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주간한국
그웬 존
Gwendolen Mary John (1876~1939)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 06 Apr 2021 05:56 PM
웨일즈 출신 화가, 로댕의 마지막 연인 우울과 고독속의 명상가
▲ Self Portrait, 1902
여성화가 그웬 존은 영국 웨일즈 하버포드웨스트에서 1876년에 태어났다. 19세때 런던에서 남동생인 오거스트 존(Augustus John 1878-1961)과 슬레이드 미술학교에서 데생을 배운 뒤 파리로 건너가 미국인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James A. McNeill Whistler 1834~1903)의 지도를 받았다.
파리 몽파르나스에 정착해 작품활동을 하면서 피카소, 마티스 등 유명한 화가들을 만났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모델활동도 했는데, 당시 64세인 프랑스의 거장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과의 만남은 그웬이 28세였던 1904년의 일이었다. 그녀는 로댕의 모델이 되었고, 통역도 하면서 결국은 그의 애인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로댕의 그늘 속에 묻히고 싶어했고, 그로 인해 고통스러운 내면세계에 갇혀 버렸다.
▲ 인물이 있는 실내/1899
▲ 꽃병/1910
그웬은 로댕에게 약 2천통에 달하는 편지를 썼고 아주 열정적으로 그를 사랑했다. 로댕과의 사랑 이외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고 다른 누구에게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지고지순한 순정파였다.
그웬은 편지에서 “선생님은 나의 사랑, 나의 재산, 나의 가족, 아니 나의 모든 것입니다. 선생님께 부담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제 아무리 질투심에 불타고 절망감에 몸부림을 치는 한이 있더라도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이와 같은 자기만의 깊은 사랑은 로댕이 사망한 1917년까지 13년간이나 계속 되었으나 로댕의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결코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사랑은 로댕의 또 다른 애인이었으며 여류 조각가인 카미유 클로델과는 사뭇 달랐다. 그웬은 클로델이 로댕과 헤어지고 나서 6년후에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데 그저 바라보며 기다리던 사랑이었으나 클로델은 반대로 로댕과 치열한 사랑을 하였다.
매우 감성적인 성격이었던 그웬 존은 1913년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파리 교외의 뫼동(Meudon)으로 이주해 외부와 관계를 단절한 채 은둔생활을 자처하며 오로지 작품 활동에만 전념했다.
▲ 창가에서 독서하는 소녀/1911
▲ 어깨를 드러낸 소녀/1910
남동생 오거스트는 당시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고 그녀는 동생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동생과 달리 그웬은 내성적인 성격이었고 타인에 대하여 거의 분별력이 없을 정도의 두려움을 지녔다. 이 같은 성격은 삶에 대하여 명상적인 접근을 하게 되고 작품에도 투영되었다.
그웬은 소박하면서도 뛰어난 독창성을 지닌 초상화와 실내정경을 즐겨 그렸으며 침묵의 고요함으로 사회인습에 저항하며 독창적인 화풍을 추구했다.
주로 조촐한 실내에 앉아 있는 고독한 여인상 등 선택된 단일 주제를 반복해서 여러 각도로 변형시키며 연작 형태로 그렸다.
작품들의 대부분은 자신을 포함하여 고양이 또는 자신의 침실 등의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여인들의 초상화를 주로 그렸다. 대부분 두손을 모으고 책이나 편지를 잡은 포즈로, 고집스럽게 느낄만큼 철저히 한가지 소재만을 가지고 여러 버전으로 그린 작품들이 많다. 이는 마치 빈센트 반 고흐의 ‘지누 부인’과 같이 여러 초상화 버전들을 그린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동생과 로댕에게 가려 자신의 예술세계를 맘껏 펼치지 못하고 고양이와 함께 독신으로 은둔자적 삶을 살던 그는1939년 파리의 시립병원에서 고독한 생을 마감했다.
사후 70년이 지나서 그웬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현재는 동생보다 더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가 남긴 200여점의 작품들에는 지극히 차분한 톤, 절제된 움직임과 처연한 우수의 광기가 느껴진다. 또한 미묘한 색채의 균형과 고결함이 깃들어 있다.
▲ 검은고양이를 안고 있는 여인/1925
▲ 독서하는 여인
정리/주간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