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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다 (4)
단편소설 (2023. 시와정신 해외문학상 수상작) - 김외숙
- 관리자 (it@koreatimes.net)
- Jun 01 2023 12:47 PM
‘모르는 것이 낫다. 낯익히면 못 뗀다.’
그때 혼절에서 깨어나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잠시 잊고 있었을 때 어머니는 내 침대 머리맡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단칼에 자르는 것 같은 매운 말보다 내가 왜 소독 냄새 물씬한 그 침대에 누워있어야 했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지방의 병원에서 겪은 졸음과 함께 쏟아지던 통증을 이기지 못해 혼절을 했던가? 지방을 찾았던 것은 아마도 주변의 시선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으리라. 아랫도리를 생으로 찢는 것 같던 아픔보다는 터져 버릴 것 같던 배의 통증이 견디기 힘들어 엄마를 부르짖는 순간 뭉텅 뭔가가 빠져나가는 느낌과 함께 정신을 놓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아기를 본 적이 없다. 아기는 내 몸을 빠져나간 후 내 어머니에 의해 어딘가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내 어머니가 아기를 떠나보낸 사실보다는 내 몸에서 뭉텅하니 빠져나가는 것 같던, 그래서 이제는 쭉정이가 되어버린 듯 비워버린 나의 배에 더 허전해하기도 하고 홀가분해 하기도 하며 누워있었다.
내가 그 아이의 행방을 궁금해 한 것은 훌쩍하니 비워버린 배와는 달리 나날이 부풀어 오르다 절로 흘러넘치며 옷을 적시던 젖가슴을 본 후부터였다. 넘치며 흐르는 젖을 입에 대지도 못한 채 어딘가 보내져야 했던, 오랫동안 내 뱃속에서 자란 그 생명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는데 어머니는 침묵하셨다. 그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대책은 얼마나 민첩하고 깔끔하던지 전신을 갈갈이 찢는 진통에서 혼절을 한 번 하는 사이 없는 일이듯 해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시침을 떼셨다, 마치 내가 맹장염 수술이라도 한 것처럼. 남은 것은 내 몸속의 이탈한 뼈 조각이며 살이 제자리를 찾는 일만큼이나 내 마음을 수습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탈한 뼈들은 제자리를 찾는데 찢긴 마음은 수습할 길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냉혹함이 민첩함이 두려웠다. 그리고 정말 맹장을 떼어낸 듯 어린 딸로 대하시는 어머니의 그 살가운 가식이 낯설고 무서웠다.
나는 어머니를 떠났다. 그것은 낯설고 무서운 어머니에게 생으로 살점을 떼어 떠나보낸 심정이 어떠한지를 처절하게 경험해 보라는 의도도 다분했었다. 어머니에 대한 오기는 알게 모르게 오랜 세월 동안 내 가슴에 침잠해 있었다.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던 그 침전물이 알리가 ‘내 아이’라는 말로 휘젓기라도 한 듯 우루루 먼지처럼 들고일어난 것 같았다. 그런데 내 속을 알 리 없는 알리는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나보다 더 많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청혼에 대한 아니, 더 정확하게 날 통해 얻고자 한 그의 혈육에 대한 대답을 내가 갖고 갈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한참 랩탑 화면과 씨름하던 옆의 남자가 승무원에게 마실 것을 부탁했다. 승무원이 소다가 든 캔과 플라스틱 컵을 가져왔을 때 나는 와인을 청했다.
술을 그리 즐겨 마시지는 않지만 장거리 여행 시 역시 잠을 청하는 방법으로 유익하다.
나는 승무원이 가져다준 작은 병의 와인 병마개를 따고 플라스틱 컵에다 부어 한 모금을 마셨다, 마치 이 여행에서 잠을 잃으면 결코 목적지까지 갈 수 없기라도 한 듯. 쌉싸름한 레드 와인을 혀 위에서 굴리듯 하다 목으로 넘긴다. 와인은 한잔을 다 마시지 않아 그 효과를 드러내리라. 어깨죽지를 나른하게 하고 눈까풀을 무겁게 짓누르면서 술기운은 금방 몸에 퍼지리라. 그리고 잠에 빠지게 되리라. 알큰한 술기운을 느끼며 머리를 기대는데 옆의 남자가 잠시 창의 가리개를 올려 바깥을 보더니 이내 닫고는 언뜻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남자는 창을 통해 갑자기 빛이 들어와 잠을 청하려는 내 시야에 와 닿으며 행여 방해한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는 것 같다. 나는 아주 잠깐 괜찮다는 미소로 응답하고는 눈을 감는다. 정면으로 보니 더 많이 알리를 닮은 얼굴이다. 아니 그들, 아랍계의 남자들은 누구든 모두 알리 같다, 생김새가. 내가 아랍계의 남자들을 볼 때마다 알리를 생각하는 것은 내 마음속에 알리를 품고 있다는 뜻일까? 그래, 나는 분명 알리를 생각한다. 내가 없는 연구실에서 날 기다릴 그를 생각하고, 내 아기를 갖고 싶다던 고백도 감미롭게 기억한다. 그러나 내 감정이 지극히 순순하다가 알리의 그 말, ‘내 아기’라 던 그 말만 생각하면 그만 전신이 짜릿해지는 전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돌부리라도 만난 듯 멈칫하게 된다.
그 아기에 대한 내 마음의 작별의식 없이는 결코 어느 누구의 아이도 가질 수 없다는 내 속 깊게 가라앉은 앙금. 그 앙금이 내 속에 남은 한 나는 어느 누구의 아이도 가질 수 없다. 그것이 내 속에서 사라지는 순간은 어쩌면 어머니를 이해하는 순간일 테고 그 아기에게 진심으로 그때의 나를, 내 어머니를 이해시킬 수 있는 순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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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it@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