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함에도

소설가  김외숙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 11 Feb 2019


하필이면 눈 폭풍을 앞두고 장거리 운전을 해야 해서 나는 걱정을 하는데 딸은 걱정 말라고만 했다. 매사추세츠 집에서 새벽 5시에 출발한 딸이 오후 2시 경에 나이아가라 온 더 레이크에 도착했으니 혼자서 9시간을 운전해 당도한 셈이다. 오면서 날씨를 체크하니 아직 괜찮다고 해서 눈 폭풍 만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두 번 휴게소에 들린 일 외에는 앞만 보고 달렸다고 했다. 

눈 수술을 해야 한 나 때문에 나선 길이었다. 

집에 들어서면서 딸은 한 아름 짐 보따리를 풀었는데 그 속에서 아니나 다를까 또 그 짐이 따라 나왔다. 딸이 내 집을 찾을 때마다 안고 오는 대바늘과 털실 꾸러미였다. 내가 딸과 가족의 인연을 맺은 지 열 여섯 해가 되었는데 처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만날 때마다 뜨개질을 손에 들고 있었으니 날 만나기 전부터 시작되었을 뜨개질은 아무래도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딸은 밀린 이야기를 하면서도, 티브이를 보면서도, 그리고 차를 마시면서도 뜨개질 거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올 해는 한 가지 색이 아닌, 알록달록한 색깔의 털실 뭉치였는데 때로는 식구들이 입지 않는 스웨터를 풀어 그 실을 다시 이용하지만 대부분 새로 산다고 했다. 

 그 뜨개질로 딸이 식구들을 위해 목도리나 장갑 등, 겨울 용품을 만든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냥  A4용지 반 장 정도 크기의 사각형 조각들을 만드는데 놀지 않고 코를 꿰는 딸의 손놀림에 따라 털실은 사각형이 되고 일정한 크기가 되면 다른 사각형이 또 시작되는 것이다.

 “이렇게 지극정성인데 그들은 왜 원수로 생각할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예요.”

 딸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했다.

매사추세츠에 사는  딸은 Christian Friend of Korea 라는 단체에서 후원하고 있는 

북한 환자 돕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사시사철 뜨개질 조각을 만들어 그것을 북한의 결핵병원에 보내면 그곳 환자들이 미국에서 간 조각들을 이어서 이불을 만들고 만든 이불은 또 필요한 병원에, 환자들에게 보내진다는 것이다. 환자들이 덮을 이불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이불이 없다니, 북한이 그렇게까지 가난한가? 정부나 가족이 다 가난한 탓에 수형자들이 이부자리 없이 자야하던 몽골의 그 감옥 사정과 다르지 않았다. 

오래 전, 내 짝 제임스 힐스 목사를 따라 간 몽골의 그 감옥은 특히 젊은 수형자들을 수용하던 곳으로,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자동차로 서너 시간을 더 달려야 당도할 수 있던, 끝없이 푸른 풀만 무성하던 벌판에 위치해 있었다. 감옥 아닌 다른 건물은 주위에 없어서, 그리고 망망한 평원이어서 행여 탈출한다고 해도 숨을 곳도 걸어서는 당도할 곳도 없을 것처럼 외진 곳이었다. 

우리가 당도했을 때 검게 탄 얼굴의 젊은이들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돌을 쪼고 깎고 다듬어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묵묵히 부처를 만들고 예수 형상을 만들기도 하면서 감옥에서의 지난한 시간을 함께 깎아내고 있었다. 

그들의 숙소인 큰 홀 같던 방에는 이층 철제 침대들이 나란히 있었는데 대부분의 침대에는 하다못해 홑이불도 없었다. 정부나 가족이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400명이 넘는 수형자의 절반이 덮을 것이 없다고 했다.

곧 다가올 혹독한 몽골의 추위에 그대로 방치될 젊은이들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아무리 죄를 지었기로, 그래서 벌을 주더라도 먹이고 입히고 잠은 제대로 재워야 할 거 아닌가. 

따뜻한 잠자리를 위한 작업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그 여름 가기 전에 마무리 되었다. 

우리가 그 곳을 방문한 이유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딸은 아버지와 조근 조근 이야기를 나누며 손은 바지런히 털실 코를 꿰고 있다. 여차하면 미사일 날리겠다며 엄포를 놓든 말든 딸의 관심은 그 땅의 아픈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다. 

참 따뜻하지 않은가, 털실로 조각을 만드는 사람도 태평양을 건너가는 그 조각들을 받아 아픈 몸으로 이불을 만드는 그 나라의 사람들도.  

사람 심정 다르지 않아서 한 번도 만난 적 없어도 따스함은 그렇게 서로 통하는 것이다. 

 

아픈 사람이든 죄를 지었든 몸은 따뜻하게 보호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들은 아는데 

정작으로 알아야 할 지도자들은 왜 모를까? 

그러함에도 딸이 뜨개질을 멈추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더 보기 작성일
지도자와 모성사이 06 Mar 2019
진실의 얼굴 19 Feb 2019
그러함에도 11 Feb 2019
갇혔던 그 때 28 Jan 2019
남은 자의 겨울아침 단상 21 Jan 2019
우리는 갑이다 09 Jan 2019

Video AD

댓글을 달아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