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리틀보이 인류사상 첫 사용, 종전 촉진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Dec 21 2020 06:16 PM
밤새 3번 공습경보에 히로시마 시민들 만성 돼 역사적 사명가진 이놀라게이 일본영공 진입에 방해없어
히로시마
1945년 8월6일 아침 7시 10분
▲ B-29 에노라 게이에서 투하되어 폭발한 원자폭탄 - 1945년 8월 6일 일본 히로시마
뭔가 경고하려는 건가. 공기는 기분나쁘게 축축했다. 두번 째 공습경보가 히로시마 시민들의 잠을 다시 깼다. 미군 B-29 폭격기 1대가 도시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경보는 요것 1대 때문에 울렸던 것이고 그래서 또하나의 하루 일상이 망가졌다. 시민들이 아침식사를 준비하거나 전차를 타고 출근하기에 바쁠 때였다.
사실 시민들은 공습경보에 만성이 됐다. 전쟁이 끝나려는 마당에 미군들이 이 도시를 뒤늦게 폭격할 이유는 없었다. 그건 그렇더라도 어떤 시민들은 연습 받은대로 방공호로 걸어들어 갔으나 많은 사람들은 무시해버렸다.
넓은 항구에서는 새우잡이 어부들이 선조들이 해오던 식대로 어망을 손질했다. 경보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손은 계속해서 움직였다. 남쪽 항구 근처에 있는 소방소는 한가했다. 폭격이 없으니 화재도 없었다. 소방대원 요사쿠 미카미는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24시간 근무가 끝나 교대하려면 앞으로 1시간이 남았다. 그동안 폭격이야 없겠지… 그는 긴장을 풀었다. 작은 규모의 폭격이라도 화재를 만들기 때문에 요사쿠는 소방차를 몰고 즉시 출동해야 한다.
“참 다행이다.” 가족들은 어제 피란가서 일단 안심됐다. 집은 비었을 테지만 피곤이 쏟아지자 집에 당장 돌아가고싶었다. 공습해제 경보를 침착하게 기다렸다. 7시 32분 드디어 경보가 해제됐다. 위험이 사라졌다. 아니 그렇게 그는 생각했다. “앞으로 30분만 더 버티자.”
도시의 다른 쪽에 사는 16세의 아키라 오노기는 미쓰비시 조선소에 출근하지 않았다. 일종의 반항이었다. 학구파인 그는 전쟁 때문에 공부를 못해 불만이 많았다. 그는 부모집의 마루바닥에 벌렁 누워서 책장을 넘겼다. 기분이 좋아지자 하루종일 그렇게 지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여서 놀러나갈 데도 없었다.
▲ 에노라 게이 B-29 폭격기 대원들. 가운데 팁벳츠 대령.
핫초보리 전차정거장의 방공호에 피신했던 사람들도 다시 거리로 올라왔다. 20세의 아키코 다카류라는 아주 조심성이 많은 처녀였다. 방공호에서 나와서 지금은 비서로 일하는 게이비은행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늦지않기 위해서다. 두꺼운 돌담, 철판으로 막은 창문들. 하도 철저히 막아서 안에는 햇빛이 없었다. 오타 강에 T자형으로 만든 아이오이 다리에서 은행은 불과 반 마일 거리에 있다. 조금 뒤에는 무시무시하게도 그라운드제로(폭탄이 터지는 목표물)가 되는 다리였다.
잘 돌던 히로시마대학교의 높은 탑시계가 3일전 8시15분에 멈춰섰다. 멈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알더라도 고칠 수 있는 부속품이 있을 턱이 없었다. 시계의 긴 두 바늘은 시가지를 내려다 보지만 이미 죽었다.
아키코가 은행로비에 들어서자 시계는 거의 8시15분을 가르켰다. 대학의 탑시계도, 은행시계도 같은 시각이라는 것은 아키코가 평생 잊을 수 없는 불길한 징조였다.
이놀라게이는 고도 3만7백 피트 상공에서 일본 영공에 진입했다. 과체중 상태의 비행기는 몸이 무거워 고도를 더 높일 수 없었다. 고도가 높으면 더 빨리 도착했을 텐데.
이보다 앞서 B-29 1대는 히로시마에 먼저 도착해서 날씨를 체크해서 이놀라게이에게 보고했다. “목표물을 눈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좋다”고. 히로시마에 아침 사이렌이 울린 것은 이 비행기 때문이었다. 이 비행기의 짧은 한마디 보고는 히로시마의 운명을 확정했다.
“히로시마에 도착했다” 폴 팁벳츠 대령은 기내 마이크에 입을 대고 소리쳤다. 각자 임무를 수행하라는 뜻이었다. 6시간 전, 티니안 섬에서 이륙할 때 딕 파슨즈 대위와 그의 조수 모리스 잽슨 소위는 비행기 복부의 폭탄저장소와 동체를 분리시키는 작은 공간에서 낑낑거렸다. 리틀보이가 너무 커서 동굴같은 작은 장소안에서 몸을 움직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전구같이 생긴 리틀보이는 꼬리에 4개의 방향조절 지느러미를 붙였다. 리틀보이는 덩치로 보면 빅보이였으나 겨우 한 가닥의 쇠줄이 붙잡고 있었다. 밑에는 받침목을 놓아 비행중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막았다. 위험한 운송방법이었다. 파슨즈는 조그만 난간을 손으로 더듬으면서 폭탄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전깃불이 필요했다.
하버드와 예일 및 MIT, 3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잽슨 소위가 손전등을 건넸다. 파슨즈는 리틀보이의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11개 항목을 눈으로 훑으며 재빨리 손을 놀렸다. 먼저 폭탄옆구리의 박스를 열고 화약 4봉지를 집어넣었다. 연기가 나지않는 이 화약은 우라늄을 연쇄폭발시키는 작은 기폭제였다. 원자 1개가 2개가 되는 핵분열이 일어나면서 폭탄이 순간적으로 터지고 동시에 죽음의 열과 방사능 감마선이 방출돼 전 시가지를 덮을 것이다.
파슨즈 대위는 작업을 25분만에 끝냈다. 그중 마지막 작업은 3개의 초록색 비활성(dummy) 플러그를 리틀보이의 배터리와 발사조작 매커니즘 사이에 끼어넣는 것이다. 이제 리틀보이가 완전 장전되자 그의 마음은 더욱 불안했다. 만일 무엇이 폭약을 건드려 폭발하는 경우 이놀라게이와 자기를 포함한 모든 승무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 초록색 가짜플러그를 전기 연결사이에 끼어넣긴 했지만 만일 이 플러그가 그자리에 그대로 있어주지 않는다면 말짱 헛일이 되고 자기와 동료들은 황천길을 방황할 것이다.
잽슨 소위는 마지막 자기 임무로 리틀보이에게 다가가 초록색 가짜 플러그를 빨간색 진짜 플러그로 바꿔끼었다. 손이 떨렸다. 이제 리틀보이의 밧테리와 폭탄이 전기연결됐다. 이 작업을 끝으로 리틀보이는 건드리면 터지는 생폭탄이 됐다.
1시간이 지났으나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폭탄수 토마스 피어비는 비행기앞 유리창을 가리키며 보고했다. “다리를 찾았습니다.” 비행기는 목표물에 다가온 것이다. 아이오이 다리가 그라운드제로로 선정된 것은 히로시마의 가운데에 있으며 하늘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은 T자 형이기 때문이다.
기장 팁벳츠 대령은 몸을 굽혀서 히로시마 다운타운의 흰 건물들울 내려다 보았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은 출근길의 시민들이리라. “도시 중심부를 보니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빛에 건물들이 밝게 보였다”고 후에 회상했다.
이놀라게이는 마지막 1마일을 날았는데 그때까지 아무 저항을 받지 않았다. 대항하는 적기도, 밑에서 올려쏘는 고사포도 없었다. 영공을 지키는 방공대는 밤중에 경보를 3번이나 울렸으나 아무 일도 없었기 때문에 모두 손을 놓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비행기도 정찰목적기 정도로 치부했다.
90초를 남기고 폭격수 토마스 피어비는 목표물확대경에 왼쪽 눈을 붙였다. 그가 시속 330마일로 비행하는 이놀라게이의 진행과 약간의 바람을 고려해서 낙하시기를 판단한다면 리틀보이는 아주 정확하게 목표지점으로 떨어질 것이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 후 기장은 소리쳤다. “1분전.” 피어비는 스위치를 제쳤다. 날카로운 금속성이 이놀라게이 전 대원과 과학자들을 태우고 뒤에서 따라오는 2대의 비행기에 똑같이 전해졌다. 리틀보이가 곧 낙하된다는 신호였다. 폭발장면을 관찰할 과학자들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특별 고안된 검은 안경을 썼다.
3대의 비행기는 원자탄 낙하 후 빨리 멀리 날아가라고 명령받았다.
“30초전” “20초 전.” 정확하게 8시15분 이놀라게이 뱃속 무기고의 문이 열렸다. 히로시마대학교 탑시계가 고장나면서 알려준 바로 그 시각이다. “10 ..9…..2..1..”
오전 8시15분17초. 리틀보이는 마침내 해방됐다는 듯 아이오이 다리를 향해 수직선으로 내려갔다.
이놀라게이는 4톤의 화물을 내려놓는 순간 기체가 위로 붕 떴다. 가벼워졌기 때문이다. 기장은 오른쪽으로 기수를 확 돌려 히로시마와 반대로 방향을 잡았다. 안전하게 멀어지는데 불과 50초의 여유 밖에 없었다. 이놀라게이는 죽기살기로 도망갈 때 원자탄의 후폭풍이 기체를 부술 것처럼 세게 몰아쳤다.
대형 폭격기보다는 재빠른 전투기에 합당한 이같은 60도의 급선회에도 불구, 피어비는 확대경에서 눈을 떼지않고 리틀보이가 착지하는 순간까지 관찰, 확인했다. 4개의 꼬리지느러미 힘으로 방향을 잡은 리틀보이는 수직선으로 내려갔다.
10초가 지났다. 그는 사람눈을 멀게할 만한 섬광이 나타나기 직전 확대경에서 눈을 땠다. 리틀보이가 낙하를 시작한지 43초 후 아이오이 다리 상공 1, 890피트에서 리틀보이의 레이다에 장치된 거리재기 휴즈가 터졌고 폭탄 속의 대포같은 포신에서 4개의 화약이 폭발하면서 우라니움 ‘총알’을 총구로 보내 U-235와 충돌, 연쇄반응을 촉발시켰다.
이어 커다란 불덩어리가 나오면서 지역을 뒤덮었다. 덮어버리는 속도는 계산상으로는 음속의 1백 배였다. 이때문에 1백만 분의 1초라는 찰나에 히로시마 시민은 화장장 시신처럼 한 순간에 불에 타죽었다.
충격파가 12마일 밖으로 날아가든 이놀라게이를 덮쳤을 때 팁벳츠 기장은 “맞았다”고 고함쳤다. 그는 비행기가 갑자기 요동치자 지상에서 쏘는 고사포에 맞은 줄 알았다.
이놀라게이는 탈이 없었고 승무조원 12명 모두 무사했다. 6시간만 더 기다리자. 그럼 임무완수를 축하하면서 위스키를 들이킬 것이다. 그들이 지낼 밤은 방금 창조한 지옥과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다.
[계속]
www.koreatimes.net/주간한국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