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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접화법과 겉보기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 관리자 (it@koreatimes.net)
- Apr 18 2023 08:41 AM
일본 와카야마시 사이카자키에서 보궐선거 지원 연설에 나선 기시다 후미오 총리에게 폭발물이 날아와 대피하는 소동이 빚어졌다는 기사가 떴다.
던져진 후 50초 만에 폭발물이 터졌을 때 총리와 용의자의 거리는 10m였고, 경찰관 한 명이 경미한 상처를 입었을 뿐이라고 한다. 200여명의 시민과 당 간부들이 모인자리여서 큰 피해가 있을 수도 있었는데 그만하다니 다행이긴 하다. 작년(2022년) 8월에 내각총리 아베신조(安倍晋三)가 나라현에서 선거 유세 중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을 치른 일본사람들로선 더욱 긴장했을 일이다.
그 기사는 일본인이 아닌 나의 생각을 잠시 멈추게 했다. 용의자에 대한 언론이나 이웃들의 묘사 때문이었다.
산케이신문과 이웃 주민들의 용의자에 대해 가족과 함께 사는 ‘평범한 청년’이었다고 했고, 뉴스를 통해서 사건을 본 한 사람은 동창 같아서 퇴근 후 졸업앨범을 뒤져보고 중학교 동창임을 확인했는데, ‘중학교 때 조용했고 눈에 띄는 타입이 아니었다’고 NHK에게 전했다고 한다. 24세의 용의자를 그 동창생의 말로 계산해보면 중학생 이후에 대충 1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으니, 그때는 드러나지 않는 조용한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세월이라면 개성이 바뀔 수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는가. 더구나 ‘질풍노도의 시간’으로 대변되기도 하는 사춘기를 거쳤으니 어떻게 변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어디 외모뿐인가. 간접화법 또한 그렇다. 나의 생각이 멈춘 바로 그 지점이다.
근래 우리 사회에서 간접화법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을 감지하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빙빙 애둘러 표현하는 간접화법은 인권이니 배려니 하는 그럴듯한 말을 앞잡이나 꼬리로 이용하면서 대중의 언어습관을 바람직하지 않게 길들이고 있다.
간접화법이 적당한 말 속에서, 적당한 글 속에서, 적당한 상황에서 사용되면 매우 효과적이다. 그렇지 못할 때엔 관계를 악화시키는 음흉함이거나, 양다리 걸치기의 비굴한 변명이거나, 공격성을 감추고 있는 음모의 칼날이다.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사이를 멀게 만든다.
겉보기로 속내를 짚어낼 수 없듯이 간접화법 역시 칼날을 숨기고 있다. 속내를 감추고 표정을 가장하기 때문에 간혹 눈치 채지 못해서 당하기도 하겠지만, 알면서도 묵묵히 견뎌내고 만다. 휩쓸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 또한 간접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말에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또 ‘구멍에 든 뱀이 서발인지 너발인지’하는 말도 있다. 춘인추사(春蚓秋蛇)라는 말도 있다. ‘봄 지렁이와 가을 뱀’이라는 뜻이다. 아직 덜 자란 지렁이가 봄볕에 노출되면 힘을 못 쓸 것이고, 서늘해진 날씨에 미처 동면에 들지 못한 가을 뱀이 맥을 못 추는 것을 빗댄 말이다. 가늘고 빈약해 보이는 글씨를 말할 때 비유되기도 하지만, 조용하고 나약해 보이는 겉보기와 다르게 엉뚱한 행동을 한 사람을 말할 때도 인용한다.
우리는 종종 그런 일을 경험하기도 한다. 2018년, 11명을 숨지게 하고 15명이 부상을 입힌 노스욕의 교통사고도 그렇고, 그 외에도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는 몇몇 총기사건과 묻지마 사건들을 보면 사고를 저지른 사람들의 외모에 특별난 구석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조용하거나 별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경우였다. 바로 그 별 이유가 없어 보이는 것이 서발인지 너 발인지 모를 구멍속의 뱀이고, 봄 지렁이 가을 뱀일 수 있다.
사건이 터진 후에 정신질환이 등장하기도 하고 사회 탓으로 돌려지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모두가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외모만으로 속단할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깨우쳐준 셈이다.
간접화법의 성행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다.
일이 터지고 난 후엔 으레 정신질환이 들먹여지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이 증가 추세인 것도 사실이다. 팬데믹을 겪으면서 생긴 정신건강문제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은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성행하는 간접화법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병리현상을 부추기는 한 변수일 수밖에 없다.
올바른 소통을 위해서는 잠시 치고 박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면서 이해심과 배려심을 키워나가는 것이 사회의 정신기반을 더욱 든든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알면서도 간접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간접화법보다는 선명한 의사표시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하루빨리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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