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마크 다는 날 꿈꾼다"

캐나다프로축구 첫 용병 손용찬



  • 김용호 (yongho@koreatimes.net) --
  • 17 Jan 2019

20여 차례 공개테스트 도전 1,400여 도전자 중 체력 3위 이내 필리핀서 불우어린이 돕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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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본보를 방문한 FC에드먼튼 소속 손용찬(왼쪽) 선수가 자신의 축구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도전했고, 도전하고 있으며, 도전을 향해 가고 있다.

오는 4월 출범하는 캐나다프로축구 ‘캐네디언프리미어리그(CPL)’에 도전장을 낸 손용찬(28)의 이야기다. 

그는 지난달 캐나다프로리그 사상 첫 용병으로 FC에드먼튼에 둥지를 틀었다(2018년 12월15일자 A1면).

 

손 선수는 지난 11일 본보와 단독 인터뷰에서 “축구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꾸준히 훈련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자세가 캐나다 진출에 성공한 이유”라고 말했다.

부산 출신으로 경남 진주에서 성장한 손 선수가 축구화를 신은 것은 초등학교 5학년 때다.

2002년 한일월드컵의 열기로 한반도가 뜨겁던 시절, 그는 양궁부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축구의 매력에 빠졌고 합숙소가 있는 축구부에 들어가게 됐다. 

그는 “나는 결코 기량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실패도 많이 경험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그는 한국국제대 4학년 때 축구화를 잠시 벗었다. 축구가 자신에게 맞는지 회의가 들었던 것. 1년 가까이 팀을 떠나 일반 대학생처럼 생활했다. 그러나 방황을 끝내고 다시 축구로 돌아갔다. 한국의 2부와 3부리그 등 닥치는 대로 테스트를 받았다. 소속팀이 없었기 때문에 정식으로 공개테스트 오퍼를 받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무작정 팀 훈련장으로 찾아가는 열정을 불살랐다.

이때 필리핀에서 한국 감독이 성실한 한국선수를 찾는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해외 진출에 성공하기까지 경험한 입단 테스트만 20여 차례. 

손용찬은 필리핀에서 2014년 이후 3년간 활약했고, 2017년 싱가포르 리그와 2018년 인도 리그에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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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프로리그 경기 도중 드리블 하고 있는 손용찬.

그가 뛰었던 동남아 팀들은 모두 소속 리그에서 우승후보들이었다. 때문에 AFC컵에 자주 출전하면서 국제경기에도 익숙해졌다.

손용찬은 “동남아 3개리그를 뛰면서 문화적 포용성을 배웠다.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힘을 키운 것”이라면서 “필리핀·인도·싱가포르 등이 모두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밑바닥 영어도 몸으로 익혔다. 최근 캐나다 프로리그 진출 이후 에드먼튼에서 입단식을 하거나 캐나다 언론과 인터뷰도 통역의 큰 도움 없이 해냈다”고 말했다.

그가 리그 최고 수준의 연봉을 받던 동남아 리그를 벗어나 캐나다 진출을 꿈꾼 것은 북미의 메이저리그프로축구(MLS) 또는 유럽무대 이적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는 동남아에서 7만~12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세금을 제한 액수이고, 자동차·주택 등도 모두 팀에서 제공받았다. 

그는 에드먼튼에서도 팀 최고 수준의 연봉을 약속 받았지만 “이제 출범하는 캐나다리그는 동남아보다 연봉 면에서 적다. 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으로 캐나다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4월 말부터 시작하는 캐나다 프로축구는 10월까지 총 4라운드로 시즌을 치른다. 중간에 FA컵까지 포함하면 올해 30여 경기를 갖는다.

캐나다 프로리그 출범을 앞두고 작년 10월 토론토에서 열린 공개 테스트에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권 선수들도 여럿 도전했다. 공개테스트에 응한 1,400여 명의 도전자 가운데 손용찬은 3위 이내의 강철 체력을 자랑했다. 그는 “충분히 준비돼 있었고 어쩌면 다소 무모한 자신감이 캐나다로 이끌었다”면서 “언젠가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빌 날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토론토에 머물면서 꾸준히 체력관리를 하고 있다. 3월1일 시작하는 팀 공식 훈련까지 최고의 몸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설탕이 많이 함유된 음식이나 튀김 등은 가능하면 입에 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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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토에 머물면서도 한인K리그 레드데블스 팀에 소속돼 매주 수요일 훈련을 하고 토요일에는 실내축구로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FC에드먼튼과 계약했지만 그는 애초 한인들이 많이 사는 토론토 북부를 연고로 하는 York9팀의 구애를 받았다.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리그 사무국이 선수선발을 자유계약이 아닌 드래프트로 바꾸면서 진로가 에드먼튼으로 정해졌다.

그는 “새벽 3시쯤 에드먼튼 감독에게 전화를 받았다.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는데 반드시 너를 지명할 것'이라는 통보였다. 에드먼튼은 이미 NASL이라는 메이저리그 2부리그 수준의 팀을 운영 중인 곳으로, 프로축구팀의 골격을 갖춘 곳이었다. 계약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의 유니폼 등 번호는 한국 대표팀의 에이스 손흥민과 같은 7번이며, 새겨진 이름도 SON이다.

손용찬은 “토론토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는데 한인 한 분이 알아보고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알고 보니 캐나다한국일보 애독자였다”며 웃었다.

그는 필리핀에서 뛸 당시 선행으로 유명했다. 가난한 아이들의 학비를 대납했고, 돈이 없어서 급한 수술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 환자들의 병원비도 지원했다. 그의 선행은 캐나다까지 알려져 현재 우연히 만난 스카보로의 필리핀 이민자 가정에서 가족같은 대우를 받으며 머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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