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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단편소설 입선
'만리재의 봄' 지동식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Jan 18 2022 11:56 AM
한인문인협회 주최, 한국일보 후원
1 장: 문종과 단종 그리고 김종서
‘역사는 진실의 재발견’: 역사속의 시대와 인물이 훗날 재발견되는 일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그 속에는 의로움과 악함이 공존하며 악행과 부조리가 있기에 선한일은 훗날에라도 주목을 받고 재 평가받으며 그 평가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다.
내 이름은 이준, 서울의 모 사립대학 사학과 4학년에 재학중으로서 군복무를 마친후 복학하여 이제 졸업을 1년 정도 앞둔상태로서 졸업눈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조초기의 사회문화연구’ 로 주제를 잡고 논문작성을 위해 그간 수집했던 자료들과 참고도서들을 정리하며 보내던중, 초 봄의 어느날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날 나는 논문의 목차들을 정리하다 새벽녘에야 잠이들었다. 몇시간이나 잤을까, 전등을 킨듯 갑자기 환해진 방안에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떴다. 내 앞에는 곤룡포와 관복을 입은 인물 3명이 나타나 날 지긋이 내려다보고있었다.
사극의 등장인물들, 키가 컸으며 얼굴은 앳되보이는 단종, 중키에 귀공자형 얼굴을 한 문종, 그리고 작은체구의 날카롭던 눈매의 정승 김종서. 문종과 단종 두 임금은 사극에서 본 그대로의 모습으로 곤룡포와 익선관을 쓴채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김종서는 녹색의 관복을 입은채 굳은 얼굴로 내 앞에 서 있었다.
“두 대왕께서 어인일이십니까?”
김종서의 나무람이 들려왔다.
“이준은 자세를 바로하여 들으시오, 나는 다른세상에서 500년을 넘게있다가 오늘 두분의 대행대왕을 모시고 그대에게 할말이 있어 이 세상으로 오게되었소”
나는 무릎을 꿇은후 김종서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대는 나의동생 수양을 잘 알고있다. 우리가 그대를 찾은 까닭을 말하노라”
문종은 만면에 웃음을 띈채 말하며 옆의 단종의 손을 잡고있다.
“무슨말씀이신지요?”
문종은 대답이없다. 그때 다시 김종서가 힘있게 말한다.
“문종대왕의 아우이신 수양대군은 어리신 전하, 단종으로 칭하시는 조카왕을 시해하고 보위를 찬탈하였음을 그대는 알고있을것이오!”
대호 김종서, 별명 그대로 추상같다.
“앞으로 이틀후 이시각에, 그대는 의경세자, 수양대군의 큰 아들의 무덤으로 가길 바라오. 그러면 우리와같은 하지만 육신을 입고 나타나는 수양대군을 볼것이외다. 수양대군은 7일동안 이세상에서 그대와 함께 지내면서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고 후세가 그를 어떻게 기록하고 평가하는지 살펴볼것이며, 그가 일으킨 살생과 패륜을 지금 이시대의 매체물로 보게되리다. 그 후 다시 우리가있는 저 세상으로 돌아올것이오. 그대는 수양대군과 함께 같이다녀야하는데, 이 일은 이미 옆에계신 두분의 대왕외에 세종과 태종, 태조에 이르기까지 열성조가 뜻을모아 그대들이 하나님으로 모시는 상제께 주청하여 이루어진 일이며 상제께서는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수양대군이 잠시동안이나마 진심으로 회개를 할수있도록 이땅에 육신을 입고 나올수있도록 허락하셨소!”
김종서가 말을 마치자 그때서야 소년왕 단종이 입을 열었다.
“너무 놀라지마시오, 우리는 그대가 우리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는것을 알기에 이 일을 감당할 명분이 있음을 알고있소. 숙부께서, 육신을 입고 지내는 7일동안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여 다시 저 세상으로 돌아올때 지옥에서 받는 형벌이 줄게되기만을 바랍니다. 그대, 이준이 수양숙부를 도와, 숙부께서 부디 진심으로 참회하여 당신이 죽인 많은 영혼들에게 사죄하고 돌아올수있도록 그대가 힘써주시오”
“이 일은 그대외에는 아무도 알아서는 안되며, 옆의 좌상(김종서를 가리킴)의 후손들을 만나게 한후 나의 유배지 청령포로 수양숙부를 데리고 가주오. 나에게 물을것이 있으시오?”
소년왕 단종은 그저 날 지긋이 내려보는데 그 얼굴이 참으로 천진하다. 그때 용기를 내어 단종께 물었다. 알고싶은것은 때를 놓치면 안되는 것.
“단종임금이시여, 후세에 알려진 전하의 죽음이 분분하나이다”
단종은 부친인 문종을 올려다본다.
민망한듯, 단종이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난 수양숙부가 보낸 사약을 마시고 처소로 들어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기다려줄수 없었는지 노복하나가 방으로 나를 쫒아들어와 내 목에 줄을 감고 방밖으로 나가 세게 당기었소, 내가 숨을 쉴수없을때 내 혼은 몸밖으로 나와 있었고 그때 좌상께서 나를 맞으러 와주었소”
“망극하나이다 전하”
김종서는 몸둘바를 몰라하며 나직히 외친다.
“그럼 우리는 돌아가오, 이틀후에 의경세자의 능으로 가는것을 잊지마시오, 역사는 되돌릴수없지만 수양숙부가 참회를 하는 기회를 상제께서 이 기회를 놓치지않게 숙부를 도와주시오”
단종이 내게 당부하며 다시 문종을 올려다본다. 눈썹이 진하고 코가 오똑한 문종은 병약했다는 기록이 어울리지않게 강건한 군주의 기상을 풍기고 있었다.
“그대가 할일이 많으이, 내 아우 수양은 사직을 위했다는 명분은 있었으나 그 시작과 끝이 무도하고 잔인했으니 후생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소, 수양과 우리는 저세상에서도 다른곳에 있어 만날수는 없으나 그의 고통을 잘 알고있는 바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기를 수백년이 흘렀으니, 이제서라도 내 아우가 받을 형벌이 조금이라도 적어지기만을 바랄뿐이니 그대의 노력에 우리의 바램이 성사될것이오”
문종의 음성에는 위엄이 넘친다. 말과 동시에 방안은 어두워지니 곤룡포의 황금빛이 더욱 빛나고 두 임금은 동시에 사라져버린다. 홀로 남겨진 김종서가 내 앞으로 가까이온다.
“.........”
“아까는 두 전하를 모시느라 그대에게 충분한 말을 못했소이다”
“그전에 물을것이 있습니다 대감, 우선 왜 제가 이 일을 하는지, 왜 제가 두분 전하와 대감의 일을 맡게되었는지 말해주십시오”
“내 그대에게 알려주리다. 첫째, 그대는 역사학도로서 조선의 역사를 공부하는 선비이니 이 일을 성심으로 할것이고 둘째, 그대는 실제로 왕실의 어른이셨던 효령대군의 후손이니 수양대군이 그대를 대할때 있어 함부로 하지 못할것이며 셋째, 그대의 이준이라는 성명은 수양대군이 생전에 아끼었던 귀성군 이준과 동명이라 수양대군은 귀성군을 떠올리며 그대의 인도함을 따를것이외다. 이것이 두분 대행대왕께서 그대를 이일에 낙점했던 까닭이외다. 이제 아시겠소?”
나는 실제로 효령대군의 후손이며 이름도 이준이니 김종서의 말 그대로이다.
“내일 새벽에 수양대군을 의경세자능에서 뫼실때 대군은 예전 시절의 차림으로 나타날테니 그대는 현대식 의관을 준비하여 입힌후에 그대의 집으로 들이고나서 그대들 후손들이 그를 어떻게 기록하고 평가하는지를 좋을대로 알려주시오, 그후 대군과 함께하는 동안 나의 무덤과 단종대왕의 유배지를 보여주시오, 수양대군은 쉽게 자신의 악행을 인정하지 않을 단단한 인물이니 인내를 갖고 대해주어 본인의 악행을 뉘우칠수 있게 힘쓰도록 하시오!”
2장 의경세자능
나는 만남을 준비하며 소장하던 책들과 자료에서 수양대군에 관한 사료를 따로 정리하고 영상으로 보여줄 사극도 몇편 골라놓았다. 또한 김종서의 후손들인 순천김씨 종친회에 연락을 해보았다. 논문에 쓸 자료를 수집한다는 이유로 만남을 청했는데 종친회장은 삼일후에 세종시에 안장한 묘소를 문중사람들과 방문하니 거기서 보면 좋겠다 하여 약속을 잡았다.
의경세자능은 내가사는 고양시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 하여 종종 가본적도 있었다.
수양대군의 큰 아들 의경세자. 아버지와는 다르게 마음이 여리고 아버지의 조카 단종을 걱정하고 염려했던 장면을 사극에서 본 기억이 났다. 수양대군이 그런 아들의 능에서 잠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것도 하늘의 뜻일까?
입구에는 6시에 개장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출입구에는 차단물이 겹겹히 세워진 상태였고 일출직전의 새벽공기는 몹시 차가웠다.
관리인을 잠시 기다리는데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안녕하십니까?”
일부러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한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않은 새벽에 남자의 큰 목소리를 들으니 저쪽은 흠칫 놀란 듯 했고 가까이 오며 날 위아래로 쳐다보며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묻는다.
“일찍 무슨일이시요?”
“조금 일찍왔는데 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대답없이 날 물끄러미 보더니 차단물들을 입구한쪽으로 치어놓더니, 바지에서 열쇠꾸러미를 꺼내 가로등불빛에 비추어본후 그중 한 열쇠를 자물쇠에 꽂으며 문을열어준다. 난 아무말없이 난 총총걸음으로 재빨리 걸음을 옮기며 안으로 들었다.
경릉으로 거의 도착했을때였다. 저기에 수양대군이 있었다. 흰색적삼저고리에 상투를 튼 보통체격보다 약간작아보이는 젊은남자의 모습. 우리는 한동안 서로를 마주본다.
총명한 눈빛이다. 적삼만 걸친 옷차림이 추워보였으나 수양대군은 별다른기색없이 날 말없이 한참을 쳐다보았다. 오랜시간 지옥에서 고통받은 아픔과 분노가 기운에서 나타난다. 상투를 튼 머리에는 망건과 고급스런 상투관이 씌여있었고 버선만신은 발에는 신발이 없었다.
“전 이준입니다. 효령대군의 자손으로 대군을 뫼시러 나왔습니다.”
대군은 아무말이없다.
“지금은 대왕의 사후 550년이 지났습니다. 태조께서 세우신 조선은 오랜시간후에 왜국이라 불리던 일본국에게 망하였고 조선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명나라 역시 후에 청이라는 나라에게 망하고 청 역시 망하여 지금은 원래의 중국이 되었습니다. 저는 몇일전 문종대왕과 단종대왕을 모시고 온 김종서대감을 만나 오늘 이 자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내 어느정도 알고 온 것이다.”
수양대군의 음성은 차분하고 가라앉았다.
“이곳은 대군의 두 아드님이신 의경세자와 해양대군, 훗날 예종이신 분의 능이 있는곳입니다”
“안다. 내가 죄가많아 내 아들을먼저보냈다”
대군은 뒤편의 의경세자의 능을 둘러본다.
“의관을 갈아입으세요. 제가 준비한 의복을 덧입으시고 신을 신으십시오”
“이리다오”
내가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모자를 쓰게하여 상투를 가렸다.
“이게 무엇이냐?”
“모자라고 하는 지금시대의 갓입니다”
그 시각에는 동이 터 올라 환해지고 있었다.
“의경세자야, 해양아, 아비가 전생에 죄가 많았다. 너희를 이렇게 보고가는구나”
뭐라고 말을 할까 잠시고민하다 대군을 보며 짧게 말했다.
“저를 따라 오십시요”
어색해하는 대군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우스웠나 보다. 살짝 웃음이 나오는데,
“웃을것이 무엇이냐? 나의 차림이 그러하냐?
나는 대답없이 앞장을선다.
“중전 윤씨의 묘를 볼수있겠느냐?”
“대비마마는 대군의 능에 함께 안장되셨는데 지금은 갈 수 없습니다.”
내가 빠른걸음으로 출구를 찾아 이동하니 대군역시 말없이 따라오고 있었다. 눈치가 빠르고 민첩한 사람이다. 출구 앞 관리인이 빗질 을 잠시 멈추더니 내 옆의 대군을 한참을 쳐다본다. 대군역시 그를 물끄러미 보더니 나에게 물었다.
“저 이가 능지기이더냐?”
3장 1부-수양대군
그는 말이 없다. 변해버린 조선, 지금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신기할 만도 했을 텐데 덤덤히 창밖을 보며 조용히 앉아만 있다.
“밖으로 보시는 풍경이 놀랍지 않으십니까? 지금은 2021년으로서 보위에 오르신지 565년이나 흘렀습니다.”
“나는 저 세상에서 가끔 현세의 모습을 보아, 놀랍거나 생소하지 않다.”
“시장하지 않으십니까? 드시던 수라에 비할수없지만 조반을 준비해놓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여 미역국에 흰쌀밥과 김치, 생선전등 궁중에서도 먹었을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대군은 잠시 음식들을 내려다보다가 수저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나와 겸상하지 않겠느냐?”
“괜찮습니다. 드시고 나서 제가 앞으로의 일들에 관해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관상이 정면에서 볼 때 귀가 보이지 않고 눈썹이 솟아있어 흔히 말하는 귀상으로 용안의 소유자다. 왕기가 서린 얼굴의 유독 작은입이 잔인한 성격임을 보여준다.
“입맛에 맞으십니까?”
대군은 말없이 밥에 국을 말아 식사를 한다.
“네 이름이 이준이라고 했느냐? 내가 아끼던 조카 귀성군도 너와 동명이었느니라. 자세히 보니 생긴것도 귀성군을 많이 닮은듯하다.”
식사후에 차를 우려내어 사다놓은 약과와 함께 내왔다.
수양대군은 한참을 약과를 내려다보고 있다.
“왜 그러십니까?”
난 대군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묻는다.
“이 약과는 야식으로 주안상이 올라올 때 먹던 그것과 똑같구나 궁중시절 생각이 난. 내가 이승에서 다시 이것을 먹게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
“그럼 이제 무엇을 하면 되는것이냐?”
3장 2부 -취재
수양대군은 식사후 잠시 내방의 침대에서 잠이들었다. 사진을 찍어두고 싶었으나 어떤 증거도 남겨서는 안된다는 김종서 대감의 당부가 있었기에 관두기로 했다. 잠든 대군의모습을 보고나서야 난 거실에서 앞으로 보여줄 기록물들과 영상자료들을 다시 천천히 살펴보았다.
이런것을 본다고 회개와 속죄가 된다면 누구나 할수있을게다.
한 인간의 회개가 이리 쉽다면 필시 그 본성은 선하게 태어났을텐데 말이다.
그런생각을 하다 나도 모르게 쇼파위에서 깜빡 잠이든 것 같았다.
인기척에 순간적으로 깼다.
“ 잘 주무셨습니까?”
초봄인데도 집안 공기가 서늘했다. 춘래불사춘, 수양대군과의 동거.
“방에 온기가 가득해 따스하게 잘 잤다, 내게 술한잔을 내올수있겠느냐?”
어색한 말투다. 나는 집에있던 전통주 1병을 가져와 잔에 따라놓으니 대군은 단숨에 비우고 몇잔을 연거푸 들이킨다.
“이 술 한잔을 난 몇백년동안 저승에서 악귀들에게 고통받으며 원하고 또 원하였다. 차에서 국화향이 나는것이 내 살아생전 즐기던 가양주같다.”
지옥에서 받는 고통에 대해서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시간부터 다음날 동이밝게 터올때까지 대군과 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조선초 궁궐과 왕실의 일들, 그가 일으킨 계유정난, 사육신의 처형 단종의 선위와 유배등의 일들과 자신의 비참한 말년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물으면 대군이 대답하는 식으로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갔는데 대군은 당시의 일을 잘 기억했고 자세한 묘사를 해주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대군은 시종일관 자기입장에서 설명하였다.
지옥에서 온 사람과 옭고 그름을 따져 무엇하랴?
밤을새운 수양대군의 역사수업. 자가당착.
준비해 두었던 대군에 관한 기록물들을 보여주고 여러편의 영상물을 보여주었다. 자신이 어떻게 평가받는지 무척이나 궁금해하던 수양대군은 사안에 따라 강한부정을 하기도하고 어떤것은 긍정도 한다. 영상물에 담긴 당시의 모습이 신기했던가 보다. 몇몇 작품은 한참을 다시 돌려보아가며 “내가 저리하였지” 혹은 “아니 나는 저리하지 아니하였다” 하며 해설한다.
사육신에 관해서는 “죽어도 마땅한놈들, 역적이었다” 라며 몹시 강경했고, 왕위를 찬탈하고 많은 살생을 한 비정하고 잔혹한 군주, 훈구세력을 키워놓아 훗날 조선을 병들게 한 원인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평가를 내린 여러 자료를 보여주니 당황해한다. 우리는 왕과 신하가 경연에서 토론을 하듯이 아주 오랜 문답을 했다.
대군은 후세가 내리는 자신의 평가에 대해 몹시 불만족스러워 했다. 수긍 할수 없으니 듣기도 싫었을터. 그렇다! 인간의 자존심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는 그 자체가 삶이고 견고한 성이다. 상황판단이 빠른인물, 종내는 그렇게볼수도 있겠다며 너희들의 평가역시 후세에는 또 달라질수 있다며 말을 마쳤다.
일단락의 시간후, 내일은 김종서 의 묘를 방문한다 일러주니 그의 표정은 일순 굳는다. 그날밤, 거의 밤이 새도록 대군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여러 영상물속에 그려진 자신의 모습들, 계유정난, 단종의 폐위와 유배, 자신의 즉위, 의경세자의 죽음, 본인의 투병과 최후, 정비였던 정희왕후의 모습등을 보고있었다.
“예전 일이 생각나십니까? 쉬시지요, 내일아침 일찍 출발하여야합니다”
“종서의 무덤은 여기서 얼마나 되느냐?”
3장 3부-김종서의 묘소
다음날 아침 대군과 나는 세종시에 있는 김종서대감의 묘를 향해 출발했다. 가는동안 나는 김종서장군에 관해 여러가지를 물었으나 대군은 가타부타 별 말을 하지않는다. 묘의 입구가 되는 장군면사무소를 지날때즈음 대군이 묻는다.
“절제가 이곳에 묻혔더냐?”
“네 그렇습니다, 여기에 있습니다.”
“역적으로 죽은 이의 시신을 누가 여기까지 거두었는지 모르겠구나?”
차를 세우고 묘소 쪽 으로 올라가니 종친으로 보이는 문중사람들 서너명이 묘소 주변에 있는 것 이 보여 다가갔다. 수양대군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나는 문중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잠시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매년 순천김씨 문중사람들이 대감을 기리는 모임을 갖고 해마다 이때즈음 묘소에서 문중교제를 해왔다고 한다. 몇일후 저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수양대군의 일정과 절묘하게 맞았으니 놀라운 일이었다.
문중사람들은 김종서대감을 한껏 칭송한다. 수양대군은 얼굴이 굳어진채 대화를 곁에서 말없이 듣고만 있더니 대감의 묘를 빙 둘러가며 보기도하고 봉분앞 비석의 비문도 천천히 읽어본다.
문중 사람들은 한결같이 대감을 살해한 수양대군과 정난공신들을 맹렬히 비난한다. 대감의 죽음후에 순천김씨가문은 거의 멸문지화를 당해 겨우 살아남은 그 후손들이 아주 오랫동안 숨어살며 힘들게 명맥을 이어왔다고 하니 그 원망이 작을리가 없다.
“수양, 그 자는 역사의 반역자입니다. 태어나지도 말았어야 할 인물이 왕위에 올랐으니 훗날 나라가 망한 것이 당연하지요, 우리 가문은 그 자를 조선을 말아먹은 인물의 첫번째로 올려놓습니다.” -종친회장-
“말이야 바른것이, 대감이 다른맘을 먹었다면 진작에 그리되지 않았겠소? 아, 단종임금이 어리시고 모든 권력을 다 대감께서 갖고게셨는디 , 당신 김씨의 나라로 만들었어도 그만이었을지라, 아 수양, 그 썩을것이 즈그 맘대로 고명대신 느들은 죽어야겄다, 내가 해먹을랑게, 하고 나라를 절단내니 고것이 임금이라요? 그치는 살인마요, 살인귀, 그것이랑게” -문중사람 1-
“그게 참 그라요, 그렇게 사람을 여럿 잡더니 아, 지가 뒤질땐 문둥병걸려 살이썩어 뒤지고 즈그 자식들도 싹 다 일찍 가버렸제, 수양, 그것은 악귀여 악귀, 하늘이 그냥 두지않은것은 당연한일이제” -문중사람 2-
돌아가면서 비난하니 옆에서 잠자코 듣고있던 대군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불콰해진다. 사람은 누구나 듣고싶은것만을 들으려 한다지만 살다보면 그렇지 못할때가 더욱많다. 그것은 높은자리에 있던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한것이다.
수양대군은 완연히 슬픈얼굴로 나에게 떠나기를 간청하는 표정이다. 나는 영월로 출발할 시간도 되어 또 연락을 드린다고 하고 그들과 헤어진다.
대군은 인사도 없이 저 만치 먼저 종종걸음으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데 문중사람 하나가 떠나려던 내 팔을 슬그머니 잡더니 물었다.
“저 사람말이제, 뭐시가 잘못됬는가? 뭐하는 사람인디, 우째 한마디 말씀도 없으시요? 그 표정도 싸하고 말이여, 같이 있는데 표정도 영 우울한것이 우덜이 보기가 참 거시기혔어요, 담부턴 데리고 오지 마소, 보기만혀도 재수가 없으이!”
4장 1부-영월
“둘러보시니 어떻습니까?”
“내가 누구인지 밝혔느냐?”
수양대군이 침울한 목소리로 묻는다.
난 대답대신 실소를 했다. 정체를 밝혔어도 그 누가 믿을수 있을까?
“이제 영월로 가서 단종대왕의 유배지와 능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수양대군은 차창밖만 보고 있다. 회한에 잠긴표정, 딱히 말이없고 나도 달리 말을 건네지 않았으니 차 안 분위기가 어색하고 조용했다. 영월에 도착할 때즈음,
“김종서는 고명대신중에는 부욍께서 첫째라고 인정하셨던 인물이다.”
출발전과는 달리 많이 풀이죽은 표정.
“그런 아까운 인물을 꼭 죽이셔야만 하셨습니까?”
대군은 다시 한참을 침묵한 후에 대답한다.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정난은 실패했을것이고 내가 절제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실로 그는 아까운 사람이었다. 오늘 김종서의 후손들을 보는동안 나는내내 능멸당하는 기분이었다.”
영월에 도착하여 청령포인근의 여인숙에 방을 잡았다. 수양대군은 방에서도 딱히 말이없다. 오전에 김종서의 묘소를 보고온후에는 눈에 띌 정도로 의기소침해졌다.
“조금 쉬시지요, 내일아침에는 단종대왕의 유배지와 묘소를 둘러보아야 합니다.”
“이곳의 지명이 영월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유배처소인 청령포를 간후에 장릉이라는 묘소를 갈것입니다.”
“노산군 아니 홍위의 유배처소가 아직도 보존되어있느냐?”
“현대에 와서 후손들이 단종대왕을 기리면서 다시 사적지로 재현하여 누구든지 자유로이 관람을 하게 만들어놓았습니다.”
“........”
다음날 아침, 우리는 작은 배를 타고 청령포로 들어가는데 배 안에는 수양대군과 나 그리고 어느 부부가 아들인 듯, 아이하나를 데리고 같이 탔다.
이곳이 어디냐는 아이의 물음에 아이아빠가 억울하게 죽은 단종임금 께서 마지막으로 생활하던 곳이라고 아이에게 설명하는데 바로 뒤에 앉은 대군과 나에게 다 들리게되었다. 굳어진 표정의 수양대군은 배 밖의 물살만을 보고있었다.
섬에올라 소나무숲 을 지나 기와집 모양의 단종어소로 들어가니 그 안에는 단종의 모습을 본딴 인형과 주방침모, 또 찾아온 선비처럼 보이는 인형들을 재현하여 당시의 모습과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다. 수양대군은 단종의 인형을 보더니 무척이나 놀란다.
“홍위가 저렇게 저런모습 으로 이곳에 있었구나!”
“조금 더 둘러보시지요“
“...........”
어디 아픈것처럼, 헛것을 보듯, 계속 낮은 신음을 토해내는데, 단종의 유품인 곤룡포, 신발, 익선관 모형들을 둘러보는 대군의 표정이 심히 어두워진후 마당의 늘어진 소나무 가지를 보고나서는 아예 사색이 되었다.
“저 소나무는 왜 저리 늘어졌느냐?”
“저것은 엄흥도 소나무라고 하는데 그 유래는 이렇습니다. 단종대왕 께서 승하하시고 이 고을사람이던 엄흥도라는 사람이 야밤에 몰래 시신을 거두어 장사를 지냈는데, 그 충절을 소나무도 알게되어 그후 스스로 단종대왕 어소를 향해 재배하는 모습으로 기울어졌다고 합니다.”
“아. 그일이 생각나는구나. 아~”
얼이 빠졌는지 멍한 표정으로 어소 주변의 비석을 둘러보더니 그때부터 대군은 눈물을 글썽인다. 단종임금의 묘소 옆, 장판옥에는 단종을 위해 충성하다 목숨을 바친 268명의 위패가 있었는데 이 것을 본 대군은 다시 놀란 표정으로 나에 게 묻는다.
“어찌 이들의 명단이 세세히 보전되어 있느냐?, 이들은 한명회가 작성하여 올린 명단으로 내가 명해 가산이 몰수되고 극형에 처해졌으며 난 이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씩 읽어가며 마음속으로 저주를 했다. 그러나 너희후손들은 이제 노산군, 아니 홍위옆에 이들을 모셔 그 충절을 기념하고, 승자라고 자축하던 나와 공신들은 오히려 저주를 받아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으니 아! 이것은 참으로 나라의 비극이었구나.”
“대군의 공신들은 추앙을 받지 못하고 이들은 오늘날까지 추앙을 받습니다.”
“아~ 내가, 내가. 너무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이제서야 대군께서 행했던 악행에 대해 인정하십니까?”
“흑.흑.흑”
그냥 흐느끼기 시작한다.
단종의 묘소인 장릉 앞에서 수양대군은 봉분을 두팔로 감싸안고 드디어 절규한다.
“홍위야!, 내 조카 홍위야, 내가 아꼈던 홍위야~ 내가 널 죽였다. 숙부가, 이 숙부가 이제야 네 능을 찾아와 빈다..홍위야~ 내 조카 홍위야~. 내 형님 문종의 아드님, 우리 상왕전하 이셨던 홍위야, 이 수양숙부가, 널 죽이고 장사도 못 지내게 하였으니 내 이제 너에게 와 사죄한다. 홍위야, 내가,내가 이제 저승에서올라와 너의 능에서 빈다.홍위야 잘못했다. 숙부가 잘못했어..홍위야..어디있느냐, 나를 용서해다오, 저세상에서도 너를 보면 빌려고 했단다.이제 이제 내가 이제 숙부가 잘못을 빈다.”
4장 2부:-참회
서울로 들어오는 내내 대군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진심으로 단종께 속죄한다며 단한번 조카를 볼수있다면 빌고 또 빌겠단다.
“내 살아생전에도 홍위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으나 그렇게 말하거나 뜻을 보일수가 없었다. 난 진실로 홍위에게 큰 죄를 지은 대역죄인이다. 내 조카 홍위야. 이제 숙부가 너에게 빌고 저 세상으로 다시가 속죄하려 한다.”
“세종대왕과 문종대왕께는 하실 말씀이 없으십니까?”
“두분은 나를 벌레취급 하실테지, 내가 살이 썩어죽고, 내 자식들이 일찍 죽었고, 사직을 핑계로 많은 이 들을 죽이고 다치게 한 내 죄가 크다. 나의 공신들은 결국 훈구세력이 되어 훗날 조선의 해악이 되었으니 , 내가 망국의 원흉임이 분명하지 않느냐? 두 선왕께서 이룩해놓은 태평성대를 이어가지 못한 내가 죄인이다.”
“난 나만의 대의명분에 충실한 위선자였다. 그것은 맹목이었고 탐욕스런 공신들에 둘러싸여 죽는날까지 진정한 회개를 할수 없었다.”
“이제 진심으로 그 많은 이들에게 사과하실수 있으시겠습니까?”
“내가 홍위에게 미안하고, 만고의 충신 김종서와 사육신, 그들에게도 사죄하여야 하지만, 저승에서는 그들을 볼수없구나. 내가 고통가운데서 사죄하여 내 죄가 씻어질수 있다면 언제나 그리하겠다. 이개, 유응부, 박팽년, 하위지, 성삼문과 그 아비 성승, 아! 김문기, 그이도 있었지 유성원, 내 동생 안평과 금성은 또 어떻고, 아버님이 아끼시던 혜빈과 그 아들들도 죽였으니 내가 진정 사람이더냐? 나는 악귀였느니라”
돌아오는 차안에서 수양대군은 자기가 기억할수있는 모든 사람들, 죽이라고 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일일히 한명한명 불러가며 사죄한다며 두손을 합장한채로 고개를 숙이며 빌고 또 비는데 그중에는 내가 아는 이름들도 또 모르는 이름들도 있었다.
“내동생 안평과 금성, 그들이 보고싶다. 동복형제를 내 손으로 죽였으니 아! 난 참으로 악귀구나, 김종서의 후손들이 말한 그대로 내가 악귀다, 천년을 묵은 악귀였으니 같이 자란 나의 동생들을 내 손으로 죽였구나, 안평, 금성아. 이 형을 용서해다오, 고통속에 있을때조차도, 너희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지 않았다, 형 이 죽일놈이다.”
4장 3부: 만리재, 경복궁, 무계정사
마지막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수양 대군은 노트에다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무엇을 쓰십니까?”
“내가 오늘 저승으로 돌아가는 날로 알고있다, 가기전에 사죄의 뜻을 담은 서신을 김종서의 문중에게 전하려 한다. 내가 저승으로 돌아가고 난후 준, 너가 전달하라”
“알겠습니다, 그럼 누가 썼다고 할까요?”
“수양대군, 이유의 후손이 썼다고 하라”
노트에는 한자로 가득채운 수양대군의 편지가 적혀있었다.
정갈하고 힘 찬 글씨체. 인간은 대게 마지막 순간에는 반성을 한다. 그것이 참이든 진실이든 그런순간이 주어지는 인생의 끝은 복되다. 자기의 앞날을 알수없는 까닭에 숨이 붙어있을때 하는 반성은 나름의 가치가 있다.
“내 너에게 부탁이 있다, 준아”
“무엇입니까? 말씀을 하시옵소서”
“대군시절에 살던 잠저를 보고싶다, 내가 사저로 거하던 곳 말이다.”
“명례궁을 말씀하십니까? 명례궁은 이미 위치를 이전하여 옛 모습을 찾기 어렵습니다.”
“아니 그 명례궁에 살기전에 잠시 살던 사저가 만리재에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곳이라 아는 사람들이 많이 없을것이다. 내가 명례궁으로 들어가기전에 나와 부인윤씨가 처음 신방을 차리고 재미있게 살던곳이다. 실록에도 나와있지 않는곳을 내 오늘 너에게 처음 말하는 것이야. 만리재에 고개가 있다. 거기까지만 가면 대략 지세를 보아 가늠할수 있다. 내 너에게 간청한다, 준아.”
시계를 보니 만리재를 거쳐 광릉으로 가기까지는 충분했다.
“가시지요”
공덕역인근에 차를 세우고 함께 만리재로를 걷기시작한지 얼마안되서였다.
“여기, 이 부근이었다, 나의 잠저는”
대군이 짧게 소리치며 발걸음을 멈춘다.
대군이 가리키는 고개밑의 그곳은 작은 교회가 있었고 대군은 그 주변을 한참이나 둘러본다. 오백년 전, 이 자리에는 하늘의 뜻을 어긴자가 살고 있었다, 그러나 5백년 후, 이 자리는 하늘의 뜻을 전하는 교회가 들어서 있으니, 삶이란 이렇게 아이러니이구나. 악이 자라던곳은 때로 선을 실천하는 장소로 쓰임 받으니 말이다.
대군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서 말한다.
“고맙구나, 준아, 가자 내가 갈 곳으로”
광릉으로 출발하면서 차 안에서 대군은 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저는 대군께서 경복궁이나 명례궁을 보고 싶다 하실 줄 알았습니다, 잠깐 계셨던 이 잠저터를 보고 싶어하셨던 까닭은 무엇이셨습니까?”
“만리재, 이곳에 있던 나의 잠저에서 중전 , 부인윤씨와 함께 신방을 차린곳이다. 이 곳은 내가 순전하고 권력을 탐하기 전, 유유자적하게 살던 곳이었다. 너희 후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을게야. 잠시 있던 곳이었으니, 명례궁으로 들어가고 난 후부터는 악귀가 되어버린것이고, 그때 그 예전의 그 시절을 추억해 보고싶었다. 이곳에서 살면서 두 동생 안평과 금성, 벗이었던 범응(신숙주)과 함께 술을 마시고 활을 쏘며 놀던시절이 얼마나 좋았던지? 난 그때의 그 봄이 그립구나, 문종형님께서 홍위와 함께 찾아오시어 비단과 어주를 하사하고 가시던 그 봄, 그 봄날의 따뜻함이 그립다.”
“보시고 싶은 것을 보셨으니 제 마음도 편합니다.”
“너는 중부님(효령대군) 의 손자라 인정이 많구나, 효령숙부께서도 늘 염화미소를 띄며 언제나 내 마음을 위로해주셨다. 너희들이 하나님으로 부르는 상제께서 너를 만나게 해주신 것이 누구의 공덕인지 모르겠다. 준, 내 너에게 선물을 하고 간다.”
“그것이 무엇인지요?
“조선조 초기 문물에 관한 너의 연구, 그것을 보고 기억이 나는대로 주해를 달았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내 너에게 해줄수 있는것이 그것외에는 없다, 너의 서가의 산문집같은 백지책(대학노트를 칭함) 중간에 내가 정리해 놓았다. 이 일에 있어 서는 나만큼 아는 이가 없을터이니, 이 시대의 어느학자들이 당시를 살았던 나와 비할수 있겠느냐? 하!하!하!”
처음으로 웃음소리를 낸 순간이었다. 난 대군을 쳐다보고 감사의뜻을 전했다.
광릉으로 가기위해 외곽순환선을 타기전, 불현듯 깜짝선물을 하고싶어 차를 돌렸다.
안평대군이 살던 부암동의 무계정사를 들려 광릉으로 가기로 한다.
광화문을 거쳐 경복궁을 보니 대군의 얼굴이 무척 환해졌다.
“즉위하시던날이 생각나십니까?”
“부인 윤씨와 궁궐에 오니 만조백관들이 전부 모였었지. 저리 크지 않았었는데.”
“후세에 와서 개축을 하였습니다.”
“궁궐을 보여준 너의 마음이 고맙다, 저것은 나에게는 일장춘몽이었다.”
자하문터널 부근 부암동으로, 안평대군의 사저, 무계정사 앞에 도착했을때 대군은 깜짝놀란다.
“잠깐 내리시겠습니까?”
“여기는 내 동생 안평의 사저가 아니냐? 아 ~ 너희 후손들이 안평의사저를 보존해주었구나, 임금인 내가 살았던 잠저는 헐렸어도 죄인으로 죽은 안평의 사저는 보호해주었구나.”
무계정사는 많이 쇠락하여 겨우 그 모양을 지니고 있다. 쇠락한 사저를 보니 마음이 울적한지, 수양대군의 굵은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린다.
“안평아, 내 동생 안평아, 내가 사약을 보내어 너를 죽였으니 얼마나 나를 원망했겠느냐? 안평아.나를 용서해다오”
“내가 천년을 묵은 땅귀신이야, 사람이 어찌 동복동생을 죽일수있느냐? 난 악귀이니 그리하였구나, 안평아, 내 동생 안평아, 이제야 너에게 엎드려 사죄한다.”
5장 광릉
광릉에 도착하니 봄소풍을 나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이곳이 나의 능이더냐? 나와 중전이 묻힌? 내가 이런 울창한곳에 묻혔구나.”
“후손들이 묘소주변을 따라 나무를 많이 심어 휴게지로 만들었습니다.”
“내 유언으로 석실과 석곽을 만들지 말라 하였는데”
“그리하였습니다, 분부대로 그리 하였고 전하의 능 옆에는 중전께서 묻히셨습니다.”
처음으로 대군을 전하라 불러본다. 수양대군이 밝은얼굴로 날 쳐다본다.
능 주변으로 학생들이 관람을 하며 지나가고 혼잣말같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저들이 학습하는대로 난 어리석은 군주였노라”
그때였다, 주변이 환해지더니 관복을 입은 조선시대관리의 모습을 한 사람이 우리 앞으로 온다. 대군은 그가 누군지를 곧 알아보더니 몹시 반가워했다.
“너는 왕방연이 아니냐? 내가 홍위에게 금부도사인 너를 보냈는데 이생에서는 너가 나를 맞이하러 왔으니 이것이 나의 업보이구나. 나는 한명회가 올줄 알았다.”
“신이 전하를 뫼시겠나이다.”
왕방연은 나직히 단 한마디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수양대군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내 손을 마주잡으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준아, 내 너에게 많은 신세를 지고간다. 가기전에 중전의 능을 보게되어 기쁘기 한량없구나, 내 후손들에게 전해다오. 난 어리석고 우둔했다고, 잠깐 있다 사라지는 부귀영화와 권세를 탐하지 말고 충효와 의리를 소중히 하는 복된 후손이 되어달라고 전해라. 뜻이 의롭다고 하여 언제나 악에게 이기는 것은 아니지만 할수 있는대로 의롭게 살아가되, 나와 같이 살면 안 된다고 너의 힘을 다해 전하라!”
마지막 당부는 서릿발 같은 어명이었다.
“예, 전하 평안히 가시옵소서, 명하신대로 행하겠습니다.”
내 눈에도 눈물이 글썽이기 시작했다.
왕방연이 앞장서고 수양대군은 그의 뒤를 쫒아가며 자신의 능을 향해 걷는다.
능 앞으로 그들이 걷고있던 길 주변으로 지나가던 학생들 몇명이 모여있었다.
하늘은 몹시 맑았으며 따스한 햇살이 완연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아! 저이는 알고갔을까? 당신이 살던 만리재에 봄이 찾아왔음을, 오백년의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찾아온 그 봄을 당신이 스스로 가지고 왔음을?’
두사람이 거의 사라질즈음,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높여 외치고 말았다. 그리고 주변사람들,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주상전하 납시오! 주상전하 납시오!” (끝)
지동식
1976년생. 1996년 캐나 이민. 틴데일대 졸업(종교교육학사/B.R.E 및 신학연구석사/M.T.S). 서치 펌 GIHON NETWORKS 대표이사 재직 중. 2020년 애국지사 문예공모전 입상(장군의아들-김좌진 장군에 대한 소고).
소감:
역사라는 것은 재미있는 소재입니다. 과거의 어느 시대나 사건을 현대의 잣대로 재해석보고 평가해보는 것에 큰 의미가 있는 까닭입니다. 단종임금의 비극이 있기 위해서는 수양대군의 악행이 있었어야 했고, 사육신의 죽음을 통해서는
뜻이 의롭다고 하여 언제나 악에 이기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선한인물의 삶을 통해 희망을 얻는다면 악한인물의 삶을 통해서는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주는 상대성입니다. 문득 예전 역사속의 인물이 현대시대로 돌아와 자신에 대한 후세의 평가를 살펴본다면? 하는 상상으로 작품을 구성하였고, 그 인물이 실재하는 역사의 평가속에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게 된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생명을 갖고 살아가는 동안은 양심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에 가치를 둘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 바람으로 소설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단종임금 탄신 580주년을 맞이하여 대중문화에서 수차례 다루어진 수양대군의 이야기를 제 나름대로 구성해보며 과거의 인물이나 사건은 예전의 역사라하여 현재와 단절되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제 작품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졸필을 선정해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심사평(심사위원: 강기영-한국소설가협회 회원)
입선작 ‘만리재의 봄’은 소설로의 장점과 단점을 너무도 대조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심사에 곤혹스러움과 오랜 망설임을 안겨 준 작품이었습니다.
‘만리재의 봄’은 역사적 인물인 수양을 통하여 역사의 재평가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었습니다. 전반을 흐르는 작가의 해박한 역사 지식이 돋보였고, 작품을 주도하는 사학도가 500년 전의 역사적 인물들과 조우하는 도입부의 설정도, 실험적인 요소가 없지는 않지만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소설로의 감동보다는 학자의 논문이나 극본의 대화를 읽는 밋밋함으로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단편소설 한 편을 ‘1장; 문종과 단종 그리고 김종서’와 같이 열 한 개의 소제목을 붙여 가며 작품을 분해한 작법에서는 논문이 떠올랐고, 독자의 상상력이 아니라 작중인물의 대화를 통한 작가의 설명이 작품을 주도하는 부분에서는 극본이 느껴졌습니다. ‘설명하지 말고 보여 주어라(Showing not Telling)’라는 소설작법의 고전적 명제를 여러 번 떠올린 이유였습니다. 너무 어긋난 한글 맞춤법과 공모요강을 웃도는 원고지 매수도 감점요인이었습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만리재의 봄’을 입선작으로 추천하는 이유는 장점이 어렵지 않게 단점을 극복할 재능이 있는 작가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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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