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에바 곤잘레스
Eva Gonzalès (1849-1883)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 21 Jan 2021 09:33 PM
▲ 마네 作/에바 곤잘레스의 초상화/1878
에바 곤잘레스는 1849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스페인 출신의 소설가였고 어머니는 벨기에 출신의 음악가였다. 예술적인 분위기의 집안에는 늘 비평가들과 작가들이 모여들었다. 어려서부터 이런 분위기를 접했으므로 그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자연스런 과정이었다.
열 여섯 살이 되던 해 곤잘레스는 본격적으로 초상화가인 샤를 샤플린으로부터 드로잉 수업을 받았다. 샤플린은 여성들을 위한 화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마리 카사트도 여기서 미술수업을 했다.
스물 살이 되던 해, 마네와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는 마네의 유일한 공식 제자였으며, 그의 모델이자 친구가 되었다.
▲ Morning Awakening /1876/Oil on canvas / 82 x 100 cm/Kunsthalle, Bremen
▲ The Spanish Lady/1879
마네는 곤잘레스를 만나자 마자 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리고 다음 해 이 작품을 살롱전에 출품했다. 곤잘레스는 마네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는다. 미묘한 차이는 있지만 그녀의 작품은 마네의 것과 너무 닮아서 마네 자신도 헷갈릴 정도였다고 한다.
여성화가시리즈-17편에 게재되었던 ‘베르뜨 모리조’와 마네와의 관계도 꽤 유명하다.
둘은 친구 사이였는데, 마네의 제자로 곤잘레스가 오자 마네와 모리조 사이에는 묘한 관계가 형성된다. 결국 모리조는 마네의 막내동생인 외젠 마네와 결혼함으로써 둘의 관계는 정리가 된다.
곤잘레스는 스승인 마네처럼 살롱전에 출품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1870년 살롱전에 처음 작품을 출품한 이후 매년 살롱전에 참가했다. 인상파 화가들의 전시회에는 스승처럼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은 인상파 화가들의 화풍과 흡사하고 미술사가들은 그를 인상파 그룹의 일원으로 여기고 있다.
▲ Nanny and Child/1877-78
▲ A Box At The Italian Theatre/ 1874/ Oil on canvas/ 98.04x 130.05cm
마네의 제자였지만 몇 년이 흐른 뒤 곤잘레스는 또 다른 자신의 화풍을 만들어 간다. 극장에 가는 사람이나 야외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했고 밝은 색과 부드러운 형태를 담은 그녀의 수채화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여인을 주제로 그림은 당시 남성화가들의 작품보다 그녀의 작품 속 여인들이 훨씬 강한 연대감을 느끼게 한다는 평을 받았다.
보불전쟁이 일어나자 곤잘레스는 디에프로 피난을 간다. 1879년, 서른 살이 되던 해 그녀는 판화가였던 앙리 게라르와 결혼을 한다. 남편과 여동생을 모델로 작품활동을 하던 그녀는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그녀를 요절하게 한 원인이 되었다.
1883년 4월 30일, 곤잘레스의 스승인 마네가 쉰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거의 같은 시간에 곤잘레스도 아이를 낳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곤잘레스는 마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비탄에 빠졌고 병상에서 마네의 장례식에 보낼 조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슬픔이 극에 달한 탓이었을까? 곤잘레스는 마네가 세상을 떠난 지 5일 뒤, 서른 넷의 젊은 나이로 눈을 감는다. 병명은 산후 합병증.
곤잘레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 해 88점의 작품으로 그녀의 회고전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