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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준의 건축칼럼
공간, 그리고 여백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 15 Jan 2021 03:21 PM
많은 클라이언트들이 새로운 디자인을 제안했을 때 가장 먼저 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용적률입니다.
건축가로서 공간을 디자인할 때 포함시킨 중정이나 마당, 혹은 복도나 특정한 사용도가 없는 공용공간 같은 경우를 보고,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아무런 기능이 없는, 그저 자리만 차지하는 공간으로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용적률의 최대치가 무조건 특정 목적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져야 만족을 느끼는 심리 때문일 것입니다.
클라이언트와 이런 문제를 의논할 때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이러한 공간들은 이 건축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여백’이라고.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아무런 기능이나 목적이 없는 ‘nothing’의 의미를 가진 공간이 아닌, 사용자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이 공간에 개입하여 활동하는지에 따라 그 공간의 가능성이 무한대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면에서 꽉 들어찬 공간이 제일 효율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공간은 숨쉴 수 있는 틈 없이 그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하나의 공간이라는 건 삶의 일부분으로 사람들과 어우러져 사회적인 관계성을 만들어줄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단순 숫자와 돈으로만 계산된다면 그 결과는 단절과 부재만 남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여백의 공간이 자칫 딱딱할 수 있는 건축이란 공간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숨을 쉬고 소통하고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줍니다.
한국화에 나타나는 여백의 미나 전통 건축에서 보이는 대청마루와 툇마루, 그리고 중정은 그 기능이 명확하지 않지만 그 공간이 사람들에게 주는 다양한 활용도는 삶의 풍요로움을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시대의 건축에도 이러한 여백의 공간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XLA 건축사 사무소 대표 이한준
www.xlarchitect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