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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 누비던 호화 유람선들도 죽는가
터키 해변가에서 '고려장' 신세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 06 Jan 2021 04:23 PM
가구·집기는 호텔로, 철판은 고철로 팔려
코로나가 전세계를 뒤덮자 터키의 선박파쇄업은 신났다. 호화스럽기 짝이 없는 거대한 크루즈쉽Cruise Ship을 해체해서 고물상에 팔거나 고철로 떠넘기는 사업이 잘 나가기 때문이다.
이중에는 바로 작년 초에 거금을 들여 개조하고 단장한 카니발(Carnival)회사의 유람선 3척이 포함됐다. 이들을 포함, 모두 5척이 중동 터키의 해체작업장에서 분해되고 있다.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크루즈쉽의 운명이 영원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의 세계적 엄습은 여행객들의 발을 묶었고 따라서 크루즈 산업은 지하로 곤두박질하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투자액을 건지려면 고철로 파는 것이 선박업주들의 부담을 던다.
크루즈계의 왕초 카니발은 지난해 8월31일 기준 손실액 29억 달러를 기록했다. 업계의 정상화 시기를 내다볼 수 없으니 카니발은 우선 낡고 효율이 떨어지는 선박 13척을 선단에서 제외할 예정이다.
죽음을 맞는 선박들은 터키의 알리아가의 굽이치는 반도, 산업지구로 슬픈 항해를 한다. 이래서 선망과 감탄의 대상이던 크루즈 선박에서 나온 집기와 장식물들이 갑판과 부두에 마구 쌓여있다. 한때 수천명의 관광객을 실어나르던 호화선들은 사람이 늙어 세상을 떠나는 것처럼 피부가 벗겨지고 내장이 드러난다.
카밀 오날 터키 선박 재활용협회장은 "우리는 이런 상황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코로나 유행 전에는 주로 화물선을 해체했지만 이제는 유람선이다. 1년여 전염병이 계속되어 승객이 없는 바람에 할 수 없이 고려장을 지내려고 여기 왔다."
선박 해체판매는 세계 크루즈 산업이 코로나 때문에 총1,500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입었음을 증명한다. 유람선에서 확진자가 계속 나오자 미국 질병관리본부는 작년 3월14일부터 모든 유람선에 대해 항해금지 명령을 내려 350척이 공해상과 항구에서 공회전의 운명을 맞았다.
조각조각 분해
선박들이 갑판마다 부서지고, 체육관, 극장, 디스코장 등 편의시설들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가운데 금속 조각들을 떼내는 공구소리, 쿵쾅거리는 해머 등에서 나는 불협화음, 먼지 등이 너무 소란스럽다.
거의 2천 명의 노동자들이 고용돼 재사용하거나 용도 변경할 수 있는 기계, 해체되는 배는 현재 모두 5척. 근로자 2천 명이 10여층 높이의 건축물을 하나하나 떼어낸다. 팔릴 만한 것과 아무데도 쓸데 없는 장식물이나 가구들은 다른 쪽으로 분리수거된다. 전자장비, 유리, 목재 등은 재활용, 나머지는 고철이 아니면 쓰레기 신세다.
오날 회장은 자신의 사무실 창문 밖으로 작업장을 바라보며 "전구부터 피아노와 수영장, 골프연습장까지 모든 것을 하나하나 꺼낸다"고 말한다. 배 1척 해체하는데는 최장 8개월까지 걸리고 해체작업은 배가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진행된다.
해체 작업사는 연말까지 110만 톤 이상의 강철과 각종 수거된 물품들을 세계서 모인 골동품 중개인과 개인 수집가들에게 경매로 처분한다.
호텔과 기업들은 테이블, 의자, 객실용품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구를 이곳 경매에서 구입했다. 골동품 중개인들은 100파운드 가까운 바로크 시대의 조명기구와 옷장에 눈독을 들인다. 어떤 중개인들은 크루즈 기념품을 구입하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구명조끼, 램프, 싱크대, 그림 등 미술품과 같은 물건들을 수집했다.
'낙천적인 상태 유지가 어렵다'
선박 해체 사진과 동영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떠돌면 크루즈 마니아들은 섭섭한 마음이다. 자기들의 추억이 깃든 지구상의 한 조각이 사라진다는 것은 자기 몸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이기도 하다.
30년 된 판타지호는 카니발 크루즈 선단에서 가장 오래된 선박으로 규모가 작고 분위기가 친숙해 노년층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다.
판타지호와 자매선 인스퍼레이션호를 타고 여러 차례 유람선을 탔던 영국 노리치 출신의 은퇴 간호사 매기 헤서링턴(74)씨는 "내가 좋아한 배가 그렇게 폐기처분되는 것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면서 "배가 늑대 무리에게 공격당한 것 같아"라고 표현했다.
그녀는 전염병이 끝나도 역사가 있는 인기높은 선박에 대한 향수와 수요는 여전할 것이라고 믿는다. 추억이 거기 담겨있기 때문이라는 것.
"모든 사람들이 하이테크 배들만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그녀는 "판타지호의 장식들은 낡았을지 몰라도 낯익은 배 안으로 걸어 들어가 모자를 걸어놓는 등 구석구석 길을 이미 안다는 것에는 매력적인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향수와 추억이라는 요소가 아닐까."
영국 북부 리버풀에서 온 데릭 왓슨(69)은 판타지호를 타고 첫 캐리비안 관광을 했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 배들이 해체되고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고 말했다.
미래의 유람선들이 언제 출항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올해 선박 2척을 알리아가에 보내 해체하도록 한 로열캐리비안 크루즈도 노르웨이 크루즈 라인 홀딩스, 의료 전문가 패널 등과 손잡고 승객 안전대책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러나 오날 회장은 "2∼3개월 안에 크루즈 선박 서너 척이 또 도착해서 해체된다. 앞으로 최소 1년간은 무척 바쁠 것 같다"고 전망하는데서 희비가 엇갈린다. 【터키=워싱턴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