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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두철미한 비행준비, 체크하고 또 체크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Dec 14 2020 12:11 AM
사고에 대비 구조함정과 잠수함 일본 근처해역 배치 미사/예배와 밤 12시 식사 후 이놀라게이 이륙 왕복 12시간 비행에 운명같이한 승무원 11명
노스필드 티니안, 마리아나 군도
1945년 8월6일 새벽 1:30분
▲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시킬 원자폭탄 리틀 보이(비행기 꽁무니쪽 움덩이에 약간 보인다)를 적재시키는 B-29 폭격기 이놀라 게이(Enora Gay) - 1945년 8월 6일
죽음의 전령은 6x6 군트럭 앞자리에 앉아 자기가 이 임무를 위해서 손수 선택한 B-29기로 향했다. 폴 팁벳츠 대령은 통짜로 만든 누런색 비행사복을 입고 모자를 썼다. 12시간 비행을 준비하면서 그는 시가, 시가렛, 쌈지담배, 파이프를 준비했다. 비행 내내 담배를 피울 생각인 모양이다. 비행기가 적의 공격으로 추락할 경우를 대비해서 팁벳츠는 자살용으로 권총을 찼고 포로가 되면 지체없이 용감히 입에 넣을 시아나이드 알약 12개도 챙겼다. 그의 12명 승무원들에게 한 알씩 나눠 줄 비장의 약이다. 어쩌다가 적에게 잡혀서 고문을 받는다면 원자탄 비밀을 누설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는 각오였다. 이미 모두 엄숙하게 선서했지 않은가.
대령과 승무원들을 태운 트럭이 비행기 앞에 도착하자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플레쉬가 터졌다. 눈을 뜨기 어려웠다. 그동안에도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기체 주변을 철저하게 돌면서 마지막 손질을 했다. 인근 화약저장소 안에는 덩치큰 물건이 비닐 같은 천에 가려져 있었다. 무게 4톤의 리틀보이, 히로시마 상공 5마일 되는 높이에서 투하될 원자폭탄이었다. 전쟁을 종식시키고 지구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되는 극비의 무기였다. 정확한 목표지점은 콘크리트와 강철로 만든 아이오이(Aioi) 다리였다. 알파벳 T모양의 이 다리는 특별한 죄가 있는게 아니라 상공에서도 잘 보인다는 점 때문에 선택됐다.
‘넘버 82’라고 새긴 B-29의 닉네임은 ‘이놀라 게이 Enola Gay’. 대령의 어머니 이름이다. 예전에는 공격적인 이름을 좋아했지만 오늘밤 그가 조종할 역사에 남을 폭격기의 이름은 좀 더 진지한 의미가 있었다.
수년 전 대령이 조종사가 되기 위해 의사보조원 일을 그만 뒀을 때 아버지는 몹시 화를 냈다. “네가 하늘에서 비행기 조종하다가 죽겠다면 마음대로 해라”고 아버지는 성이 나서 소리질렀지만 어머니는 “폴, 조종사가 되고 싶다면 그렇게 해라. 내가 아버지를 달랠테니까”라면서 조용히 승락하셨다.
이제 은색동체에 검은 페인트로 어머니 이름을 썼으므로 어머니와 아들은 예상하지 못한 심오한 역사를 통해 영원히 연결된 것이다.
▲ 해군함정 오네이다 USS Oneida (APA-221).
“우리는 헐리우드 스타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듬뿍 받았다. 영화촬영기도 등장했다. 카메라맨들도 장비를 메고 주위를 둘러싸고는 중요한 어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하는 것 같았다. 만일 일본군이 활주로 주변 언덕에서 우리를 봤다면 ‘뭐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모양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섬을 지키던 일본군 중 일부는 숲속으로 도망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곧 2천2백 마력, 즉 말 2,299필이 끄는 힘과 같은 B-29 엔진 소리가 대기에 조용한 진동을 일으켰다. 날씨를 체크하기 위해서 먼저 출발하는 재빗 소령을 비롯한 3대의 B-29가 8,500피트 길이의 동서방향 활주로를 질주하는 소리였다. 이 활주로는 ‘히로히토 하이웨이’라고 불리웠다. 히로히토 천황을 처부수기 위한 활주로, 일본군으로 보면 대단히 불경스러운 이름이었다. 미군들은 이름을 부치는데 항상 유머가 있거나 아니면 어떤 의미를 부여했다.
모든 준비가 시계바늘처럼 정확하게 끝났다. 하오 2시 리틀보이(원자탄 별명)는 트랙터에 이끌려서 장전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덩치가 커서 보통 폭탄처럼 비행기 동체 아래에 장전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땅에 구덩이를 파고 콘크리트로 가장자리를 든든하게 만들었다. 리틀보이는 그 속으로 넣어졌다. 다음 이놀라 게이(원자탄을 싣고가는 팁벳츠 폭격기)가 서서히 다가와 구덩이 위에서 정지했다.
동체의 배가 구덩이 바로 위에 놓였다. 기술자들은 특별부양기로 리틀보이를 들어서 동체 속에 넣고 문을 닫았다. 하오 3:30분, 딕 파슨즈 대위는 동체 안으로 기어들어가 원자탄을 장전하는 11개 절차를 되풀이 연습했다. 리틀보이가 폭발하도록 안전장치를 풀고 장전하지 않으면 이때까지 수고와 온갖 노력이 허탕인 것이다.
바로 이날 아침에도 B-29 4대가 일반폭격 임무를 받고 이륙하다가 활주로를 벗어나면서 폭탄을 전부 폭발시켰다. 그 때문에 리틀보이 곁을 떠나지 않고 뉴멕시코부터 늘 동행하는 과학자 파슨즈는 이런 사고가 나면 티니안 섬이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질까 걱정해서 안전장치를 걸고 또 이걸 푸는 연습을 계속했다.
이놀라 게이는 이륙전 모든 테스트에서 문제가 하나도 없었다.
하오 8시, 팁벳츠 대령은 마지막 브리핑을 시작했다. 브리핑에서 그는 비행코스, 고도, 이륙시간을 알리는 외에 한 가지를 처음 추가했다. 1대라도 작전 중 일본상공에서 추락하면 곧 구조될 수 있도록 미 해군함정과 잠수함이 여러군데 배치됐다. 이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은 아주 중요했다. 왜냐하면 해군은 방금 모든 함정으로 암호문을 보내 히로시마 반경 50마일 이내에 접근하지 말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팁벳츠와 그의 승무원들은 바다 위에 비상착륙해야할 경우 반경 50마일 이내 해역에 착륙하면 구조될 수 없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50마일 밖에 배치된 구조함 위치를 알고 가까이 다가가야 함을 의미했다.
밤 10시 가톨릭 미사가 있었고 30분 후에는 신교도 예배가 거행됐다. 승무원들은 대부분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팁벳츠는 항공조종학에 대한 믿음만 가졌기 때문에 종교예식에는 불참했다. 수 십번 출격한 경험자들이지만 승무원들의 표정은 씁쓸했다. 대양을 건너 알 수 없는 모험에 도전하는 뱃꾼들 같았다.
마지막으로 야식이 차려졌다. 밤 12시. 메뉴는 소시지, 블루베리 팬케이크와 달걀이었다. 사형집행을 앞두고 사형수가 인생에서 먹는 최후의 음식처럼 특별하고 유별난 메뉴는 없다. 팁벳츠는 태연했으나 다소 불안을 털려는 듯 블랙커피를 마시면서 파이프담배를 피웠다. 시간은 임박했다.
티니안 섬 남서쪽 3백마일 지점에 해군함정 오네이다Oneida가 있다. 운송용 함정이지만 빠른 속도로 적함을 공격 할 수도 있다. 8월5일 하오 3시, 리틀보이가 이놀라 게이에 실리는 바로 그 시각에 팔라우섬 동북방 4백마일 지점에 도착했다. 펄하버에서 새 부대원을 잔뜩 싣고 오키나와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일본본토 상륙전을 훈련받을 예정이었다.
오네이다는 새로 만든 배로, 44년12월에 작전에 투입됐다. 길이 455피트, 폭62피트, 최고 시속 17.7노트였다. 항해 기간은 짧지만 태평양 전역을 돌면서 장병들과 화물을 전투지역에 운송한 역사를 기록했다. 1월30일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이후 19개 항구와 정박처를 돌아다녔다. 뉴욕 브룩클린 출신 소위 등 56명의 장교가 승선했다. 오네이다를 탄 지 9개월 동안 그들은 오키나와 전투를 바다위에서 보았고 지난 달에는 일본포로 1,050명을 펄하버로 수송하면서 가까이서 그들을 볼 수 있었다. 비는 진탕으로 쏟아붓고 사정없이 작열하는 햇빛은 피부를 태웠으며 적도의 습기는 정녕 감당이 힘들었다. 1달 후면 그들은 오네이다 함상에서 태풍도 만날 것이다.
오네이다가 태운 수많은 보병과 해군수병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대규모 미군병력이 일본 본토를 상륙한다는 루머는 늘 떠돌았다. 미군들은 이 경우 양측 모두 엄청난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 것을 알고 있었다.
팁벳츠 대령은 꼼꼼한 사람이다. 모든 검토절차가 끝났는데도 이놀라 게이를 마지막으로 한 바퀴 돌면서 다시 살폈다. 유류 7천 갤론과 폭탄 4톤을 실었으므로 이미 7톤을 초과, 비행 중 조그만 문제라도 발생하면 치명적 타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부속 하나라도 떨어지거나 흔들리지 않는지, 타이어는 공기압이 잘 맞는지, 포장된 바닥에 기름 방울은 안 떨어졌는지 등 손전등으로 세밀히 살폈다.
그는 사다리를 타고 조정실에 들어갔다. 생사를 같이하는 승무원 11명도 모두 탑승, 장거리 비행을 준비했다. 팁벳츠는 조종석 왼편의 부대장 자리에 앉았다. 부조종사 밥 루이스가 오른쪽 좌석을 차지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긴장이 돌았다. 원래 이 비행기는 루이스 것인데 팁벳츠가 이 비행기를 선정, ‘이놀라 게이’로 이름을 바꾸고 이 작전에 동원한 것이다. 애기愛機를 갑자기 잃었다는 생각에 루이스는 마음이 즐거울 수 없었다.
밖에서는 이놀라 게이의 이륙장면을 보기 위해서 수많은 구경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팁벳츠는 절대 서두르지 않았고 구경꾼들에게 신경쓰지도 않았으며 루이스 대위의 상한 기분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4개 엔진이 작동하면서 프로펠라가 돌자 이놀라 게이는 몸통을 흠칫 동요했다. 이런 동요는 이륙하면 멈춘다. 팁벳츠는 마지막으로 유압, 연료압력, 엔진회전 속도를 체크했다. “이륙준비는 35분으로 끝나고 새벽 2시30분이 됐다.” 그는 시간까지 정확하게 기억했다.
“지켜보는 근 1백여 명의 구경자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우리는 활주로를 향했다.”
“목적지 : 히로시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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