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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군 양성계획 포기 "돈과 총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7>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07 2022 09:08 AM
고국으로 가는 김약수·이여성과 결별... 홀로 길림으로
그는 마침내 뜻을 정하고, 약산이 봉천에 도착하자 곧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독립운동은 반드시 해외에 나와서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같이 국내로 돌아가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 일을 하자.”
김약수의 이런 의견에 대해서 이여성도 역시 생각이 같았다. 그들은 즉시 국내로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고 고집하였다. 그러나 약산은 이들 두 사람과 생각이 달랐다.
그는 뜻을 굳게 다졌다. 오직 무력을 가지고서만 독립은 이루어진다라는 그의 주장은 이때에도 변함이 없었다.
마침내 김약수는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고국으로 돌아갔으며 며칠 후에는 이여성도 그의 뒤를 따라 귀국하였다.
두 동지가 고국으로 돌아간 후 약산은 봉천에서 홀로 길림으로 향하였다.
▲ 대한독립의군부 칙명.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는 길림에서 1919년 2월에 결성된 독립운동 단체다.
그 무렵 길림에는 의군부(義軍府)라는 것이 조직되어 있었다. 주석에 여준(呂準), 군무부장에 김좌진(金佐鎭), 중앙위원에 손일민(孫逸民)·황상규(黃尙奎) 등이었다. 이들은 약산과는 모두 잘 아는 사이였다. 황상규는 호를 백민이라 하였는데 약산에게는 바로 고모부 되는 사람으로 어린 시절에 그에게 많은 감화를 주었고, 손일민·김좌진은 약산이 안동현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그들은 약산의 이 뜻하지 않은 방문을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자기들과 같이 일해주기를 바랐다. 물론 그들과 같이 일하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그러나 과연 일할 수 있을까 그는 의심이 들었다. 이곳에서 자기의 뜻을 살릴 수 있을 것인가 약산으로서는 의심스러웠다.
약산은 우선 그들에게 총을 구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한 10여 자루가 아니라 수백 자루의 총을 약산은 원했다. 그러나 대답은 시원치 않았다. 그들의 대답은 이러했다. 보통 수단으로는 도저히 총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마적들과 사귀어 그들을 통하면 혹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약산은 이런 방법으로 무기를 구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마적들이란 일종의 도적떼들인데 혹 누군가가 그들을 소개해준다 해도 만약 그들이 돈만 빼앗고 정작 무기를 내어주지 않으면 어찌 하나라는 것이 그의 걱정이었다. 마적이란 도적놈이요. 그들에게 의리를 지키기를 바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달리 좋은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약산에게는 이 무렵이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군대양성의 계획은 일단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단순히 무기를 구하기 어렵다는 것만이 계획 포기의 원인은 아니었다. 설혹 무기를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는 당초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이 필요한 만큼 있다고 하자. 그리고 돈도 있다고 하자. 그러나 돈과 총이 있다고 군대가 절로 생기는 것인가.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우선 우수한 장교와 많은 병졸들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같은 장교와 병사들을 언제 어떻게 양성한단 말인가. 또 만약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몇 백 혹은 몇 천 명 정도의 병력 가지고서는 도저히 목적을 달성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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