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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 가천 다랭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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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7 Apr 2021 05:45 PM
쪽빛 바다보다 땀으로 빚은 삶… 마을이 풍경이 된 그곳
남해는 남쪽에 있는 바다인 동시에 행정 지명이다. 부산에서 전남 신안에 이르는 넓은 바다에서 하필이면 왜 이곳이 남해일까.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 한반도 남쪽 바다의 중간쯤이라는 지리적 위치 때문만은 아니다. 동해처럼 망망대해가 펼쳐진 것도, 그렇다고 서해처럼 물이 빠지면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는 지형도 아니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작은 섬 하나쯤은 걸리고, 물이 빠져도 웬만해선 쪽빛을 잃지 않는 게 남쪽 바다다.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섬과 바다가 조화를 이룬 그 어중간함이 남쪽 바다의 특징이고, 남해의 풍경이다.
▲유채꽃 흐드러지게 핀 남해 다랭이마을.
땀방울로 쌓은 견고한 성… 가천 다랭이마을
남해군 지도를 보면 나비가 살포시 날개를 편 모양이다. 그중에서 왼쪽 날개 꼬리 부분은 남해에서도 남쪽, 남면이다. 바다로 가파르게 떨어지는 산비탈에 마을이 형성돼 있고, 그 마을을 연결하는 좁은 도로는 언젠가부터 ‘남면해안도로’로 불리고 있다. 숙호마을에서 평산마을까지 이어지는 약 15㎞ 구간에 올망졸망한 마을과 쪽빛 바다가 조화를 이룬다. 남쪽 바다의 아름다움을 축약해 놓은 길이다.
바닷물이 나비 날개 사이를 둥그렇게 파고든 지형, 앵강만 왼편에 위치한 두곡월포해변에서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남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상주 은모래비치와 가깝지만 찾는 이가 적어 호젓한 해변이다.
월포마을을 벗어나면 2차선 해안도로는 갑자기 폭이 좁아진다. 교차 통행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지만, 중앙선이 없고 속도를 내기 어렵다. 고도는 점점 높아져 바다는 낭떠러지 아래로 내려가고 굴곡도 심하다. 초행이라면 더더욱 운전이 조심스럽다. 시속 40㎞ 내외, 여행자의 드라이브로는 딱 좋은 속도다. 느릴수록 더 좋은 길이다.
언덕길에서 내려다보는 홍현마을은 숲과 바다가 조화롭다. 방풍림이 울창한 마을 어귀와 중간에 이름도 생소한 석방렴(石防簾)이 있다. 서해안에서는 독살, 제주에서는 원담으로도 부른다. 대나무 그물인 죽방렴은 물목이 좁은 바다에 설치하는데 비해, 석방렴은 해안과 닿아 있다.
▲ 홍현1리 마을의 석방렴. 양식이 발달한 요즘에는 어촌 체험 시설로 이용된다.
반달 모양으로 둥글게 쌓은 돌담으로, 밀물 때 들어온 바닷물이 빠지면서 갇힌 물고기를 잡는다. 홍현마을 석방렴은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양식이 발달한 요즘에는 어민들의 고기잡이보다 어촌마을 체험 시설로 이용된다.
홍현마을에서 구불구불 고갯마루를 넘으면 가천마을이다. 2005년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유명해진 남해 관광 일번지로, 본래의 마을 이름보다 ‘남해 다랭이마을’로 더 알려져 있다. 비탈진 지형에 계단식으로 지은 좁고 긴 논배미, 표준어는 ‘다랑이’지만 지역 사투리인 ‘다랭이’로 굳어졌다.
다랭이마을은 거친 자연에 인간의 땀방울이 더해진 예술 작품이다. 마을은 해발 400m가 넘는 응봉산과 설흘산 사이, 쏟아질 듯 가파르고 옴팡진 골짜기에 자리 잡았다. 마을과 논밭이 끝나는 지점은 바로 낭떠러지이고 파도가 투박한 바위를 때린다.
배를 대기 힘들어 코앞의 바다를 이용할 수 없는 지형이다. 지금이야 차로 쉽게 가지만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마을 위를 지나는 도로에서 내려다보면 산비탈에 옹기종기 집들이 자리하고 깎아지른 언덕에 좁고 길쭉하게 계단식 논이 형성돼 있다.
모내기가 시작되는 초여름이면 물을 댄 논바닥에 햇살이 부서지고, 가을이면 누렇게 벼가 익는다. 그 아래로 쪽빛 바다가 넘실대니 전망대 어느 곳에서 봐도 그림이다. 그러나 다랭이마을의 진면목은 안으로 들어가야 보인다.
마을로 내려가는 어귀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삿갓배미’ 안내판이다. 옛날 어느 농부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논배미의 숫자를 세어보니 하나가 모자랐다. 여러 번 세어 봐도 그대로였는데, 벗어 둔 삿갓을 들어보니 그곳에 한 배미가 있었다는 일화가 적혀 있다.
한 뼘의 땅조차 너무도 귀해 논밭으로 일군 애환을 담고 있다. 이렇게 쌓은 논배미가 100층에 이른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한다. 다랑논도 끊임없이 손길을 줘야 유지된다. 관광이 주가 된 요즘도 이 경관을 유지하자면 수시로 축대를 보수해야 한다.
아래서 보면 군데군데 새로 쌓은 석축의 흔적이 보인다. 쪽빛 바다보다 반짝거리는 땀방울이 아른거린다. 인간의 위대함과 노동의 숭고함에 한편으로 숙연해지는 풍경이다.
마을 뒤편 도로에서 바다까지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으니 아쉽더라도 논두렁엔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옳다. 축대와 농작물을 훼손할 우려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치지 않기 위해서다. 다랑논 축대는 어른 키 높이를 훌쩍 넘는다. 논두렁에서 미끄러지면 바로 사고로 이어진다.
지금 다랭이 논에는 유채가 파릇파릇하다. 하늘거리는 꽃대에서 하나둘 꽃이 피기 시작했으니 마을 전체에 곧 노란 물결이 일렁거릴 것이다. 봄빛 현기증 나는 마을 길을 걸으면 위치에 따라 풍광도 달리 보인다. 마을 중간에 폐교가 있다. 다랑논처럼 좁은 운동장 뒤에 건물만 남았다. 화단에는 야자수가 호위하는 이순신 동상을 중심으로 동백 목련 매화 개나리가 눈부시다. 마을 동쪽 끝에는 바다를 향해 몽둥이를 든 어부 동상이 세워져 있다.
물고기떼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망수’ 동상이다. 망수는 어로탐지기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중요한 직업이었다. 어민들은 물고기가 지나는 바다에 배를 띄워 놓고 망수의 손짓에 따라 그물을 올리거나 내렸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