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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 또는 매트릭스 한국의 언어는 무엇인가?
백승주 |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Nov 18 2021 02:36 PM
슬프지만, 이번 생에 나는 오빠가 될 수 없다. 정확히 말해 나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된 영어 단어인 oppa가 될 수 없다. 표제어 oppa의 두 번째 의미는 다음과 같다. ‘매력적인 한국 남자, 특히 유명하거나 인기 있는 배우 또는 가수.’
지난 9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는 한국어에서 기원한 영어 단어 26개가 등재되었다. 많은 이들이 자랑스러워할 소식이다. 실제로 인터넷상에서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유튜브 공간에서 한국어는 신비의 언어이자, 가장 우월한 언어처럼 묘사된다. 언어 신비주의와 인종주의 냄새를 풍기는 이러한 동영상들의 인기 비결은 서구 언어를 모어로 하는 백인 출연자들의 인증이다. 이런 인증을 통해 한국어, 그리고 그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은 서구 제국의 백인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된다.
세계에서 인정받았다는 흥분과 함께 나오는 반응이 있다. 바로 국어 매트릭스의 작동, 즉 순수한 한국어의 강조이다. 세계가 인정하고 있으니 한국어의 순수성을 지키자는 것이다. 이렇게 한국어의 세계화가 하나의 언어, 하나의 영토, 하나의 민족이라는 국어 매트릭스를 강화하는 역설이 생겨난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국어교육학자 강남욱은 한국인들이 국제적으로 한국어가 언어 다양성의 측면에서 마땅히 인정받아야 한다고 반응하는 반면, 한국 사회 내부의 언어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경직된 배타성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 내부의 언어적 다양성이라니? 그런 게 있었나? 국어 매트릭스 안에서 사는 이들에게 황당하겠지만, 매트릭스를 벗어나면 언어적 다양성이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사는 동네를 지나다 보면 한국어와 함께 베트남어, 러시아어 광고가 같이 붙어 있는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많은 지역의 지자체에서는 정책 안내문을 다국어로 제작해 홍보한다. 전북의 지역방송사 뉴스에는 중국어와 베트남어 자막이 깔린다. 교육 현장도 마찬가지다. 2020년 김해의 초등학교 교사 김준성은 한국어가 서툴러서 온라인 수업을 이해할 수 없는 제자들을 위해 동영상에 러시아어 자막을 입히기 시작했고, 이는 초등학생 학습용 영상에 다국어 자막을 입히는 ‘더빙스쿨’이라는 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
국어 매트릭스는 이러한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아니 이러한 현실을 눈앞에서 지워버린다. 국어는 단순한 규범의 체계가 아니라 강력하고 거대한 정치적 기계이기 때문이다. 이 기계는 이미 다인종·다문화 사회가 된 한국 사회를 향해 이런 말만 무한 반복한다. ‘한국에 왔으니 이제 한국어를 하시오.’
한 인간의 정체성에서 그의 모어를 빼놓을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어라는 매트릭스는 그것을 요구한다. 한국 사회에서 다인종, 다문화를 이야기하지만 ‘다언어’가 쏙 빠지는 이유다. 무엇보다도 국어 매트릭스가 만들어 내는 가장 큰 부작용은 한국 사회라는 공동체를 이루는 많은 구성원들을 보이지 않는 존재로 만든다는 점이다. 한국어를 못해 국민이 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에게 국가가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교사 김준성은 자비를 털어가며 더빙스쿨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의 세계화를 자랑스러워하고 열광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국어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보고 지워진 우리 공동체의 일원을 찾을 때가 되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의 언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언어들과 어떻게 함께 공존할 것인가?
백승주 | 전남대 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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