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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중국 경찰들에게 쫓긴 김익상과 오성륜... 결국 구금
의열단 창단과 구국투쟁 <20>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Jan 15 2023 11:25 AM
상해 황포탄(黃浦灘) 사건 <4> 왜적 앞잡이 김태석이 두 의사 취조
이종암이 던진 폭탄은 영국 군인이 발로 차서 바다에 버렸다. 이종암은 군중들 틈을 헤치고 한참 달아나다가 위에 덮어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버리고 태연히 걸어서 동지 들이 세워 놓았던 자전거를 집어타고 달아나는 동지의 뒤를 따라 한참 가 보았다. 마치 구경하러 가는 군중들처럼.
두 동지들의 일도 걱정이 되지만 우선 자기의 변신술로도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다. 물론 그 자전거는 그런 경우에 쓰려고 다른 동지들이 미리 준비해두고 멀리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서상락·강세우 두 동지가 멀리서 자동차 를 지켜보면서 모든 장면을 보고 있었다.
김원봉은 그때 일부러 뒤처져 오다가 오성륜·김익상 두 동지가 달아나는 것을 보았으나 이종암을 보지 못해 염려를 하고 있던 터에 그가 천연스럽게 자전거에 기대 서서 구경꾼인 양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오성륜과 김익상은 같은 방향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중국 경관 한 명이 김익상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김익상은 가졌던 권총으로 공중을 향해 한 방 쏘았다. 총알이 없는 줄로 알고 위협용으로 쏘는 시늉을 하려고 했는데 한 방이 남아 있어서 땅 하고 소리가 났다. 겁에 질린 중국 경관이 움찔하고 물러섰다. 그런데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영국 군인이 김익상을 잡으려고 따라오며 총으로 쏘았다. 김익상은 이 영국인의 총에 손과 발, 그리고 왼쪽 가슴 에 부상을 입었다.
그래도 절뚝절뚝 피를 흘리며 뛰었다. 오성륜과 김익상은 많은 영국 경찰과 중국 경관에게 쫓기어 구강로(九江路) 를 지나 사천로(泗川路)로 달아나다가 결국 막다른 골목 에서 할 수 없이 잡히고 말았다. 그런데 김익상에게 총질을 한 영국 군인은 이름이 톰슨이라고 하는데 그 다음 김익상이 일본 구주 나가사끼(長崎)재판소에서 재판을 받을 때 증언까지 서면으로 보낸 일이 있는 자였다. 두 의사는 영국 조계 공무국에 구금되었다가 일본 영사관으로 넘겨졌다.
김익상이 총독부 투탄사건의 장본인이란 것이 드러나자 경기도 경찰부에서 김태석(金泰錫)이란 왜적의 주구가 와서 두 의사를 취조했다. 이 김태석이란 자는 1919년 서울역에서 사이또(齋藤) 일본 총독을 저격한 강우규(姜宇奎) 의사 때도 수훈갑을 올린 역적이고 밀양 및 진영 사건 때도 공을 세운 친일 반역자로 8.15 해방 후 반민특위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이승만이 건국공로자라 해서 무죄석방시킨 자이다.
▲ 친일 고등계 형사 김태석이 소개된 경향신문 보도. 민족문제연구소 제공
오성륜·김익상 두 의사는 각각 만 방에 갇혀 있었다. 오성륜의 방에는 일본인 사상범 한 사람이 갇혀 있었는데 이름은 다나까 쥬이찌(田中忠一)이었다. 공산주의에 물들어 있다는 혐의를 받고 들어와 있었다.
며칠이 지난 후의 일이다. 어떤 영국 청년 한 사람이 오성륜을 면회하러 왔다. 만나 보니 그 전날 그의 총알에 맞아 죽은 젊은 부인의 남편이었다. 결혼한 지 한 달 만에 상해로 신혼여행을 왔 다가 죽은 것이라고 한다. 성륜은 무어라 위로의 말을 해 야 좋을지 알 수 없어 그저 미안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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