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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시조 가작 '효설(曉雪)'
박원옥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Jan 10 2022 04:14 PM
한인문인협회 주최, 한국일보 후원
행여나 누가 볼까 희붐한 어둑새벽
적막을 뚫고 내린 부끄럼 많은 白雪
삭풍에 난분분하니 온 누리가 하얗다
黎明이 밝아오니 선잠 깬 사연들이
어깨를 부딪히며 찍어낸 삶의 무게
기억을 상실해버린 정체불명 인연들
새벽이 떠나가고 겨울 해 숨 고르면
스쳐간 흔적조차 순식간 사라지고
어긋난 발자국들만 서글픔을 삭인다
효설 (曉雪) – 새벽에 내리는 눈
희붐하다 -날이 새려고 빛이 희미하게 돌아 조금 밝은 듯하다
삭풍 – 겨울철에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 북풍
난분분하다 – 눈이나 꽃잎 따위가 흩날리어 어지럽다
어둑새벽/여명(黎明) – 날이 밝아오려는 희미한 빛
박원옥
1976년 이민. 1979년부터 2020년까지 스코샤은행 본사 근무. 2008년 글벗 Best Book 수상.
수상소감
캐나다에 이민온 지도 어느덧 45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정식으로 문예창작을 공부한 적도 없고, 오랜 세월 한인사회를 떠나 살면서 한국어보다 영어에 더 익숙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기에 한글로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시를 쓴다는 것은 저에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것에 대한 열정을 버릴 수가 없었고, 도전하는 마음으로 나이 오십이 되어서 인터넷을 통해 시 쓰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초 40여 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은퇴한 것을 계기로 시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시조는 저에게 생소하고 형식을 맞추어서 써야 하기에 힘들지만, 한편으로는 흥미롭기도 합니다. 마음에 와닿는 생각들을 적절하게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복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단계라 남 앞에 내어놓기 부끄러운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주위 분들의 격려에 힘입어 이번 신춘문예에 응모했는대 저의 부족한 글을 선택하여 주신 심사위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시조 심사평(심사위원 김훈)
시조는 초, 중, 종 삼장의 비대칭 구조에 각장이 34 34의 대창구조를 가지고 있는 최소한 700년 된 정형시다. 여기에 종장의 첫 두구는 3 5-8자의 구조로 34조의 흐름을 깨뜨리는 절묘한 종식 장치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장치는 신라의 10구체 향가에서도 볼 수 있다. 이같은 양식과 정치가 몸에 배인 분들을 만나는 것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효설'을 쓰신 분의 시조어를 찾는 노력과 성과를 높이 샀다. 한 주제에 대해 깊이 침잠하고 천착함은 시인으로서의 앞으로의 작품이 기대되어 가작으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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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