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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브라크몽
Marie Bracquemond (1840–1916)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Nov 20 2020 11:58 PM
최초의 여성 인상파 화가중 한사람 남편의 세찬 편견에도 굴하지 않고 인상파그룹에 동참

▲ 자화상/유화/1870/ 45 x 38.5 cm
마리 브라크몽은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이자 판화가,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1928년에 베르트 모리조Berthe Morisot, 매리 카사트 Mary Cassatt와 함께 인상주의의 “위대한 3대 여성작가”로 일컬어진다.
브라크몽은 1840년 12월 1일에 브리타니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마리 안느 캐롤린 키보롱이다. 그녀는 불행한 부모밑에서 어머니를 따라 브리타니에서 스위스로, 또 프랑스의 이곳저곳을 불안정하게 떠돌며 살던 중 1849년에 여동생 루이스가 태어났다. 평생의 친구이자 지원자였다.

▲ 정원에 있는 아들 피에르와 여동생 루이스/유화/1886년
십대가 되어 마을 여인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미술복원 작업을 하는 늙은 화가의 문하에 들어가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1857년 17세에 스튜디오에서 그린 그림이 르살롱전에 출품되고, 화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를 소개받는다. 브라크몽은 앵그르의 작품에 감명을 받지만 인간 앵그르에게는 극심하게 불쾌감을 느꼈다. 그녀는 앵그르의 조언이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앵그르는 그림에 있어 여성의 능력을 무시하고 오직 꽃그림만을 그리게 했다.
“나는 단지 꽃을 색칠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것이 내게 영감을 주는 감정 표현이다”고 말했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거장들의 그림을 모사하는 동안 유명 판화가인 남편 펠릭스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새로운 미디어와 존경하는 예술가, 샤르댕과 같은 거장들을 아내에게 소개했다.

▲ Garden Path/유화/1890년
그녀는 모네, 드가 이후 고갱과 같은 당시 가장 유명한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엄청난 재능을 계속 개발했다. 점차적으로 자신의 독특하고 다채로운 접근방식을 확립했으며 1879년, 80년과 1886년에 인상파 전시회에 출품하게 된다. 남편 팰릭스는 화가 시슬리를 통해 알게 된 가난한 화가 고갱을 집으로 데려온다. 고갱은 마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특히 캔바스 위에 펼쳐지는 강렬한 톤을 새롭게 가르쳤다.
그녀는 남편에 의해 화가로서의 존재가 가려졌지만 은둔하면서 이뤄 낸 작품은 인상주의의 이상에 가깝다. 남편은 종종 아내에 대해 분개했고 그의 작품에 대한 아내의 비판을 무자비하게 거부하고 방문자에게 그녀의 그림을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1890년, 계속되는 마찰에 지치고 자신의 작품에 낙담한 마리는 그림을 포기했다.

▲ 정원에 있는 루이스/유화/1877년
그녀는 적극적으로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도 인상주의의 확고한 옹호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인상주의에 대한 공격에 “인상파는 새롭게 사물을 보는 매우 유용한 방법을 창안했다. 마치 한번에 창이 열리면서 태양빛과 공기가 급류처럼 실내로 쏟아지는 찰라를 표출한다”고 피력했다.
그녀는 1916년 1월 17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2018년에 열린 파리여성화가초대전(1850-1900년 기간의 여성화가)에 초대되었다.

▲ The Umbrellas (1882)/에칭
The Umbrellas는 브라크몽의 가장 성공적인 에칭 중 하나, 에칭이 생성 할 수있는 회색 톤의 범위를 활용한 성공적인 구성뿐 아니라 드로잉 기술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정리/주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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