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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3년만에 필리핀 탈환하다 (2)
“세계서 가장 잔악한 군대 : 일본군들 “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11 Apr 2020 03:24 PM
▲ 일본군 포로수용소의 미군 병사들.
‘코레기도’섬은 1개월 후 점령당했고 웨인라이트 사령관도 포로가 됐다. 이들은 앞으로 3년 반 동안 일본군의 잔악한 행위와 살인의 희생물이 되는 운명을 견뎌야 했다.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본군의 야만적 행위는 일왕이 항복할 때까지 자행됐다. 그들은 모든 포로를 노예처럼 대우했다. 포로들은 이질 등 각종 질병으로 아니면 굶어서 죽었다. 전쟁 초기부터 여위고 약한 체질의 웨인라이트는 해골 형상이 됐다.
워싱턴 본부는 잡혀있는 그에게 국가 최고의 훈장 ‘명예의 메달’을 주려했는데 의외로 맥아더가 반기를 들었다. 웨인라이트가 아무리 항복하지 않았다고 해도 적에게 사로잡힌 이상 그를 표창하는 것은 나쁜 선례를 만든다는 것이다. 시상할 공적이 없다는 것도 이유였다. 웨인라이트는 종전 후 석방이 되어 돌아왔을 때 국가 영웅으로 칭송됐고 마침내 메달을 받았다. 맥아더도 이때는 반대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정말 운 좋게도 일본군에 잡히지 않고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 태평양사령관으로 취임했다. 많은 역사가들은 그가 ‘코레기도’를 빠져나간 것을 맥아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아슬아슬한 대모험이었다고 본다. 일본 해군이 지배하던 해역을 작은 어뢰정 4대로 탈출한 것은 무모한 모험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반면 일부 인사들은 그가 부하를 버리고 자기만 살아났다고 비난했다.
맥아더는 호주에서 이런 비난에 대해 기자들에게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필리핀을 떠나 호주로 가서 사령관 직책을 수행하라고 명령했다. 그래서 나는 (명령대로) 나왔지만 반드시 다시 돌아갈 것이다.”
42년 4월 1일 맥아더는 필리핀 방어에서 보인 영웅적 행동으로 명예의 메달을 받았다. 이로서 그는 자기 아버지 아더 맥아더 주니어(남북전쟁 때 북군)와 함께 부자가 최고훈장을 받은 미국 역사상 첫 기록을 남겼다.
▲ 일본군의 포로 수용소 기간중 극심한 고생을 겪은 후 맥 아더와 다시 만난 웨인 라이트 중장.
맥아더는 그 후 빼앗긴 태평양 섬들을 하나씩 탈환했다. 이에 대해서는 전략가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해군 제독 어네스트 킹과 체스터 니미츠는“ 언제까지 섬을 하나씩 탈환하려는가. 작은 섬들은 잠시 내버려 두고 일본 본토를 빨리 점령하는 것이 우선 아닌가”라고 주장했다. 맥아더 상관인 조지 마샬 원수도 이에 동조“, 전략적 선택에서 개인감정은 버려야 한다”면서 맥아더의 필리핀 애착에 경종을 울렸다. 펠렐리우 상륙전, 필리핀 탈환이 정말 필요한가 하고 맥아더에게 물었다.
그러나 고집불통 맥아더는 이들의 의견을 묵살하면서 일본 본토 침공을 위해 필리핀과 펠렐리우섬 탈환이 절대 불가피하다가 주장, 44년 여름에 벌어진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4천 명의 사상자를 낸 펠렐리우 점령은 일본군이 전투기를 이곳에서 발진시켜 미군의 필리핀 탈환작전을 막을 것을 대비한 것이다. 그런가? 미군이 바다와 상공을 지배하기 때문에 일본 전투기 공격을 막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맥아더의 필리핀 상륙은 거의 3년 만이었다. 그를 태운 상륙정은 필리핀 레이테 Leyte 섬의 레드비치 Red Beach에 닿았다. 상륙정에서 내려 무릎까지 올라오는 바닷물을 걸어 나갈 때 그의 얼굴은 감개가 새로웠다. 원래 장군은 그가 마른 발로 디딜 데크를 원했으나 레이테의 해안 교통 책임 장교는“ 그들이 물속을 걷도록 하라’ 면서 데크 마련을 거부했다. 상륙 해변에서 전권을 가진 그는 맥아더 같은 사령관에게도 특별한 대우를 해주고 싶지 않았다.
상륙정에서부터 땅을 밟기까지는 40보 거리였다. 맥아더는 걸으면서 무례한 젊은 장교에게 힐끗 눈길을 주었다. 이 장면은 그의 전용 사진사가 역사를 위해서 렌즈에 담았다. 야자수 높이 올라가 때를 호시탐탐 기다리는 일본 저격병들이 하얀 해변에 우뚝 선 64세의 장군을 맞추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장군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맥아더는 확성기를 잡고 힘껏 소리쳤다. “필리핀 국민들이여. 내가 다시 왔습니다.”
흥분했던지 평소 차분한 장군의 목소리는 떨렸다. 말을 마친 장군은 돌아서서 물속을 걸어 상륙정으로 갔고 상륙정은 위험을 면했다는 듯 풀 스피드로 그를 내슈빌 해군 함정으로 모셨다. 배포 큰 맥아더가 아니라면 시도하지 못했을 또 한 번의 위험한 장면이었다.
▲ 일본군 포로 수용소의 바짝 마른 미군 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