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골라 먹으니... 굴 맛이 꿀맛 (하)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08 Mar 2020 01:12 AM
다 같은 굴 맛, 왜 다를까
토굴, 벗굴, 벚굴, 참굴, 바위굴, 털굴, 개굴, 세굴, 토사굴. 굴을 부르는 이름은 지방마다 수도 없다. 크게 나눠 서해안 갯벌에서 자란 새까맣고 옹골진, 그리고 짭짤한 향이 강한 작은 굴은 토굴, 알굴, 깐굴 등으로 불린다. 보통 갯벌에서 자라거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야생 굴을 채취하는 것인데, 워낙 크기가 작아 껍데기를 바로 까서 알맹이만 추린다.
갯벌에 돌을 던져 놓는 투석식, 막대기를 꽂아 놓는 지주식 등 재래 양식법으로 키운 굴도 특징이 비슷하다. 이런 굴들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굴이 공기 중 햇볕에 노출돼 있는 동안은 먹이를 먹지 않아 성장이 느리다.
수하식으로 양식하면 굴은 물 밖으로 나와 볕을 볼 일이 없어 종일 먹는 것이 일과다. 껍데기 안에 살을 꽉 채우고 두툼하게 자란다. 성장 속도도 빨라 봄에‘ 굴 씨앗(유생)’을 뿌려 겨울에 수확이 가능하다.
횟집에 유통되는 반각굴이 모두 그 해에 수확한 것이다. 해를 넘겨 2년, 3년, 길게는 5년까지 키우기도 하는데, 그러면 시간만큼 그대로 쑥쑥 성장해 손바닥보다 커진다.
그런데 어차피 다 같은 굴이다. 봄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데서 나오는, 봄에 나오는 강굴이나 벚굴, 그리고 일부 지역에서 개굴이라 통하는 바위굴이 조금 다른 종이고, 한반도의 흔한 굴은 모두가 다 태평양 굴(Pacific Oyster)로 분류되는 ‘참굴’ 종이다.
최근 고급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주로 쓰는 3배 체굴도 태평양 참굴이다. 3배체굴은 염색체가 세 쌍이어서 생식을 하지 않아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 굴은 보통 염색체가 두 쌍이며, 여름철 산란 후 살이 쪼그라들고 맛이 떨어진다.
▲ 통영 ‘한마음식당’의 굴 코스요리.
그렇다면 굴 맛은 왜 다 다른가.
위도와 수온에 따라 굴 맛 차이가 난다는 속설은 개연성 있는 가설이다. 굴은 수온 10℃에서 시간당 0.4리터, 25℃에서 시간당 1리터 정도 바닷물을 여과시킨다.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황인준 박사에 따르면, 굴은 임계수온 30℃까지는 온도가 높을수록 많이 먹는다.
남해와 서해의 수온차, 그리고 조수간만에 따라 서해 굴이 해수면 밖으로 노출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남해 굴과 서해 굴이 하루에 여과시키는 바닷물, 즉 먹을 수 있는 플랑크톤의 양은 유의미한 차이를 갖는다.
종일 왕성하게 풍족히 먹은 굴과, 제한된 시간 동안 매우 적은 양을 먹은 굴은 생장속도부터 달라질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굴이 먹는 물의 성질도 다르다. 남해는 굴에 맑은 바닷물이 공급되고 서해에선 뻘이 섞인 혼탁한 바닷물이 공급되니, 먹이 성분에서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큰 굴이 맛있을까. 아니면 작은 굴일까. 이것은 등심 스테이크가 좋은가, 안심 스테이크가 좋은가 같은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무조건 크다고 맛있다, 또는 맛 없다고 할 수 없다. 그저 등심과 안심처럼 다를 뿐, 그리고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를 뿐.
통영과 거제의 굴은 우유처럼 깨끗하게 달고 고소하다. 맑고 상큼한 향이 뒤를 잇는다. 고흥 굴은 치즈 같은 구수한 맛이 난다. 고흥 굴이 가벼운 숙성을 거친 연성 치즈라면 충남 서산, 태안, 간월도, 경기 옹진군섬 지역 굴은 깊은 숙성을 견뎌낸 경성 치즈의 맛이라 할 수 있다.
진한 바다 향에, 찌르르한 맛이 좋다. 날 것으로 먹을 때는 어느 굴이 최고다 하기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그저 각기 다를 뿐이라 누군가 정답이라고 제시해봐야 주관적인 의견에 지나지 않는다.
가열해 먹는다면, 수분이 많아 촉촉하며 달고 고소한 통영 굴이 제격이다. 굴 국, 굴 밥, 굴 튀김 등 익혀 먹는 요리에서 특유의 부드러운 맛이 잘 산다. 풍미가 크리미해서 크림을 베이스로 하는 서양 요리에도 잘 맞는다.
모차렐라 치즈를 얹어 굽는 피자나 그라탱에 잘 어울리는 굴이다. 고흥에서는 굴을 껍질째 푹 고아 뽀얀 국물을 식혀 먹는 ‘피굴’ 같은 음식도 발달했다.
단단하고 향이 깊은 서해 쪽 굴은 차가운 요리에 더 잘 어울린다. 싱싱한 향 채소와 함께 갖은 양념에 살살 무쳐 놓으면 굴의 강한 향과 조화를 이룬다. 수분이 적어 깍두기나 겉절이 김치에 넣기에도 적당하다. 김치가 익는 동안 꼬들꼬들하게 잘 절여져 탱글탱글하게 입맛을 돋운다. 동해에서 오징어를, 제주도에서 전복이나 자리돔을 물회 재료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안반도 쪽 식당에선 굴로 물회를 즐겨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