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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김원봉 단장 맡아
의열단 창단과 구국투쟁 <1>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ul 14 2022 08:46 AM
1919. 11. 10. 의열단(義烈團) 창단 정의를 위해 맹렬히 실행한다 미온적·온건 활동보다 폭력투쟁 지향 배신자는 처형... 매국노 등 암살명부 작성
▲ 의열단은 당시 만주와 중국 본토지역에 조직된 많은 독립운동단체가 미온적이고 온건한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판단, 이에 대한 반성으로서 과격하고 급진적인 폭력투쟁을 지향했다.
그해 겨울 11월 9일 밤이었다. 길림성 파호문(巴虎門) 밖, 중국인 반(潘)모의 집에서 약산은 동지들과 만났다. 약산은 이곳에서 그가 벌써 여러 해 동안 생각한 비밀결사를 조직할 준비를 서둘렀다. 모인 사람은 약산을 비롯 해 윤세창(尹世昌)·이성우(李成宇)·곽경(郭敬)·강세우 (姜世宇)・1番出(李鍾岩)・社昌己(韓鳳根)・社号】(韓鳳 仁)・石な会(金相潤, 一名 金相玉)・(申詰休)・助手包 (裵東宣)·서상락(徐相洛) 외 한 명, 이렇게 전부 13명이었 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나라를 위해서는 목숨쯤은 초개같이 여기는 애국자들이었다. 회의는 밤새도록 계속되었다.
▲ 서울 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 남아 있는 의열단 창립 초기 멤버들의 단체 사진. 오른쪽 위부터 단장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기득, 이성우. 앉은 사람은 정이소이다.
다음날 즉 1919년 11월 10일 새벽에 이르러 마침내 ‘의열단(義烈團)'이 결성되었다. 이 의열단이야말로 일본인들이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떤 결사대였다. 선거에 의해 약산이 의백(義伯) 즉 단장에 선출되었다. 그때 약산의 나이 22세였다. 그들은 이 자 리에서 '공약 10조(公約十條)'를 결정하였다.
<공약 10조>
1. 천하에 정의의 사(事)를 맹렬히 실행.
2. 조선의 독립과 세계의 평등을 위하여 신명(身命)을 희생한다.
3. 충의의 기백과 희생정신이 확고한 자만 단원이 됨.
4. 단의(劃義)를 우선함.
5. 의백(義伯)이 단체를 대표함.
6. 언제 어디서나 매월 1차씩 사정을 보고함.
7. 하시 하지에서나 초회(招會)에 필응(必應)함.
8. 피사(被死)치 아니하여 단의 (團義)에 진(盡)함.
9. 일(一)이 구(九)를 위하여 구가 일을 위하여 헌신함.
10. 단의 (團義)를 배반한 자는 학살함.
이 가운데 제4조는 동지를 애호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자는 뜻이며, 제8조는 천수를 다하자는 관념을 타파하려는 것이며, 제 9조는 개인이 아니면 전체를 이룰 수 없고, 전체를 떠나서는 개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암살대상자>
1. 조선총독 이하 고관
2. 군부 수뇌
3. 대만 총독
4. 매국적 (賣國賊)
5. 친일파 거두
6. 적의 밀정
7. 반민족적 귀족 및 대지주
후에 '의열단의 칠가살(七可殺)'이라 한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일컫는 말이었다.
<파괴대상>
1. 조선총독부
2. 동양척식회사
3. 매일신보사
4. 각 경찰서
5. 기타 왜적의 중요기관
암살대상에 대만 총독을 포함한 이유는 대만인도 왜적의 압제를 받는 약소민족이므로 깊은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내는 뜻이다.
암살 · 파괴의 대상이나 공약은 모두 약산이 직접 초안을 잡은 것이며, ‘의열단' 이라는 이름도 약산이 지었다. 공약 제1조에 '천하에 정의의 사를 맹렬히 실행하기로 함’ 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서 ‘정의(正義)'의 ‘의’와 ‘맹렬(猛烈)’의 ‘열’을 따 약산은 단의 이름을 '의열단' 이라고 지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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