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핫뉴스
"18살 때 끌려가 죽도록 맞았다"
43년만에 드러난 '학생 삼청교육대'
-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 Feb 18 2023 11:16 PM
이유없는 기합과 폭행, 항상 배고프고
【서울】 "머리를 깍아 분간이 헷갈렸지만 하나같이 다 중·고등학생이었지."
김모(61)씨는 43년 전 학생 삼청교육대에 끌려간 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 삼청교육 대상자로 신고당해 피신하다가 경찰에 잡혔고 약 한 달간 구금됐다.
이후 버스에 실려 강원도 화천 오음리의 제11공수여단 62연대 산하 유격훈련장에 입소했다. 학생 대상 훈련장이었다. 열여덟 살 때였다.
김씨는 1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버스 안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창 밖을 보지 말고 고개를 숙이라고 해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며 "버스에는 모두 앳된 얼굴의 학생만 탔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최근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확인한 삼청교육대 강제 입소 학생 600여명 가운데 한 명이다.
학생 삼청교육은 고(故) 전두환 씨의 계엄사령부 계획에 따라 1980년 9월20일∼10월18일까지 제11공수여단에서 있었다.
교육은 구타부터 시작됐다.
"훈련장에 도착해 군복으로 갈아입은 순간부터 총을 든 군인들이 몽둥이로 마구 때렸다. 이유는 없었다. 눈 감고 귀 막고 그렇게 매질을 당했다니까. 연병장으로 가는 계단을 기어서 내려가라고 시키고는 느리게 움직인다고 또 때렸지."
군인들은 온갖 트집을 잡았다. 기합 소리가 안 맞는다고, 혹은 목소리가 작다고 이유를 달았다.
하루는 중대장의 군홧발에 차이고 또 차이면서 연병장 끝에서 끝까지 100m 거리를 뒷걸음쳐서 걸은 적도 있었다.
김씨는 "살면서 그렇게 맞은 적이 없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악몽"이라며 생생한 기억에 괴로워했다.
그 중대장은 퇴소 후 한동안 잊고 있던 삼청의 고통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씨는 "퇴소하고 20년이 지나 우연히 그 중대장을 만났는데 단번에 나를 괴롭힌 사람이었음을 알아봤다"며 "그를 보자마자 갑자기 그날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를 따라가 따지고 싶었으나 그가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그 자리에 서서 그가 안 보일때까지 바라보기만 했다."
기합이나 다름 없던 고된 훈련과 매질도 모자라 늘 배가 고팠다. 너무 고통스러웠다.
"한번은 어린 학생이 식당에서 고기 몇 점을 집어 주머니에 몰래 넣고선 주위를 살피며 화장실에 가서 먹는 걸 봤다"며 "우리는 모두 그렇게 배를 곯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6월 우연히 언론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삼청교육이 중대한 인권침해였다는 사실을 알고선 진실화해위의 문을 두드렸다.
지갑 속에 고이 넣어둔 교육대 수료증을 꺼내 보였더니 곧 인정됐다.
"이게 남아있어서 수월하게 규명된 것 같다. 수료증을 이렇게 잘 보관한 사람이 없다고 들었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이번 화해위의 진실규명으로 80년대 전두환 군사정권이 자행한 학생 교육대의 실체가 더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김씨는 말했다.
"청소년만 모아놓은 교육대가 있었다는 건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라며 "국가의 공식 사과도 받고 싶지만 그보다 이를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www.koreatimes.net/핫뉴스
캐나다 한국일보 편집팀 (editorial@koreatimes.net)
전체 댓글
블루 ( bluedigit**@gmail.com )
Feb, 19, 11:34 AM당시 삼청교육대 갔던 학생들은 어찌됐던 너무나 너무나 심한 학교 문제아들 이였다. 우리 학교에서 간 학생이 둘이나 있었다. 어찌나 심했는지 학생들을 때리는데 친구나 후배들을 무지 막지하게 때리고 머리가 다 깨지고, 이빨이 나가고 심지어 팔이 부러지고, 시시 때때로 학교 기물이나 유리창 깨고 영화에 나오는 그런 모습들이었다. 자기들도 학생들인데 후배 아이들을 얼차례를 주고 엎드러 뻗혀 시키거나 원산 폭격시키고 발로 차고, 위 기사에 나온 그 삼청 교육대 같은 모습들이었지. 나도 당한 한 사람이다. 그 조폭같은 아이들만 오면 학급 분위기나 학교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정학도 당하고 결국 퇴학 당했지만, 계속 학교에 와 행패를 부려 결국 학교에서 삼청 교육대에 보내게 된 것이었다. 당시에는 우리들은 그 당시 사회적인 통념과 분위기 상 그 소위 나쁜 학생들이 무슨 교육대에 가니까 잘 됐다고 쾌재를 부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곳이 그렇게 심하고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곳이었는지 몰랐었다. 우리 역사에서 정말 안타까운 시절, 불행한 한페이지이다.
다만 그것 뿐인가? 사회 전반에 깔려있던 뿌리깊은 이데올로기, 그로 인한 가족간, 친구간, 학교에서 직장에서 서로 적대시하고 차별하는것, 그리고 지금까지도 사회 전반에 팽배한 지역 차별, 이 모두가 대한민국 이 가지고 있는 문제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