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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향군의 한인 기수단장 정운용
그리스독립기념일 퍼레이드 선두에 서다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Mar 31 2023 11:54 AM
캐나다교회 장로로 목사 면접위원 역할도
◆ 26일 토론토 그리스타운 댄포스(Danforth)지역 열린 그리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정운용(맨앞)씨가 캐네디언 향군 소속 기수단장을 맡아 행진하고 있다.
그리스는 1821년 400여년간 지배를 받던 튀르키예(터키·오스만제국)에서 독립했다. 이에 비하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36년간 한국 지배는 잠시에 불과할까?
지난 26일 오후 1시30분 토론토 그리스타운 댄포스(Danforth)지역에서는 그리스인들 수천명이 퍼레이드로 독립을 기념했다. 퍼레이드의 선두와 후미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토론토의 그리스 커뮤니티는 이날을 매년 퍼레이드로 기념한다. 코로나 기간에는 중단했지만 보통 때는 한 해도 거른 적이 없다고 관계자들은 말했다.
퍼레이드 인파는 댄포스 선상 던랜즈부터 로간 애비뉴까지 1km에 뻗쳤고 도로를 중심으로 남북 길가에는 수많은 그리스인들과 다양한 피부의 시민들이 나와서 박수를 치고 환성을 질렀다.
퍼레이드의 맨 앞 선두에는 캐네디언 향군 소속 기수단이 섰다.
이들을 이끄는 기수단장은 향군 정복차림의 정운용씨였다.
Regimmental Sergeant Major: RSM이라는 호칭을 가진 그의 구령에 따라 기수단이 움직였고 이에 따라 퍼레이드가 보폭을 맞췄다.
초등학생 나이 정도의 어린이들이 어느 연령대보다 많았다. 어린이들은 그리스 전통의상을 입었고 그리스기를 열심히 흔들었다. 성인보다 2세, 3세 자녀들이 더 많아 이와 정반대인 한인사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퍼레이드는 1만명 정도로 구성됐다지만 아무리 에누리해도 수천 명은 넘었다. 광역토론토GTA에 사는 그리스인들은 15만∼20만 명이어서 한인인구와 큰 차이가 없지만 우리는 3.1절이라고, 해방된 8.15라고 해서 퍼레이드는 물론 파티 한 번 요란하게 갖지 못했다.
◆26일 댄포스에서 열린 그리스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서 어린이들이 그리스 전통복장을 입고 행진하고 있다.
퍼레이드 구성자들은 그리스어 학교, 종교단체, 취미나 사회운동, 사업계 대표단체 등이었다. 물을 보면 고기가 몰리듯 여러 명의 이곳 정치인들이 합세, 얼굴을 내밀었다.
악단도 여러 개가 등장했고 교차로마다 설치한 스피커에서 그리스 노래가 나와 분위기를 높였다. 그들은 그저 손을 흔들면서 걸었을 뿐 토론토의 유명한 ‘크리스마스 퍼레이드’처럼 다양성은 없었지만 이를 TV가 아니라 눈으로 보는 것은 장관이었다.
기수단장 정씨는 오후 1시30분 큰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후에 그의 설명을 들으면...
“가드, 어텐션(기수단 주목), 캐리 칼라(깃발을 들어라), 바이 더 레프트 퀵 마치(행군 시작) 등이었다. 퍼레이드가 오후 2시30분 로간 애비뉴에 도착하자 정단장은 기수들에게 소리쳤다. “홉Hop, 오더 더 칼라Order the Color, 브레이크업Break up!”. 뜻은 ‘일동 중지, 기를 내려라, 해산’이었다.
기수단은 이곳 정치인들과 그리스 정부 관리들이 로간 애비뉴에 세워진 그리스 독립운동가 동상에 조화를 놓을 때 또다시 깃발을 올렸다 내리면서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 분위기를 엄숙히 잡아주었다.
정단장은 누군가.
1952년 생으로 70세를 살짝 넘은 그는 81년1월 캐나다로 이민했다. 토론토 조지브라운칼리지에서 회계를 배워 CGA자격을 받은 후 온타리오주 연금공단(Pension Board)에 들어가 32년을 회계사와 감사(Audit officer)로 근무했다. 2019년 8월30일 임직원들의 환송을 받으며 수십년간 근무한 공단을 나설 때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강철을 씌운 듯 타프한 인상을 주는 그 역시 눈물을 지울 수 없었다.
그는 한인모터사이클 클럽의 중추적 인물이다. 그가 애지중지하는 모델은 혼다 인터스테이트 1300 CC 크루즈(Cruise) 형. 그는 출퇴근 뿐 아니라 한인사회 행사나 주말이면 자주 이것을 애용했다. 이 때문에 원래 흰 피부가 필리핀이나 인도사람들처럼 됐지만 그는 전혀 개의하지 않는다.
그가 개의하는 것은 또 다른데 있다.
원래 한국 해군 출신으로 배도 탔고 고적대에서 트럼펫도 불었다. 이 경력으로 그는 온주 한인향군에 가입, 8∼9년간 해군 부회장을 맡았다.
그가 캐나다향군 소속 리전Legion에 가입하고 기수단장까지 된 것은 흥미롭다. 규칙상으로는 캐나다군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가입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난관을 뚫고 가입한 (아마도) 전국서 유일한 한인으로 보인다.
그는 이민 후 댄포스 부근 서양교회 웨스트민스터 장로교회를 다녔다. 얼마 후 이 교회의 장로가 되어 당회서기가 됐고 이제까지 재정과 회계책임을 맡았다. 지금도 헌금을 집에 가져가 집에서 계산, 입금한다. 그만큼 교직자와 교인들의 신임이 크다.
근처 로간 애비뉴 선상에는 향군 리전 #10이 있었다. 한때는 1,500명의 회원을 가졌으나 자연도태, 현재는 60∼70명이 정식멤버다. 이밖에 가족과 자녀들이 준회원으로 시설을 이용한다. 역대 군복과 소총 등 무기, 영웅적 장군 사진 등이 전시됐고 식당, 음식이나 음료 판매소, 친교실 등 편의시설이 있다. 퇴역군인들이 모여서 친교하는 향군클럽이다. 1년 열 두 달 각종 행사가 이어진다.
정씨는 교회목사와 인근 유지들의 추천으로 리전10에 가입했다. 평소 가입을 생각하지도 않았는데 향군 측에서 이례적으로 받아준 특채였다. 벌써 22년 전이므로 그는 향군에서도 고참급이며 중요 운영멤버로 활약한다.
주정부 연금으로 부인과 1남1녀 가족을 돌보기 때문에 은퇴한 이제는 무료봉사로 나섰다. 연간 12∼15번 기수단으로 참가하는 것도, 매년 11월11일 캐나다 전몰장병의 날을 맞으면 양귀비꽃(파피poppy) 판매에 나서는 것도 모두 봉사다. 리전10은 파피 판매수입으로 연간 8만 달러 정도의 수입을 만들고 이 수입은 모두 리전이 사용한다. (파피 원가 25센트)
1박스에 보통 200∼300달러 수입을 올리는데 소리 없는 봉사꾼 정씨는 다운타운의 사무실 많은 지역에 나가 1천 달러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단연 빛나는 업적이었다.
정씨가 이곳 기독교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 역시 처음 알려졌다. 그는 캐나다장로교단의 목사선정위원회 위원 3명 중 한 사람으로 장로교단의 목회자가 되려면 정씨와 반드시 면접하고 질의응답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한인사회의 장로교단 목회자들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이제까지 숱한 목사들을 인터뷰했다.
그는 어떻게 캐나다사회에서 이만한 업적을 이루었는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묵묵히 성실하게 의무를 다하고 결코 자랑하는 법이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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