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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창작 사이
- 관리자 (it@koreatimes.net)
- Jul 04 2023 01:59 PM
‘없던 것을 새로 만드는 것, 새로운 것을 처음으로 만드는 것’은 창조와 창작의 사전적인 간단한 의미이다.(위키 백과, 옥스퍼드 백과 참조)
실은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지만, 우리 의식 속에 있는 두 단어, 창조와 창작의 의미의 차이는 꽤 크다. 특정 종교를 두고 있는 사람에게 창조는, 신의 천지창조의 의미가 될 것이다.
두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아무리 새로 만드는 것, 새로운 것을 처음 만드는 것이라 할지라도 둘은 서로 다른 조건의 생성의 환경을 두고 시작한다. 그러니까 창조가 애초에 아무것도 없던 것에서 뭔가가 존재하도록 하신 신의 작업이라면, 창작은 신이 만드신 이 세상, 우주 만물, 그것을 소재로 하여 인간이 다시 짓는 작업이란 의미에서 창조와 창작의 의미는 구별된다. 이는 작가가 우주 만물을 소재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말 한마디로 이미 만들어진, 피조물에 관한 재창조의 의미로 볼 수 있는 근거다.
뭔가를 새롭게 짓는 것, 천지창조든 천지 우주를 소재로 한 작품창작이든 그 일에는 큰 희열이 따르고 그것은 곧 짓는 자의 존재 이유가 된다는 측면에서 창조와 창작은 공통점을 두고 있다.
바다를, 땅과 풀, 빛과 어둠과 물고기와 새, 육 축을 지으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록된 것은 신의 피조물에 대한 지극한 기쁨, 피조물에 대한 깊은 관심, 즉, 사랑을 의미할 것이다. 그것은 작가가 창작하는 과정, 탈고한 후에 느끼는 감정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창조자가 천지 만물을 지으신 후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한 말씀은 창조자가 스스로 위에 군림하지 않고 피조물의 눈높이로 내려가셔서 그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그 새로운 것을 축하하고 더불어 기뻐하셨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것은 신의 겸손일 것이고 피조물을 향한 지극한 사랑일 것이다.
가끔 작가 스스로가 피조물이란 사실을 잊고 창조자란 위험한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것은 작품 속에서 작품이 필요로 하는 온갖 유형의 인간들을 만들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사랑하게도 하고 이별하게도 하는 정신적인 작업에서 비롯된 착각일 것이다. 그 착각은 작품 밖에서 은연중에 권위로 드러내는 우를 범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창작자로서 기본정신의 미성숙함 탓일 것이다.
창작자로서 작가의 자세는 군림이 아닌, 이 세상의 모든 소재와 같은 눈높이여야 한다.
그가 또는 그녀가 세상에 둘도 없는 악인이든 착한 사람이든 그들이 그들의 역할을 다하도록 창작가 스스로 그 인물들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 부여한 악인의 캐릭터가 되었다가 선한 사람이 되었다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다가 약은 자가 되면서 그들 특유의 성격이 더 선명하게 그들답게 드러날 수 있도록 창작자와 캐릭터 사이에 거리를 없애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작가로서 등장인물을 사랑하는 방법으로, 신이 이 세상 피조물을 지극히 사랑하시는 것과는 같으면서도 다른 목적을 두고 있음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좋은 길로 인도하려 하고 관용하고 품에 품어 모두 죄 사함의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이 피조물을 향한 신의 사랑의 방법과 목적이라면, 나쁘면 나쁜 대로, 착하면 착한 대로 철저하게 개개인의 개성을 살려 그 역할을 다하도록, 창작자 스스로 그 캐릭터가 되어 작품에서 함께 역할을 하면서 작품을 의도한 바로 그 작품이게 하는 것이 창작자의 사랑의 방법이요, 목적이다.
창조와 창작이란, 언뜻 같은 의미 같지만 이처럼 서로 다른 면을 두고 있다.
다만, 그 사이엔 면면히 흐르는 공통의 정서가 있으니 그것은 곧 피조물에 대한 창조와 창작자의 사랑이다.
방법과 목적을 달리하고 창조자와 창작자의 존재의 의미인, 지극한 사랑이다.
소설가 김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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