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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화암면 화암팔경 (하)
하늘에서 학을 타고와 즐겼다는 곳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 18 Jul 2021 03:04 PM
▲ 선녀폭포 바로 위의 골뱅이폭포. 떨어지는 물이 소용돌이처럼 바위를 파고 흐른다.
소금강은 그림바위마을에서 몰운대까지 이어지는 약 4㎞ 협곡이다. 들머리 왼쪽 산자락에 기둥 2개를 겹쳐 놓은 것처럼 보이는 절벽이 있는데 화암팔경의 제5경 화표주다. 화표주는 무덤 양쪽에 세우는 석조물이다. 아슬아슬하게 층층이 쌓인 퇴적암 꼭대기에 소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내리고 있어 더욱 신비롭게 보인다. 겸재 정선의 ‘화표주도(華表柱圖)’가 이 모습을 그린 게 아닐까 해석하기도 한다.
계곡과 나란히 이어진 도로를 따라가면 산은 점점 높아지고, 한 굽이 돌 때마다 계곡 양쪽으로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이 나타난다. 검붉은 퇴적암층이 더러는 거대한 장벽 같고, 더러는 곧장 허물어질 듯 아슬아슬하다.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아 눈앞에 펼쳐지는 비경이 모든 소음을 삼킨 듯 고요하다. 어느 한 곳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데, 그중에서도 경치가 빼어난 2곳에 차를 대고 감상할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소금강 상류 몰운대 역시 깎아 세운 듯한 암벽이다. 그 아름다움에 반해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라는 의미다. 천상의 선인이 학을 타고 내려와 시흥(詩興)을 즐겼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몰운대는 아래서 올려다보는 게 아니라 꼭대기에서 주변 풍광을 내려다보며 감상하는 구조다. 도로 옆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길을 조금만 걸으면 수십 명은 족히 앉은 수 있는 암반이 나타난다. 바로 몰운대 정상이다.
소나무 몇 그루가 뿌리를 내린 바위 끝에는 생명을 다한 노송 한 그루가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황동규 시인이 ‘죽은 척하는 소나무’라 표현한 바로 그 나무다. 은빛을 띠는 뒤틀진 가지가 희한하게도 썩지 않고 화석처럼 굳어 몰운대의 상징이 됐다. 죽어도 살아 있는 나무다. 주변이 구름에 덮이면 이름처럼 신비스러운 풍광을 연출하는 곳이다.
몰운대에서 조금만 가면 화암팔경의 마지막 광대곡이다. 광대산(1,019m) 서편 자락을 흐르는 약 4㎞ 계곡으로 소도굴, 촛대바위, 층대바위, 영천폭포, 골뱅이소, 바가지소 등 12개의 동굴과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심마니(인삼캐는 사람들)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곳으로 오랫동안 외지인의 출입을 금했던 계곡이다.
▲ 화암팔경 소금강 계곡. 지나다니는 차량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드라이브를 즐기기 좋다.
등산로는 입구(광대사)에서 1.7㎞ 떨어진 영천폭포까지만 개설돼 있다. 초입에 멀쩡하게 숲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서 탐방로도 그렇겠거니 여겼다가는 낭패를 겪을 수 있다. 미리 말하자면 길은 있다가도 끊어지고, 없다가도 연결된다. 인적이 뜸한 탐방로는 수풀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든 오솔길이다. 험한 바위투성이 계곡을 여러 차례 가로질러야 한다. 비가 내리는 날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주민들은 통상 20분이 걸린다고 말하는데 실제는 30분이상 잡아야 한다.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게 그나마 위안이다.
탐방로로 접어들어 조금만 걸으면 길은 바로 계곡으로 내려간다. 계속 갈 수 있을까 미심쩍을 때 좌우로 유심히 살펴보면 다시 길이 보인다. 초반 풍경은 안내판이 과장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평범하다. 약 700m를 올라가면 갑자기 계곡이 깊어지고 어두컴컴해진다. 새소리, 바람소리에 섞여 희미하게 들리는 물소리를 따라가면 초록을 가득 머금은 널찍한 소(沼)가 나타난다. 잔잔한 수면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 바위 사이로 하얗게 떨어지는 낮은 물줄기가 보인다. 선녀폭포다.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담갔더니 물이 얼음장처럼 차다. 아무리 버텨도 1분을 넘기기 힘들다.
이곳부터 본격적으로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바위를 나선형으로 깎으며 돌아 흐르는 골뱅이폭포, 커다란 표주박 모양의 물웅덩이가 에메랄드빛 계곡물을 가득 담고 있는 바가지소가 바로 위에 나타난다. 골뱅이폭포 아래에는 널찍한 암반이 형성돼 있다. 계곡에서 유일하게 편안한 자세로 쉴 수 있는 장소다.
바가지소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최종 목적지인 영천폭포다. 탐방로에서 물소리를 따라 천천히 계곡으로 내려가면 뜻밖의 풍경에 짧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평범한 산길에 이런 폭포가 숨겨져 있으리라고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검푸른 소를 만들었다. 길쭉하고 커다란 옹기 항아리에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모양새다. 계곡물이 많지 않아 물줄기가 웅장하지 않음에도 은은하게 물안개가 번지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절벽에 자라는 우산나물과 돌단풍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나뭇가지는 하늘을 덮어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 태고의 신비로움을 고이 간직한 오염제로 모습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