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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탄은 날아오는데 히로히토와 내각 ‘항복이란 없다’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5 Nov 2020 06:51 PM
판단착오, “우리 운명은 우리가 결정”, “시간은 우리 편” 운운 미국은 전단지 뿌려 시민들 피난 권고하고 최후 경고문 발표 미 폭격으로 일본전국 초토화 사망자 1백만 명, 이재민 1천만 명
일본 히로시마 시
45년 8월3일 아침 7:30
인구가 조밀한 이 항구도시 사람들은 B-29폭격기(4발 프로펠라)의 찢어지는듯한 엔진소리에 만성이 됐다. 그래서 그들이 나타났다고 해서 놀랄 것도 없었다.
구름이 두껍게 낀 아침, 시청의 경보사이렌은 반짝반짝 빛나는 은빛 괴물의 도착을 요란하게 알렸다. 2만피트 상공의 비행기는 제멋대로 왔다가 어느 새 돌아가곤 했다. 대항하는 일본전투기도, 그들을 향해 쏴대는 고사포도 없었다. 시민들은 이번에도 또 하나의 허위경보겠지 하고 걱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구도 방공호로 허겁지겁 달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엔 전과 달랐다. 러쉬아워. 사람들은 출근하느라고 전차, 버스에 꽉꽉 들어찼다. 이때 다른 대도시에서 그랬던 것처럼 폭격기에서 폭탄이 떨어졌다.
B-29는 일본의 대부분을 조직적으로 파괴했지만 이날까지 오타강 삼각지 어귀에 자리한 히로시마는 폭탄세례를 받지 않았다.
▲ 미국에서 위기감을 느끼고 만든 B-29 슈퍼 포트리스 폭격기. 같은 기종이 원자탄을 실어 날랐다.
도쿄 같은 수도는 폭격 1순위였다. 이제 커티스 르메이 장군(미군 태평양항공대 총사령관)은 폭격기들을 볼베어링과 알루미늄을 생산하는 토야마 같은 2번째 순위의 목표지점으로 진작 보냈다. 4일전 B-29 182대가 몰려가 일반폭탄과 화염탄1,466톤을 떨어뜨려 토야마를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지형마저 평평해졌다. 집이건 산업체건 남아난 것이 없는 99.5%의 무서운 파괴였다.
이틀 전, 1일 미육군항공대는 철도허브 하치오지를 공습, 일본의 수송능력을 박살냈다. 이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질 정도의 공습이었다. 철도중심지 나가오카, 미토같은 작은 철도센터도 완파됐다.
지난 3월 도쿄를 화염탄으로 공격한 후 미군폭격은 전국 66개 도시에서 1백만 명을 죽였다. 거처를 잃은 이재민은 1천만 명에 달했다.
그런데 이날 아침 폭격기들은 히로시마 상공에서 폭탄저장함 뚜껑을 열었지만 화염탄이 떨어지지 않고 대신 5백파운드 무게의 빈통들이 지상으로 낙하했다.
들은 고도 4천피트 상공에서 열리면서 4x8인치 크기의 종이 수십만 장이 펄럭거리면서 내려왔다. ‘르메이 폭격 전단지(leaflets)’라고 후에 이름붙은 이 전단지는 일본말로 썼다. ‘시민들이여 빨리 피난하십시오. 이 전단지는 우리의 강력한 공군이 이 도시를 공습하기로 결정했음을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미리 알리는 것은 일본군이 우리의 불가피한 공격에서 시민들을 보호하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보호수단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일본도시에 대한 조직적인 공격은 시민들이 군사지도자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한 계속됩니다. 군사지도자들은 당신들을 몰살의 위기에 몰아넣는 과오를 범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이 같은 군사정부를 몰아내고 아름다운 당신네 나라를 구하는 것은 시민들의 책임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시민들이 당장 피난가기를 권합니다.’ 일주일전 독일 포츠담에서 열린 세계 3거두 회담에서 트루만 미 대통령은 간단하지만 의미있는 경고문을 발표했다. ‘일본은 즉시 항복하라, 아니면 곧 철저한 파괴를 당할 것이다.’ 한 문장의 짧은 경고는 ‘포츠담선언’에 포함된 경고였다.
일본 국민들은 이 최후통첩 같은 경고를 알고 있었다. 미군라디오에서 계속 방송했기 때문이다.
▲ 도쿄로 향해 날아가는 미국의 B-29 전폭기. 미군이 제공권 완전 장악.
전단지에는 B-29기 5대가 폭탄들을 떨어뜨리는 사진이 실렸다. 조그만 동그라미로 외곽 선을 그었는데 원 하나가 공격받을 도시 1개를 의미했다. 미군기들은 전단지를 일주일간 전국에 뿌렸다.
여러 모로 히로시마는 적절한 공습목표물이었다. 그래서 일본당국은 수십만 시민을 안전한 곳으로 도피시켰다. 이 도시는 해발 수 피트에 불과한 평평한 지형을 가졌다. 이런 이유로 폭탄이 터지면 그 효과는 엄청나게 퍼져서 최대 규모의 피해를 준다고 군 수뇌부는 생각했다. 히로시마는 또한 일본 제2군의 본부가 있는 곳이다. 2만5천명의 군대가 주둔, 미군 상륙에 대항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뿐 아니라 이 곳에는 대규모의 무기창고가 있었다. 활발한 주요 항구이며 통신센터였다. 더구나 미 정보당국은 7월30일 ‘이곳에는 미군포로가 1명도 없다’고 보고했다. [실재는 8명이 히로시마캐슬에 잡혀있었다]
남태평양 마리아나 군도에서 이륙, 6시간을 날아온 B-29기들이 도시를 아무 폭격없이 지나가자 히로시마 시민들은 전단지를 믿어야 할 지 의심스러웠다. 저 비행기들은 왜 그 먼길을 날아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알 수가 없었다.
히로시마 남동쪽 1천5백마일 지점에 있는 남태령양 섬 티니안(Tinian) 에서는 원자탄 수송 막바지 준비를 마쳤다. 폭격기 승무원들은 전단지가 아니라 ‘리틀보이’라고 불리우는 원자폭탄이 사상 최초로 터지는 장면을 직접 볼 것이다. 마침 일본을 향해 몰려오는 태풍 때문에 리틀보이는 3일간 대기상태였다. 5톤짜리 폭발물은 트레일러 트럭에 실렸고 덮개로 씌어져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볼 수 없었다. 리틀보이가 작동을 하려면 4개의 뇌관이 터져야 한다. 뇌관은 폭격기가 이륙한 후에만 작동하도록 설계됐다. 이륙 때 활주로에서의 사고를 염려해서였다.
폭탄을 싣고 가는 조종사는 폴 팁벳츠(Tibbets) 대령. 전쟁초기 그는 유럽전선서 유명한 조지 패튼 장군의 전속조종사였다. 그동안 나치독일 상공으로 40회 이상 출격도 했다. 43년 B-29등장 때부터 이 비행기를 전담 조종했다. 지금 그가 올라탄 비행기는 보안상 멋진 이름도 없고 앞부분에 새겨진 로고도 없었다. 그저 넘버 82 호기였다.
레슬리 그로브즈 장군이 직접 선정한 팁벳츠 대령은 원자탄 투하 임무가 부여된 일단의 폭격기 조종사들을 이끌고 간다. 그와 조종사들은 최근 수주간 ‘리틀보이’ 모형을 싣고 바다에 떨어뜨리는 작업을 연습, 완벽을 기했다. 그들은 출격준비를 완료하고 날씨 개선만 기다렸다. 히로시마 상공이 맑아야 목표지점을 눈으로 보고 확인 후 폭탄을 투하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종 명령은 르메이 장군에게서 온다. 장군은 이륙명령을 내린 후 이 사실을 워싱톤에 즉각 보고한다. 이에 대비, ‘8월4일 새벽 4시, 르메이 장군의 분명한 명령서가 전해질 것이다’라고 워싱톤 전쟁담당성(부)에 전달된 1급비밀 전문은 밝혔다. 빈틈없는 준비였다.
팁벳츠 대령은 이젠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실제 날씨가 예상했던 대로 나타났다. 우리는 그 순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도쿄의 히로히토 천황은 무관심했다. 트루만의 경고문, ‘즉각적이고 완전한 파괴’라는 표현도 덤덤했다. 이런 경고성 단어들이 연합군지도자 회의에서 수도 없이 나왔다고 깍아내렸다. 이런 점에선 칸타로 스즈끼 수상 생각과 같았다. 그는 트루만의 경고를 무시하면서 “러시아가 일본과 서방측과의 협상 중개자로 나섰기 때문에 일본에게 유리하도록 조정할 것”이라는 허황된 사실만 믿었다. 그는 5일 후 러시아가 일본이 점령한 중국 만주를 공격할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도 하지 않았다. 국가를 구할 지혜와 신중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에서 천황은 마치 망상에 빠진 바보처럼 행동했다.
히로히토의 내각과 전쟁수행 최고회의가 합동회의를 열었다. 의제는 항복의 필요성이었다. 이들은 이 문제를 두고 일주일 넘게 토론했으나 결론은 없었다.
신성불가침의 천황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치인이나 군수뇌부는 트루만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끝까지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시간은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근거에서 일본은 7월28일 ‘트루만의 요구를 절대로 수락하지 못함’을 성명에서 확고부동하게 밝혔다. 그날 오후 일본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취할 유일한 길은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정신나간 천황처럼 일본지도자들은 자기들이 자기 운명의 주인공이라고 굳게 믿었다. 해군장관 미츠마사 요나이는 트루만의 ‘멸살’ 경고에 대해 “미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트루만 협박을) 무시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급하게 서둘 이유가 없다.” 그가 덧붙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