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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루이자. 스윈너튼
Annie Louisa Robinson Swynnerton(1844–1933)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public@koreatimes.net)
- Dec 15 2020 12:42 AM
예술과 삶의 관습에 도전한 선구적인 예술가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생의 마지막까지 붓을 놓치 않은 열정

▲ 애니 스윈너튼의 초상화/그웨니그리피스 作/1928
영국 맨체스터 태생의 화가 애니 스윈너튼은 예술과 관습에 도전한 여성이었다. 변호사인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결코 예술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이 불행한 가족상황에서 그녀는 맨체스터 미술학교에 들어가 60년에 걸친 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조건으로 미술공부를 할 수 없었던 당시에 이것은 쉬운 여정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필요한 교육을 받았고 풍경, 초상화, 피사체 사진 및 누드를 포함하여 200여 점을 남겼다. 그녀의 작품 중 36 점은 영국의 공공기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예술 발전과 삶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스윈너튼은 초상화와 상징주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영국화가이지만 유능한 조경가이기도 했다. 그는 1871년에 맨체스터 미술학교에 입학하였고, 수잔 데이커와 함께 1874년부터 76년까지 르네상스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유학을 했다. 그곳의 빛과 풍경에 매료되었고, 야외에서 동시대 이탈리아의 여성과 어린이를 주로 그렸으며 밝은 햇빛에서 인간의 형태를 모델링하는 방법을 탐구했다.

▲ The Sense of Sight /오일 페인팅/1895
로마유학 후, 1877년부터 1880년까지는 파리의 줄리앙미술아카데미에 서 수학했다. 대부분의 미술학교에서 여성은 드레이프와 옷을 입은 인물만 그릴 수 있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좌절의 원인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파리로 가서 여학생들이 누드를 공부할 수 있는 진보적인 줄리앙아카데미에 들어간 것이다.
1883년에 로마에 기반을 두고 활동한 조각가 조셉 스윈너튼과 결혼하여 평생을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녀의 작품경향은 우화적인 주제를 다룬 영국화가 조오지 F. 와츠와 에드워드 번-존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미국출신의 화가 존 S. 사르전트는 그녀의 작품을 높이 평가하고 1922년 로얄예술아카데미에 첫 여성회원으로 선출되도록 도왔다.

▲ 이탈리아 풍경/연도 미상/맨체스터 아트갤러리 소장
그의 초기작품은 고전신화에서 영감을 얻은 인물과 주제를 열정적으로 묘사했으며, 단단한 구성과 인상주의적 친화력을 가진 색상배열과 조각적 양감을 띤다. 또한 신고전주의, 라파엘 전파 Pre-Raphaelitism 및 인상주의를 통합하여 표현했다.
영국 테이트갤러리 전시회 “Exposed. The Victorian Nude”의 카탈로그에는 “애니 스윈너튼은 누드에 가장 대담한 여성화가 중 한 사람이었으며, 그녀의 강렬한 그림은 감상자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고 기술했다.
1879년, 동료화가 수잔 데이커와 함께 8명으로 구성된 맨체스터 여성화가협회를 설립했다. 그 단체는 여성을 위한 클래스를 열고 전시회도 마련했다. 따라서 ‘큐피드와 프시케’같은 누드의 고전적인 주제를 그리는 데 필요한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고 이 장르의 개척자가 되었다.
스윈너튼은 여성에게 불확실하지만 흥미진진한 시대를 살았다. 여성참정권을 위한 투쟁에 참가했고, 공적/사적인 분야에서 여성평등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희망과 낙관, 성취에 대한 불안, 이러한 감정은 그녀가 1890년대에 작업한 일련의 그림에 구체화되었다.
전형적인 예는 여성의 미래와 자유에 대한 희망을 나타내는 날개 달린 여성 인물이 등장하는 ‘Sense of Sight/1895년 작’. 그는 일생 동안 여성의 권리를 열렬히 지지했으며 비전투 참정권자였다.
1910 년 남편이 사망 한 후 스윈너튼은 이탈리아보다 런던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정기적으로 전시를 했으며 미국출신의 화가 존 S. 사르전트, 오귀스트 로댕과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았으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당시 최고의 예술기관인 로얄아카데미의 인정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 큐피트와 프쉬케/오일 페인팅/1890년/Oldham Gallery

▲ 요양/오일 페인팅/1929년/테이트 갤러리, 런던
두 번의 선정에 실패한 후 마침내 1922년 로얄아카데미 준회원(ARA)으로 선출되었다. 1768년 아카데미 창립이래 처음으로 영예로운 여성으로 선출된 것이다. 이 인정이 첫 개인전의 촉매제가 되었다. (Manchester Art Gallery, 1923) 그러나 이것이 그의 작품경력에 얼마나 늦게 찾아왔는지에 대한 실망스러움도 있었다.
그웨니 그리프스가 그린 스윈너튼의 초크 초상화(1928년 작)는 남성지배 예술세계에서 평등을 위해 싸우는 단호한 성격과 독립적인 정신이 잘 표현되었다. 그녀는 1933년 10 월 24 일 포츠머스 근처 헤일링 섬에 있는 그녀의 집에서 여든 여덟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사진으로 가득 찬 스튜디오를 남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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