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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에타 메이블 메이
Henrietta Mabel May (1877-1971)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May 26 2021 06:29 PM
몬트리얼의 에밀리 카, 비버 홀 그룹 멤버 캐나다 전쟁화가로 활약
▲ 헨리에타 메이블 메이
한 미술 평론가는 메이의 풍경과 자연관에 대해 "몬트리올의 에밀리 카"라고 칭했다. 메이는 일찍이 프랑스 인상파 영향을 받았지만, 그룹 오브 세븐과 국제적인 모더니즘 트렌드에서 더욱 성숙한 스타일을 확립했다.
그는 에드워드 메이와 에블린 헨리에타 월커 사이에서 1877년 몬트리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하여 몬트리올 외곽의 자치구인 Verdun의 시장이었다. 나중에 부동산 개발업자로 성공하여 몬트리올의 번창한 웨스트마운트에 자리를 잡았다.
▲ Ann/ Oil Painting
▲ Cumshewa/수채화/ 1912/오타와국립미술관
어릴 때부터 메이는 미술에 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정규 미술교육을 받았다. 몬트리올 미술협회에 등록한 최초의 여학생 중 한 명인 메이는 앨버터 클리랜드와 윌리엄 브림너에게 미술지도를 받았다. 클리랜드는 다양한 주제와 재료를 다루는 몬트리올 출신의 여성예술가이며, 브림너는 인상주의와 후기인상파를 포함한 프랑스 모더니즘 교육으로 메이의 예술스타일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두 번의 장학금을 받았고, 1910년 몬트리올 미술협회 연례 봄 전시회에 수채화 소품을 전시했다.
1912년 졸업 후 그는 동료화가 에밀리 쿠난과 함께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로 견문을 넓히기 위해 떠났다. 1916년 퀘벡으로 돌아갈 때까지 여행과 유럽의 갤러리를 드나들며 작품제작에 열중했다.
여행동안 그는 자신의 작품스타일에 큰 영향을 준 제임스 W. 모리스와 함께 미술공부도 했다. 1916년에 몬트리올로 돌아와 창작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그의 가족은 퀘벡 주 허드슨의 시골에 별장을 소유했는데, 매년 여름 이곳에서 주변 풍경을 그려 수려한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 Two Sisters/1918
▲ Women Making Shells/ 1919/캐나다 전쟁박물관
1913년부터 그의 그림은 인정과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작품 4점을 캐나다 국립미술관에서 구입했고 다음 해에도 계속해서 몇 점을 팔았다. 그는 1915년 캐나다 왕립예술아카데미의 준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916년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후, 1차 세계대전 전쟁화가로 작품을 의뢰받고 다른 여성예술가들과 합류했다. 주요작품 중 하나는 군수공장의 노동자를 기리는 ‘Women Making Shells (1919)’는 전쟁당시 남성과 함께 군수품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메이는 1920년 5월 몬트리올 비버 홀 그룹의 창립멤버로 지역 예술커뮤니티를 지원하고 그들의 작품전시를 조직했다. 처음에는 그룹 오브 세븐의 멤버 A.Y. Jackson이 이끌던 이 그룹은 몬트리올 출신의 재능있는 화가들의 모임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퀘벡예술협회에 참석했거나 윌리엄 브림너 밑에서 공부했던 재원들이었다. 그룹은 여성화가들이 참여하여 중요한 역할과 직책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데 매우 진보적이었다. 공식적으로 그룹은 1924년에 해체되었지만 대다수의 여성회원은 이후에도 창작활동을 계속 했다. 1912년 메이와 함께 유럽을 여행했던 에밀리 쿠난도 이 그룹의 일원이었다.
비버 홀 그룹의 멤버가 된 메이의 작품스타일은 인상주의에서 벗어났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드럽고 리드미컬한 붓놀림에 색을 적용하는 자연주의적 접근방식이 크게 발전했다. 풍경 속에서 빛과 분위기에 대한 더 큰 이해력을 보여주며, 자연의 외부적인 표현보다는 형태와 리듬에 관점을 두고 풍경의 양감과 색상의 능숙한 배열에 의미를 부여했다.
▲ Melting Snow / 1925/ 캐나다 국립미술관, 오타와
그의 ‘Melting Snow (1925)’는 평면적인 색상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서정적인 산과 춤추는 물을 반영했고 하늘은 느슨한 붓놀림으로 그룹 오브 세븐의 로렌 해리스의 영향이 깃들어 있기도 하다.
비버 홀 그룹이 해체된 직후 메이는 새 그룹 Canadian Group of Painters를 설립했다. 그룹 오브 세븐과 비버 홀 그룹의 후속그룹인 셈이었다.
그 그룹에 있는 동안 대공황으로 메이 가족의 재정에 영향을 미쳐서 메이는 온타리오 주 오타와로 이주하여 사립학교에서 미술지도를 했다. 1938년에는 캐나다 국립미술관의 어린이교실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몬트리올로 돌아온 1950년까지 12년간 가르쳤고, 50세에 은퇴한 후 몬트리얼의 도미니언 갤러리에서 자신의 회고전을 열었다. 이 전시로 100점의 작품을 팔았다.
나중에 자매들이 있는 밴쿠버로 이주해서 살다가 1971년 94세에 사망했다. 평생 독신이었다.
1982년 10월 조지 윌리엄스 미술관 (현 콩코디아 아트 갤러리)에서 비버 홀 그룹의 다른 작품과 함께 그의 작품을 사후 전시했다.
정리/주간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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