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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왜 교육개혁이 안 되나?
권오율, 그리피스대학 명예교수, SFU 경영대 겸임교수
- 미디어2 (web@koreatimes.net)
- Apr 22 2022 09:47 AM
갖가지 매체를 통하여 여러 석학이 교육제도의 개혁을 주장하고 있다. 다가오는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창의력이 개인이나 국가를 위해 관건인데, 현재의 교육제도는 1960년대의 것과 다름없이 같은 구조의 교실에서 같은 식으로 교사가 지식을 주입식으로 전달한다. 이런 수업을 마치면 학생은 비싼 학원에 가서 같은 방법으로 학원강사의 지식 뿐 아니라 시험 예상 문제를 받아 달달 외우면서 시험 잘 치는 기술을 배운다.
이런 교육과정은 첫째, 학생들의 창의력 개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학생을 불행하게 만들어 청소년 삶의 만족도가 OECD에서 두 번째로 낮다. 셋째, 가계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은 OECD 평균치의 배가 넘고 회원국 중에서 제일 높지만, 국민의 교육 만족도는 최하권에 속한다. 넷째, 교육제도는 매우 불평등하여 교육과 소득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빈곤의 대물림을 하게 한다. 따라서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은 국가도, 교사도, 학부모도 다 안다.
교육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어지고 있다. 전두환, 김영삼 및 노무현 정부 때는 교육혁신 대통령 자문기구까지 설립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공정과 정의”라는 교육의 기치 아래 4차산업혁명 시대의 경쟁력인 창의를 높이기 위한 교육혁신을 주장했다. 혁신적인 교육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교육개혁은 변화하는 경제·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변혁하는 것이다. 무슨 제도이든 그 설립과 혁신은 그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결정된다. 현재까지 강조되어 온 교육개혁은 주로 교육의 공급 면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주입식 학습에 따른 수용적 태도를 지양하고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는 교육을 제공(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그 원인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한국 문화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교육문화와 그에 따른 교육의 요구(수요)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은 계층적 집단주의 사회로 차별이 뚜렷한 계급문화를 갖고 있다. 옛날부터 양반이나 선비는 최상계급으로 존경받았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열망은 깊은 문화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부터 경제발전, 산업화 및 도시화가 높아지면서 전통적 계급의식이나 양반 관행은 사실상 없어졌다.
그러나 산업화 시대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고급공무원직이나 산업계 요직을 차지하게 되고 부와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 사회에는 교육과 그에 따른 소득, 직업 및 권력에 의한 새로운 계층적 집단주의가 형성되었다. 적절한 사회보장제도가 없던 상황에서 부모들은 성공적인 자녀 교육이 가족의 부와 명성을 높일 뿐 아니라 그들의 노후를 보장해 줄 보험으로 간주해 왔다. 따라서 교육은 필수였고 그 수요도 과거 못지않게 높아졌다.
이런 문화에서 개인의 교육 수준이나 학벌은 사회계급 의식의 하나의 척도가 되었고, 교육 수준의 차이를 부각하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해방 전 까지만 해도 신분의 높고 낮음을 기준으로 결혼이 성사되었는데, 지금은 대학은 나와야 ‘결혼 상대를 구할 수 있다’든 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교육 중심 사회 관념이 두터워졌다. 이런 학벌주의 문화를 부추기는 데에 뉴스 미디어도 한몫을 한다. 매년 수능에서 수석을 차지한 사람의 기사가 신문에 특필되고, 어느 고교에서 어느 명문대를 몇 명이 합격했다는 기사도 나온다. 장관이 임명되면 그들의 학력을 보도하고 어느 대학 졸업자가 장관이 몇이 되었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런 사회에서 교육 경쟁은 자연히 심해질 수밖에 없다. 가족 중심 집단사회인 한국에서 가정들은 모든 자원을 동원하여 자녀를 명문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 경쟁은 유아교육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여 시간이 지날수록 치열 해진다. 경쟁이 심해지면 자연 서열이 생기게 마련이고 특히 최종 교육과정으로 보는 대학 교육의 서열은 더욱 뚜렷해 졌다.
최근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이 없으면 결혼 상대를 만나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좋은 직장을 잡는데도 서울에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면 유리하다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교육 현장(시장)에서 특히 실수요자인 부모들의 입장에서 수요는 먼 훗날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당장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직장을 잡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다.
이렇게 교육열이 높은 사회에서 대학 학생 선발은 무척 어려운 것이다. 해방 후 대학입시제도가 11번이나 바뀐 것이 그 어려움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학입시제도가 여러 차례 변해도 고교의 내신성적과 전국 수능시험 결과가 오랫동안 근간이 되고 있었다. 2007년부터 입학사정관제가 시작되어 대학 입학을 객관적인 점수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생의 잠재 능력, 소질, 경험, 성장환경 등 13개의 비 계량적인 요소를 종합하는 학생생활기록부에 나타난 내신을 주 평가로 수시모집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대학 입학이 개인 진로에 너무나 중요하고 정실 관계가 깊은 한국문화에서 수시모집의 폐단이 ‘조국 사태’로 잘 나타났고, 윤석열 새 정부도 수시모집을 감소하고 정시모집을 확대하려 한다. 위험 회피성이 높고 사회 신뢰가 낮은 한국에서 객관성·투명성이 부족한 고교 내신 등급 평가만을 그대로 믿고 안주할 학부모는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은 내신과 수능을 다 준비하기 위하여 학교 수업을 정상적으로 받고 방과 후에는 학원에 보내어 여전히 심각한 경쟁을 하게 하고 있다.
대학생은 입학하자마자 곧 취업 준비를 시작한다. 그들은 취업에 창의력과 좋은 인성이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창의력과 인성을 측정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또 취업이나 진학에 학점과 스펙이 일부 요구되는 현실에서, 학생들은 학점관리와 더불어 학원을 통한 스펙 취득에 집중한다. 그러니 아무리 교수나 정책당국이 창의력 개발을 부르짖으며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을 제공하려 해도 학생들은 수용적으로 받아 외워서 시험을 잘 보려고만 한다.
따라서 교육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저변에 깔린 교육에 관련된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문화는 오랜 기간을 통하여 점진적으로 변하는 것이라서 당국은 장기 정책을 통해 문화의 변화 운동을 유도해야 한다.
1)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학생들 간에도 교육 수준이나 학벌에 준한 차별과 편견을 자제하고 그런 말이나 행동을 수치스럽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 북미에서 미국 흑인을 옛날식으로 부르는 것은 금기사항이 된 것과 같다.
2) 서방 선진국에서는 학생 스스로가 진학할 대학과 전공분야를 정하는 데 반하여 한국에서는 주로 부모가 정한다. 창의력 개발의 한 요소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들의 간섭을 줄이고, 자녀의 독립심과 자기 성장의 책임감을 키워야 한다.
3)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정문화도 많이 변하여 자녀교육이 노후 대비를 보장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노후를 위해 준비해야만 된다. 선진국에서는 자녀들이 파타임으로 일을 하거나 학자금 대여를 받아 대학을 다니고, 일단 대학을 졸업하면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립하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녀 대학 비용은 물론이고 결혼비용, 첫 살림 전세비용까지 부담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관례도 바꿔져야 부모가 노후 대비를 할 수 있다.
4) 기업에서 인사관리 기준을 교육 수준에서 능력평가 위주로 바꾸고 학벌 낮은 사람이 큰 회사의 CEO가 된 사례 등을 크게 부각시킨다.
5) 뉴스 미디어도 정객이나 저명한 인사의 학벌을 보도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대학 교육제도의 혁신도 필요하다.
1) 창의력 개발을 위해서는 특정 분야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는 것에 비추어 볼 때 서양 선진국에서는 40과목을 수강하면 대학을 졸업하는 데, 한국 대학은 45과목 수강을 요구한다. 수강 과목 수를 낮추어 학생들이 파트타임 일하여 자립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도 주어야 한다.
2) 한국 대학은 국제화가 제일 낮은 기구 중의 하나로 국제적 경쟁력이 낮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대학 수준을 점진적으로 높이고 평준화하기 위하여 한 대학의 졸업에 필요한 총 학점 중 특정 비율까지는 타 대학에서 수강한 학점을 갖고 와도 졸업할 수 있게 한다. 비수도권 대학생이 수도권 대학에서 수강하면서 시야, 견해 및 네트워크도 넓히게 한다.
강의의 질이 대학 간에 다르고 학생이 주로 좋은 대학에 가서 수강하기를 원한다면 이런 제도는 전체 학생의 질도 높이게 한다. 수강 학생을 잃지 않기 위해서 대학 간에 경쟁하게 되고 강의의 질을 높이는 인센티브가 생긴다. 지방의 기업체 입장에서도 자기 지방대 출신을 채용하는데 더 자신감을 갖게 된다.
캐나다의 UBC 대학에서는 타 대학 학점교류가 50%까지 허용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시범적으로 10%(4년간 약 한 학기 학점)로 시작하여 반응과 영향을 충분히 분석하여 점진적으로 정책조정을 해 나가면 된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수강 학생을 잃게 되는 대학에는 정부의 지원이 어느 정도 있어야 이 제도가 유지될 수 있다. 이 제도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대학 등록금이 학점에 비례하지 않고 고정된 것을 학점에 비례하게 고쳐야 한다.
이렇게 정부의 정책과 인센티브를 통한 장기적 사회운동과 제도적인 변화를 통하여 교육에 관한 사회적 규범과 문화를 바꾸는 시대정신이 있어야 교육개혁이 가능하다.
권오율, SFU 경영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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