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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과 혈통 대 기업과 재산
어느 것이 더 중요?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Nov 25 2021 11:52 AM
가족이 지배하는 기업은 일당 독재국가와 비슷한 경우가 많다. 조직은 지배자를 위해 존재하고 지배자의 명령은 지존이다. 반대란 용납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달 들어 고(故) 테드 로저스(Ted Rogers)가 세운 무선통신회사 로저스 커뮤니케이션의 경영권을 둘러싸고 가족들이 벌인 험악한 전면전을 보면 이해된다.
가족의 간섭은 가족 지배하의 이사회를 시험대에 올린다. 그러나 세계의 어느 경영대학도 이사들에게 형제, 어머니, 자매간의 진흙탕 싸움의 진압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모순 아닌가. 그러므로 가족간 싸움은 그치지 않는다.
1920년대 미국의 대금주 시대에 밀주로 돈을 번 샘 브론프만Sam Bronfman은 세계적 양조회사 시그램스 경영에서 혈통의 우선을 강조했다. 시그램은 ‘캐네디안 라이위스키’, ‘크라운로열 위스키’를 통해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재벌이었다.
1971년 그의 사후 로저스의 불화보다 훨씬 심한 가족간 충돌로 1990년대 세계 양조계의 최강자 시그램은 해체됐다. 그뿐아니라 2000년 지구상에서 이름조차 사라졌다. ‘예스맨’으로 구성된 이사회는 가족의 불합리한 요구를 반대하지도, 저지하지도 못한 결과였다.
시그램은 손자대에 와서 완전분해,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결판났다.
최근의 토론토 로저스회사 가족싸움은 창업자의 막내이며 외아들 에드워드가 현재의 사장CEO 교체를 밀어부치면서 시작했다. 반면, 그의 어머니와 누이들은 사장을 지지, 교체에 반대했다. 가족은 두 편으로 갈라져 싸웠다.
억만장자 가족들의 분렬과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도, 시그램이나 로저스만의 현상도 아니다. 이유는 무엇인가.
가족간 투쟁의 뿌리는 깊고 복잡하다.
시그램의 몰락은 설립자나 다름없는 샘의 회사에 대한 철권장악과 그의 전설적인 강한 성품이 기여를 했다. 한때 그는 자기 형제 한 명을 회사에서 내몰고 지배권을 강화했다. 혈통을 완전 무시했다. "미스터 샘"이라고 불리운 브로프만은 물러갈 나이가 되자 지휘봉을 큰아들 에드가에게 넘겼다. 이번엔 혈통의 인정이다. 에드가는 세계유태인연합회 회장을 겸임하는등 국내외적으로 활동이 컸다. 샘의 막내아들 찰스는 형 에드가와 동등한 재산을 받았다. 역시 혈통이 우선한 것이다. 그와 형은 주식의 60%를 갖고 어머니와 두 딸은 나머지 40%를 소유했다.
찰스는 형과 같은 표결권을 가졌지만 사장이 되고싶지는 않았다. 맏형이 수년 간 시그램을 경영하면서 아버지 간섭때문에 얼마나 좌절 당했는지를 눈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결국 형은 자기의 둘째 아들 에드가 주니어를 후계자로 임명했고, 회사를 마음대로 운영하라고 "백지”위임장까지 써주었다. 한걸음 더 나가 에드가가 이사회나 공동 이사장인 동생 찰스에게 알리지 않고 ‘포춘’잡지를 통해 시그램의 승계계획을 공개했을 때 가족들은 몹시 분개했다.
찰스는 평생 지배욕이 강한 형의 결정에 따랐다. 가족간의 대립을 피하기 위해서 조카 에드가주니어와도 잘 지냈다. 이 때문에 이사회도 이런 뜻에 동조했다. 아버지 샘은 생전에 “이사회는 주주에게 배당을 주고 그걸 선언할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사회는 경영을 논의, 결의하지 않는 형식적 기구라는 뜻이다. 누가 결정하고 경영하는가. 그것은 모두 혈통의 특권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회사의 운영을 옆에서 지켜본 찰스가 깊이 후회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는 1995년 시그램이 소유한 듀퐁(미국 화학섬유회사)주식을 매각하려 했을 때 이를 막지 못했다. 거의 2세기의 역사를 가진 듀퐁은 대주주 시그램에게 매년 수억 달러의 배당금을 주면서도 독립경영 해왔다.
찰스의 노력은 헛발질로 끝났다. 시그램은 듀퐁주식을 매각, 듀퐁을 품에 가진 지주회사(Holding co.)자격을 스스로 반납했다. 연간 수억달러의 배당금이 문제가 아니라고 에드가 부자는 판단했다. 대신 주식 판매대금으로 오락분야로 유턴하면서 MCA(오락전문회사)를 구입하고 이름을 유니버설스튜디오로 바꿨다.
창업자 샘이 무덤 속에서라도 이것을 알았다면 격분했을 것이다. 그는 1968년 맏아들 에드가가 MGM(영화제작사)을 개인적으로 매입하자 그를 몹시 야단쳤다. MCA 인수 5년 만에 시그램은 비벤디(Vivendi : 파리에 본사를 둔 프랑스의 거대 미디어기업)에 자기 주식을 팔고 대신 비벤디 주식을 받았다. 주식을 맞바꾼 것이다. 시그램 몰락의 서곡이었다.
마침내 시그램은 사라지고 샘 브론프만이 애지중지 쌓아둔 돈뭉치는 증발했다. 찰스는 그것을 “가족, 직원, 주주와 함께 내 이미지의 철저한 파괴”라고 불렀다.
그가 두 번째로 후회하는 것은 형의 경영에 야당역할을 못했다는 것이다.
찰스는 두 명의 에드가 – 형과 조카(맏형의 아들) -와 그런대로 관계를 유지했으나 형은 2013년 사망했고 그의 아들, 찰스의 조카가 경영을 이어나갔다. 형은 사후에 출판된 자서전에서 경영문제를 동생 찰스와 잘 상의하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이미 막차는 떠난 후였다.
그렇다면, 돈과 피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브론프만 가문의 사분오열과 대재벌의 부고광고를 읽은 테드 로저스는 회사의 영원한 발전과 혈통의 지배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브론프만의 에피소드를 역겹다고 보았지만 로저스 역시 회사를 둘러싼 가족간의 소송전을 예방하지 못했다. 이사회는 돈 문제를 다룬다. 하지만 가족이 회사를 지배할 때 수십 억 달러가 날아갈 위기에서도 가족과 혈통은 회사경영보다 우선한다.
(주: 법정은 로저스가의 막내 에드워드의 승리를 선언, 그는 소원대로 가족이 아닌 전문경영인 사장을 쫓아냈다. 사장을 지지한 그의 어머니와 딸들은 패소했다. 이들은 항소를 포기, 사건은 일단 막을 내렸다.)
[토론토스타 13일자. 작가 하워드 그린(토론토거주)씨의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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