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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자니아 잔지바르 Zanzibar (하)
프레디 머큐리의 유년을 만나다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Feb 19 2020 12:50 AM
▲ 스톤타운의 프레디 머큐리 생가. 현재 호텔로 이용(상). 내부 계단 벽면마다 머큐리의 사진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집 그리고 노예시장
낯설기만 한 스톤타운에서 한국인의 관심을 끄는 건물이 있으니, 바로 세계적인 록밴드 퀸 (Queen)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태어난 집 이다. 구글지도에서‘ 프레디 머큐리 하우스’ 를 검색하면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현재 호텔 (템보하우스)로 사용되고 있어 투숙객만 들 어갈 수 있다. 대문만 닫으면 외부와 단절되는 구조여서 여행객은 간판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머큐리의 사진이 걸려 있다. 그가 생활한 3층 꼭대기 방 입구에는 별도로‘ 프레디 머큐리’라는 문패가 영문으로 적혀 있다. 하룻밤 숙박료는 약 20만원으로 다른 방보다 더 비싸게 받는다. 머큐리 생가와 함께 잔지바르 여행객이 꼭 가는 곳이 옛 ‘노예시장’이다. 잔지바르는 동부 아프리카 최대 노예 무역 항이었다.
대륙에서 아랍 노예 장사꾼들에게 붙잡힌 이들은 탄자니아의 다르에스살람, 케냐의 몸바사 등 인도양 항구에서 대기했다가 잔지바르로 이동해 아랍ㆍ페르시아ㆍ인도 등 지로 팔려 나갔다. 스톤타운의 노예시장 박물관에는 당시 노예를 가두었던 지하방이 그대로 남아 있다.
채광과 통풍 시설이라곤 지나가는 사람의 발 목 정도만 보이는 벽돌 구멍이 전부다. 이 좁은 방에 50~70명을 수용했다고 한다. 천장은 허리를 펴기 힘들 정도로 낮고, 바닥에는 발 목을 묶었던 쇠사슬이 뒹굴고 있다.
잔지바르의 노예 무역은 1842년 영국인에 의해 폐지됐다. 노예 박물관 관람객도 거의 대부분 백인이다. 서부 아프리카에서 엄청난 노예를 아메리 카로 수출했던 그 유럽인의 후손이다. 최대 노예시장이었던 자리에는 잔지바르의‘ 흑역사’ 를 속죄하듯 웅장한 성공회 교회가 세워졌다. 교회 마당 귀퉁이에 쇠사슬로 목줄이 채워진 형상의‘ 잔지바르 노예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 스톤타운의 노예시장 박물관 내부.
향신료의 섬 휴양의 섬 잔지바르
아프리카 최악의 노예 무역항이라는 오명과 대조적으로 잔지바르는 향신료의 섬이다. 육두구ㆍ계피ㆍ후추ㆍ정향ㆍ바닐라 등 300여가지 향신료 작물이 자생하거나 재배된다. 관광 객을 상대로 하는 체험 농장도 10여곳 있다. 입장료나 체험 비용이 없다. 가이드의 안내로 농장으로 들어선다. 농장이라고 하지만 밭 고랑도 없고 재배 시설도 보이지 않는다.
적당한 간격으로 야자수가 심겨진 야생의 풀숲이다. 망고ㆍ바나나ㆍ코코넛 나무가 군데군데 자생하고 있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궁금증이 생길 무렵, 안 내인이 풀 하나를 뜯어 냄새를 맡아보라고 한다. 억새와 비슷한데 상큼한 향을 풍기는 레몬그라스다. 차로 우리거나 요리에 첨가하고, 화장품 재료로도 이용한다. 후추 열매와 잎, 계피 뿌리와 껍질을 차례로 잘라 맛도 보고 냄새도 맡는다. 올드스파이스 잎은 남성 스킨로션 향 그대로이고, 붉은 아나토 열매는 천연화장품이다.
▲ 교회 바로 옆 ‘잔지바르 노예 조형물’.
아이스크림에 첨가되는 바닐라는 6개월 이상 자라야 수확할 수 있는 귀한 재료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따라붙은 청년들이 야자 잎으로 모자나 넥타이를 만들어 씌워주고, 하비스커스 꽃을 따서 머 리에 꽂아 준다. 아나토 열매로 연지곤지 찍고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마지막에는 나무꼭대기까지 올라 코코넛을 따서 달콤함을 선사한다. 얼굴 화장 시연까지 소년 티를 갓 벗은 남성이 맡는다는 것.
여성이 외지인에게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무슬림 사회 의 현실을 깨닫는다. 시연이 끝나면 농장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비누, 향초, 향신료 등이 진열된 판매대 앞으로 안내한다. 강요하지 않지만 그 정성에 탄복해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다. 잔지바르는 최근 한국인에게도 신혼여행 지로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섬의 북서부 해안에 고급 리조트와 휴양지가 몰려 있다.
스톤타운에서 1시간 30분 거리의 켄드와 (Kendwa) 해변은 인도양의 아름다운 일몰 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섬의 주요 지점을 연결하는 간선도로는 포장이 돼 있지만, 이면 도로는 아직 비포장 이다. 큰 도로에서 켄드와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도 흙길이었다. 구불구불 시골길을 10 분가량 덜컹거리며 시달린 후, 켄드와에 도착하면 지금까지 보아 온 잔지바르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나타난다.
독립된 숙소로 구성된 고급 리조트 앞으로 새하얀 모래해변이 드넓게 펼쳐지고, 그 너머로 잔잔한 인도양 바다가 햇살에 반짝인다. 해가 질 무렵이면 적도의 바다와 하늘로 번지는 노을이 유난히 부드럽다‘. 선셋 크루즈’에 나선 유람선은 이 시간에 맞춰 부지런히 바다를 누빈다. 해변을 거니는 연인과 가족도 이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느긋하고 평화롭다.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도 인도양의 낭만으로 물든다. 어둑한 기운과 함께 잔지바르의 향기가 바람에 묻어 온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로 꽉 채워지는 해변이다.
▲ 잔지바르 노예시장이었던 곳에는 웅장한 성공회 교회가 있다.
▲ 천연화장품이 되는 아나토 열매.
▲ 해변의 일몰은 해가 진 후에도 한참 동안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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