살했다. 수년간 그는 목사 집단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다. “모두가 목사의 범행에 가담했고 그렇기에 그런 참사가 일어났던 것이다. ”

그후 빌체즈는 사설 범죄연구소에서 사무관으로 20년 가량 근무하다가 61세 무렵부터 는 그림을 그려 생계를 잇는다.

지난 해 그는 폐허가 된 사원을 방문했다. 철물점이 있던 곳에는 녹슨 장비들이 떨어져 있었고 많은 신자가 죽은 누각이 있었던 곳은 흔적도 없었다. 그의 두 자매들과 두 조카가 이 자리에서 죽었다.

“21세때 여길 떠났다. 당시엔 내 일부를 두고 떠나는 것 같았다”, “이젠 두고 간 나의 일부를 되찾고 이곳에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싶다.”

 

존스의 첫 아이(The Jones First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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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존스

인민사원의 예배는 겉으로 보기엔 열광적이었으나 스테판 존스(Stephan Gandhi Jones)는 언제나 의구심이 들었다. “모두들 미쳤다”고 그는 생각했다.

스테판의 부모는 바로 존스 목사와 사모 마르셀린이다. 사원은 스테판 인생의 전부였다. 인디애나 주와 캘로포니아 주 사원에 살 동안에도 그랬다.

“특이하고 매력적인 것들에 우린 눈이 멀었다. 그때 아버지는 섹스와 약물에 중독되었다”고 기억했다.

샌프란시스코 고등학교의 학생이었던 스테판은 존스타운 건설에 투입됐다. 존스타운 인민사원은 인종차별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곳이라 여겨졌다.

스테판은 농구장을 만들고 팀을 조직했다. 하원 조사단이 사원에 오기 전 그의 농구팀은 조지타운에서 가이아나 국가대표팀과 경기를 하는 중이었다.

목사가 농구팀에게 돌아올 것을 명령하자 선수들은 명령에 반기를 들었다. 스테판은 겁에 질려 아버지가 가끔 말한 ‘혁명적 자살’에 동참할 수 없었다.

 

카이투마 공항 활주로에서 사원 신자들은 미국 하원의원 1명, 기자 3명 및 사원 탈주자 1명을 사살했다. 그 뒤 목사는 포도맛이 나는 음료에 독물을 타서 아이들부터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렇게 해서 신도들이 삶의 의욕을 잃도록 유도했다.

스테판과 그의 농구팀은 그들이 사원에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거기 있었다면 그의 명령에 대들었겠죠. 활주로 살인사건 때문에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겁니다.”

3명의 딸을 두고 가구 회사에서 일하는 스테판은 수년 간을 악몽 속에서 보내며 약물에 의존했다. “난 자신을 포기했고 아버지와 그의 일당에 대한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이를 악물곤 했다. 그러나 그에게 동정심과 다른 미덕을 가르쳐 준 아버지에 대한 애정이 가끔씩 드러났다. 사원 희생자중에는 아이들이 300여 명이나 됐다.

사람들은 어떻게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묻는데 내 대답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다.”

 

프레스노에서 온 9학년 아이

(Ninth Grader from Fres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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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스미스

유진 스미스(Eugene Smith)는 그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어머니는 기독교 교회를 다니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고 프레스노(칼리포니아주)에서 예배에 참가한 뒤 존스 목사에게 푹 빠졌다. 어머니는 목사에게 집을 헌납하고 샌프란시스코 사원으로 이사했다.

스미스는 18세 때 인민사원 건설노동자로 일했다. 그때 16세였던 가수 올리 와이드먼(Ollie Wideman)의 결혼승락을 사원으로부터 받았다. 와이드먼이 임신하자 수도 존스타운으로 보내졌고 스미스는 동행이 거부되었다.

스미스가 존스타운에서 그의 어머니와 아내를 만났을 때 아내는 임신 8개월째였다.

목사와의 재회는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목사는 존스타운에 같이 가기로 한 3명의 신도가 지각했다고 야단쳤다. 그들은 심하게 얻어맞았고 24시간 내내 강제노역에 동원되었다.

“목사는 존스타운에 가면 육체적 체벌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는데 한 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약속을 어겼다." 얻어맞았던 스미스의 증언이다. 첫 아이 마틴 루터 스미스(Martin Luther Smith)가 태어나자 생활이 조금 괜찮아졌다. 스미스는 나무를 베는 벌목장에서, 아내는 식물원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의 불만은 쌓여갔다.

그가 조지타운에 가서 보급물자 운송을 명령받았을 때 스미스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 탈출을 계획했다. 아내와 사원 소속의 다른 가수들도 공연을 위해 곧 조지타운에 파견될 예정이었다. 그는 가족을 데리고 미국대사관으로 피신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가수들은 라이언 하원의원 앞에서 공연하려고 사원에 남았고 그의 가족들도 그곳에 남았다. 이날 벌어진 활주로 참사 때문에 스미스는 아내와, 아들, 어머니까지 모두 잃었다.

“우는 것 밖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스미스의 회상이다.

스미스는 22년간 캘리포니아주 교통국에서 일하다가 2015년 은퇴했다. 61세가 된 그는 재혼하지 않았고 마틴 루터 유진의 유일한 자식이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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