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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용우 | 언론인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Nov 25 2020 03:41 PM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란 말이 있다. 2009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인구 고령화 보고서'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 보통인간의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의미한다. 이 보고서는 평균수명 80세를 넘는 국가가 2000년에는 6개국에 불과했지만 2020년에는 31개국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백세 시대인 요즘, 나이 90을 넘긴 사람은 흔하고 100세 이상을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오래토록 장수(長壽)를 누리는 사람들 가운데는 부러움의 대상이 있기도 하지만 반면에 저렇게 오래 살아서 무엇할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장수는 모든 이들의 바람대로 축복일 뿐일까.
온타리오 퀸스대학교의 철학교수 크리스틴 오버롤(Christine Overall, 1949~)은 그녀의 저서 ‘Aging, Death, and Human Longevity: A Philosophical Inquiry’(2003)에서 축복받은 장수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캐나다 철학회와 생명윤리학회(Bioethics) 등 학술단체로부터 우수상을 받았고 한국에서는 ‘평균수명 120세, 축복인가 재앙인가’(2005)란 번역본으로 출간돼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요약하면—
첫째, 돈 없이 오래 살면(無錢長壽) 재앙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놓은 돈이 없이 오래 살기만 하면 늙어서 아무런 활동을 할 수가 없다. 또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결국 자식이나 타인에게 의존해야 하는데 그렇게 오래 살면 삶이 비굴하고 추해진다.
둘째, 아프며 오래 살 때(有病長壽) 재앙이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육간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것은 재앙에 불과하다. 육신이 병들고 정신이 메말라 버린 가운데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다면 아무리 장수한들 주변에 폐만 끼치고, 우아하고 인간다운 삶은 기대할 수가 없다.
셋째, 일 없이 오래 살 때(無業長壽) 재앙이다. 인간은 무언가를 추구하고 계속해서 몸을 움직일 때 사는 보람을 느낀다.
하루하루 이어지는 의미없는 삶은 단순한 생명연장에 불과하다.
넷째, 혼자 되어 오래 살 때(獨居長壽) 그 역시 재앙이다. 배우자가 먼저 떠나고 혼자 사는 삶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은 피폐해지기 쉽다.
그런데 이 네 가지가 합쳐진다면? 그것은 아니 사는 것보다도 못한 삶이 될 것이다. 정반대로 이러한 ‘리스크’만 없앤다면 100세를 장수해도 생명 다하는 그 순간까지 삶에 활력을 느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젊어서 부지런히 일해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안할 정도의 돈은 벌어 놓아야 한다. 늙을수록 주머니를 열 줄 알아야 사람대접을 받는 법이다.
둘째, 늙어서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젊을 때부터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셋째, 일은 돈벌이를 위한 것도 있겠지만 정말로 좋아서 하는 일이나 건전한 취미 하나쯤은 개발해놓는 것이 풍요로운 말년을 위해 중요하다. 몰입할 수 있는 봉사활동도 그중 하나가 될 것이다.
넷째, 부부가 해로(偕老)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자면 젊어서부터 서로에게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보살펴주어 오래 건강하게 함께 살도록 해야겠다.
지금은 ‘기대수명(life expectancy)’이라는 용어 대신 ‘기대건강(health expectancy)’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즉 ‘얼마나 오래 살까’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건강할까’를 생각할 때다.
이용우 |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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