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백 한국영화 100년 < 12 > 세기의 영화커플 신상옥-최은희(상)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8 Jun 2019

영양실조로 쓰러진 최은희 업고 뛴 신상옥 한국영화사를 풍미하는 ‘세기의 커플’의 탄생


감독 신상옥은

영화 ‘코리아’를 통해

평생의 반려이자

영화계 동료

배우 최은희와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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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은희(왼쪽) 신상옥 부부의 다정했던 한때. 유명배우와 촉망받는 젊은 감독의 결합은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다.

26세의 청년 신상옥은 ‘악야’(1952)의 필름 촬영분을 싸 들고 피난길에 올랐다. 김광주의 소설을 각색해 16㎜ 카메라로 찍은 이 데뷔작은 대구에서 편집을 마무리 짓고 임시수도 부산의 극장에 걸려 호의적인 반응을 얻었다.

의욕에 찬 신인 감독은 한국의 명승고적과 역사를 해외에 소개한다는 포부를 품고 차기작 ‘코리아’(1954)에 돌입했다. ‘가나다라’ 순으로 네 개의 에피소드를 한데 엮은 옴니버스 구성의 영화는 서울, 경주, 금강산, 해인사, 제주도를 훑는 방대한 로케이션으로 인해 촬영일정이 늘어졌고, 제작비 조달에 난항을 겪었다. 2년을 끈 지난한 작업이었지만 ‘코리아’는 신상옥의 삶에 있어 일생일대의 전환점이었다. 평생의 반려이자 영화적 동료인 배우 최은희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리아’에서 최은희는 ‘춘향전’을 다룬 ‘다’ 에피소드의 춘향 역을 맡았다. 나중에 ‘성춘향’(1961)에서 다시 춘향을 연기하게 되는 걸 떠올리면 참으로 재미있는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촬영감독과 동거하던 최은희, 전쟁 중엔 다방일로 생계
1943년 극단 ‘아랑’의 연구생으로 입단하면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최은희는 해방 후 ‘새로운 맹서’(1947), ‘밤의 태양’(1948), ‘마음의 고향’(1949)‘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신상옥을 만나기 이전, 최은희는 선배로 따르던 배우 김연실의 주선으로 그녀의 남동생이자 촬영감독이었던 김학성을 만나 동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학성과의 관계는 원만하지 못했다. 12살 많았던 김학성은 전처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었고 의처증이 심해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끊어지게 된다. 김학성은 종군 촬영기사로 일하다 다리에 부상을 입었고, 서울에 머물렀던 최은희는 공산당 연극배우 심영이 납북, 인민군 경비대 협주단으로 끌려갔다가, 평안남도 순천에서 간신히 탈출하는 등 파란만장한 시기를 보낸다.

전쟁 중 최은희는 다방에서 일해 생계를 해결하면서, 국군 정훈공작대에 동원되어 위문공연을 다녔다(자서전 ‘고백’에 따르면 권총이 머리에 겨눠진 채로 헌병대장에게 성폭행당하는 충격적인 일까지 겪었다고 한다). 바로 이 시기에 신상옥과 만나 눈이 맞았다. 연극 ‘야화’의 공연 중 영양실조로 쓰러진 최은희를 객석에서 보고 있던 신상옥이 들쳐 업고 병원으로 뛰어간 일이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어 ‘코리아’의 캐스팅을 수락했다고 한다. 1953년에 연애를 시작한 두 사람은 이듬해 결혼에 골인한다. 한국영화사를 풍미하는 ‘세기의 커플’의 탄생이었다. 프러포즈할 당시 신상옥 감독은 말했다. “당신을 보고 있으면 앞으로 찍을 영화들이 떠오른다. 상상력의 원천이랄까?” 훗날 방송에서 최은희는 “신 감독 첫 인상은 수더분했다. 잘생기지 않았는데 옷맵시가 좋았다. 늘 사색에 젖어 있었던 모습이었고, 성냥을 부러뜨리는 습관이 있었다”며 “작품을 하다 보니 서로간의 순수성을 보며 좋아하게 됐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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