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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버지! - 속죄의 마음으로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Updated -- May 17 2023 11:58 AM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May 17 2023 11:51 AM


또 다시 5월은 왔고, 나는 사무친다.

주변에서 부모님들을 위한 선물을 마련하고 시간을 내어 찾아 뵙느라고들 분주하다. K-문화사랑방의 회원들에게 내준 5월의 글감주재는 ‘목련’ ‘5월’ ‘하늘’ 그리고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목련’과 연관지어, 부모님을 표현하기도 하고, ‘생각나는 사람’으로 부모님을 떠올렸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어 부모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 감회를 표현하기도 했다.

문득, 전화를 걸 수도 없는 곳에 가 계시는 나의 아버지가 솟구치게 그리웠다.

너무 멀리 계시는 아버지!

신혼살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였다.

저녁식사 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똑똑똑, 뒷곁 쪽의 부엌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였다. ‘아빠!’ 너무나 놀라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었다. 쉿! 아버지는 손가락을 세워 입술에 대고는 나를 밀치듯 주위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부엌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얼핏 눈에 띄었다. ‘뭐하고 있었냐?’ ‘저녁준비를 하려고요’ ‘밥은 제대로 할 수 있냐?’ 부엌을 둘러보시며 뒤쪽으로 감추고 있던 비닐봉지를 풀고 신문지를 뜯어 부뚜막에 있는 함지박에 쏟았다. 조기 몇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아빠, 뭐야?’ 그때 앞마당 쪽에서 두런두런 인기척이 들렸다. 쉿! 아버지는 입술위에 손가락을 댄 채, 잽싸게 뒷문을 열고 간다! 나지막한 그 한 마디 남기시고 사라지셨다.

밖에서는 그토록 근엄하시던 아버지, 시장엔 얼씬도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 우리들에게 재롱받이 한 번 안하셨던 아버지, ‘사나가 남사시럽구로 와 부엌에 들어가노?’ 하시는 할머니의 말씀대로 부엌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내가 신혼살림을 차린 I시(市)에 출장 오셨다가 돌아가는 길에 일행을 따돌리고, 사람들이 뜸한 뒷곁 문으로 오셨던 것이었다. 시장에 들려 생선까지 사들고.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밥은 제대로 할 수 있냐? 그 말도 잊지 못한다.

그로부터 나는 아버지를 떠나 살게 되었고, 지금은 더 멀리 와서 살게 되었다. 아버지처럼 머리에 흰 눈을 얹기 시작할 무렵, 한국방문을 앞두고 흰머리를 아버지께 보이는 것이 죄송하여 염색을 시작했다. 늙어가는 딸의 모습에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싶어서였다.

이제 아버지는 전화도 안 되는 더 먼 곳으로 떠나셨고, 내 머리위의 흰 눈은 무게를 더해가고 있는데, 갈수록 아버지에게 못다 한 송구함이 쌓여만 간다. 그래서 5월이 눈물겹게 사무친다.

아버지 거북등에 흥건하던 땀 냄새

어머니 앞섶 안에 뭉클하던 젖 냄새

끝끝내 삭아들지 않는 내리사랑 그 냄새

-思父母曲(사부모곡)

나의 친구인 J교수는 중학생 때까지 학교성적이 뛰어나지 못했다. 반에서 중상위정도였다. 어느 학기말 시험 때 여전히 중상위를 벗어나지 못한 성적을 감추기 위해서 선생님이 날려 쓴 7자를 살짝 고치고 동그라미(0) 한 개를 더 쳐서 100점으로 위조한 답안지를 내밀며 반 1등이라고 속였다. 그 시험지를 받아 든 아버지는 드디어 우리아들이 반에서 1등을 했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내며 잔치를 벌이셨다. 돼지 한 마리를 잡고 흥건해진 막걸리 판에서 “우리 아들이 이번 시험에서 1등을 했으니 장차 대학교수가 될 것이야”라고 자랑을 하며 덩실덩실 춤까지 추셨다. J는 그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조리며 아팠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때 작심을 했다. 어떻게든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교수가 되어야겠다고. 결국 대학교수가 되었다. 대학교수 임명장을 아버지께 바치는 날, 무릎을 꿇고,

“아버지, 사실은 중학교 때 제가 아버지를....” 했을 때,

“안다 알어 이놈아.” 아버지의 그 한마디에 아버지의 무릎위에 엎어져 통곡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다. 근엄한 모습은 간 데 없이 시집간 딸의 밥 지을 걱정을 하고, 알면서 모른 척, 지긋이 눌러주는 그 속 깊고 묵직한 사랑을 아버지 말고 어디서 찾을까.

樹欲靜而風不止(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자욕양이친불대)

‘나무는 가만히 있으려하나 바람이 그냥 두지 않고, 자식이 부모를 모시려 해도 부모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그저 옛말로만 흘려버리면 안 될 일이다.

마음으로야 하고 싶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이유야 있겠지만 이것만은 새겨두자.

행여 아버지의 은혜를 소홀히 한다면 이유야 어떻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떠받치고 있는 소중한 기둥하나를 잃는 것과 같다!

뒤늦은 후회는 티끌만도 못하다.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 속죄의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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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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