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스파이들(2) 켄지 도이하라(추가편)

中 침략에 다리 놓은 '만주의 로렌스'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koreatimes.net) --
  • 12 Jun 2019

청 마지막 황제 푸이 톈진으로 빼내고... 허베이성엔 친일 괴뢰정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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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바구니에 독사…푸이 탈출과 만주국 설립 공작

스파이 매스터 켄지가 펑톈 특무기관장으로 취임한 직후 만주사변(1931년 9월18일)이 발생했다. 장쭤린 폭사 이후 반일 전선이 형성되자 일본은 이를 만주 식민지화를 위한 절호의 기회로 이주했다.
일본은 펑톈 외곽의 류타오후(柳條湖) 지역 철도를 폭파하고 나서 이를 중국 측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철도보호를 구실로 군사행동에 나서면서 중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사건 직후 중국의 호소에 따라 국제연맹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조사단 파견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고 일본군의 철수를 권고했다. 예상대로 일본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켄지는 이런 국제적 압력과 간섭을 배제하는 비밀공작에 착수했다. 그는 만주에서 발생한 모든 소란이 전적으로 지역주민간의 알력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꾸며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가 맨 먼저 착수한 공작은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傅儀)를 만주국 황제로 만드는 것이었다.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푸이는 1924년 베이징을 점령한 군벌 펑위샹(馮玉祥)에 의해 폐위된 이듬해부터 톈진의 일본 거주민 지역에서 거주, 켄지와도 친분이 있었다. 그는 푸이를 집요하게 설득했으나 푸이는 일본의 제의를 선뜻 수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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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지는 해결책으로 과일 바구니를 고안했다. 
어느 날 푸이의 처소 현관문 앞에 먹음직한 과일이 가득한 바구니가 쪽지와 함께 발견됐다. 하인으로부터 바구니를 전달받은 그가 더미를 헤쳐보는 순간 독사가 머리를 내밀었다. 

푸이가 깜작 놀라자 켄지가 다가왔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조직의 살해 표적이 됐으니 톈진 탈출이 시급하다"고 설득했다. 푸이와 절친한 가와시마 요시코(川島芳子, 본명 金壁輝)도 거들었다. 그는 청 왕조 핏줄이지만 실제로는 일본군 첩보기관의 만주계 첩보장교였다.

푸이는 두 사람에 의해 배를 타고 만주에 도착했다. 아무런 실권이 없는 만주국 황제에 즉위했다. 톈진 탈출 장면은 영화 '마지막 황제'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훗날 전범 재판정에서 켄지는 푸이 탈출 공작이 외부에 노출될 경우 그가 승선한 배를 폭파할 계획이었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1개 첩보부대장이었으나 켄지는 만주국 건립의 숨은 주역이었다. 


*중국 침략의 눈과 귀…각종 모략과 파괴 공작  

일본은 신생 만주국군의 훈련과 보호를 빌미로 15만 명 규모의 일본군, 1만8천 명의 경찰 및 4천 명의 헌병으로 이뤄진 병력을 만주에 증파했다. 잇따른 공작 성공의 공로로 대망의 별을 단 켄지는 일본 관동군 특무대장으로 영전했다.

그는 중국과의 본격적인 전쟁에 앞서 화베이(華北) 분리 공작을 추진했다. 그는 지역 사령관 숭제위안(宋哲元)과의 협상에 나서 허베이성(河北省)에 '기동 방공자치정부(冀東防共自治政部)'라는 친일 괴뢰정권을 수립했다.

이 친일정권은 국민당 정권의 분열을 부추기고 전의를 상실하게 하는 데 주효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만주의 로렌스'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영화 ‘로렌스 오브 아라비아’에서 따옴). 별명에 합당하게 집권 국민당 정부 요직과 군에는 그가 심어놓은 첩자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남부지역 등 곳곳에서 폭동, 살인, 아편 거래 등 사회 불안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국민당군에서는 8명의 사단장이 켄지에게 포섭된 것으로 드러나 최고 사령관 장제스(장개석)의 특별지시로 사형대에서 모두 처형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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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영화로 나온 건 1962년이니 영화 때문에 별명이 생겼다면 후대에 지어진 별명이겠고, 당대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면 1차대전 무렵 영국에서 명성이 자자했던 로렌스의 영향으로 별명이 붙었겠죠. 글이 편집된 건인지 오해의 여지가 높아서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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