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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이 먼저다
정영득/수필가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Jul 12 2023 09:49 AM
실내의 탁한 공기를 피해 보고자 바깥으로 나왔다. 마스크까지 벗고 나서 심호흡했다. 통쾌한 바람은 역시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새삼 신선한 공기의 소중함을 만나는가 했더니 매캐한 냄새가 스멀스멀 다가왔다.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피워대는 담배 연기가 내 잠시 동안의 사치를 허락하지 않았다. 모여있는 이들이 마치 너는 담배 하나도 피울지 모르느냐면서 핀잔을 주는 듯하였다. 그런 눈총은 그런대로 넘길 만했다. 왕년의 헤비스모커 면모를 굳이 그들에게 드러낼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끽연 장소가 아닌 장소에서 흡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버젓이 흡연 금지 팻말이 붙어 있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데 오래전부터 이력이 난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퇴근하려고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다. 난데없이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들어왔다. 주차장을 빠져나오자마자 근처 주유소로 직행했다. 규정 수치에 맞게 공기압을 맞추고 다시 시동을 거니 경고등이 들어오지 않았다. 계절이 바뀌면서 햇볕의 강도가 약해짐에 따라 바퀴의 팽창 지수가 변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지난해에도 그런 비슷한 경험을 했기에 쉽사리 고칠 수 있었다. 퇴근길 도로가 다소 교통 정체를 만나긴 했지만, 괜스레 어깨가 올라가면서 여유롭게 집에 도착하였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모두 그리 쉽기만 할까. 며칠 지난 다음 날 아침에 또 경고등이 켜졌다. 유난히 왼쪽 뒷바퀴의 공기압이 약했다. 곧바로 정비소로 가서 확인했더니 타이어 안쪽에 제법 굵은 철사가 얽혀 들어가 있었다. 눈에 보여서 다행이었다. 그동안 그 바퀴가 얼마나 아팠을까. 공기압 경고등의 불빛이 더 값지게 빛나는 의미로 승화됐다. 고름 짜낸 듯 상처가 아물고 바퀴에 새 활력이 얹혔다.
이른 아침부터 움직였기에 회사에 지각하지는 않게 생겼지만, 부지런히 차를 몰았다. 서두를 때는 왜 그리도 빨강 신호등에 잘 걸리는지 모른다. 결근보다 지각을 더 싫어하는 내 고집스러움은 으레 차 속도를 빠르게 만들었다. 차가 신호등 앞에 섰을 때였다. 마음은 급한 데, 핸들을 잡고 있는 손에서 한 마디 음성이 불현듯 전달됐다. 날씨도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도로가 미끄러우니 조심하란다. 살아가는 모든 시간은 어차피 순간순간이 모여 이뤄지는 것이다. 지금이 중요하다. 내 차의 바로 앞 차는 물론 앞의 앞 차까지, 뒤차는 물론 뒤의 뒤 차까지 살피며 운전하자. 젊은 시절에 운전 경력을 서서히 쌓아갈 무렵 어느 날, 직장 선배가 알려준 안전 운전 요령이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자. 안전 운전은 인생 전반을 헤쳐 나가는 길목에서도 항상 기억해야 할 지침일 것이다.
몸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를 느꼈다. 가슴이 아픈 증세가 몇 주 전부터 가끔 있었다. 가정의가 특수의를 연결해주어서 심장 전문 센터를 예약하고 검사를 받았다. 코로나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병원마다 진료 요청자가 몰리고 있어서 모든 절차가 그리 순탄하지는 않았다. 기다림을 많이 요구했다. 기다리는 동안 한 가지 사실을 이미 되새길 수 있었다. 건강이 최고라는 기본 상식을 얼마나 많이 잊고 지냈는가. 북새통에도 사람마다 거리를 유지시키려는 병원의 방역 노력이 복도에 걸려 있었다. 심장 질환 전반에 걸쳐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또 며칠이 지나서 듣고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가슴의 통증 이유는 순전히 기분 탓일까. 전문의의 권유대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받아보기로 했다. 다시 예약하고 며칠 또 기다리다 검사대에 올랐다. 심전도 테스트 장치를 몸에 달고 붙이고, 트레드밀에 올라 느리게 걷다가 빠르게 걷고 경사지게 걷고 온통 난리를 쳤다. 결과는 아직 모른다. 기다림의 연속이다. 테스트 와중에도 기계를 통해 내 심장의 기능 정도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청색 불빛이 하트 모양으로 점멸하곤 했다. 판독의 자격이 없으니 부디 좋은 결과이길 바라볼 뿐이다. 보이지 않는 가슴 속을 기계가 보여주었다.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에 의지하는 순서는 기도(祈禱)다. 기도는 호흡처럼 매 순간마다 함께하는 것이라지만 나는 아직 그런 경지에 오르지 못했다. 그건 아마 내겐 꿈의 경지일 것이다. 기도의 한자 부수에 보일 시(示)가 있다. 무형의 기도를 드리는 그 시간에도 보이는 것에 집중하라는 무언의 외침을 전하는 듯하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은 보이는 것이 먼저임을 전제로 한 말일 것이다. 우선 보이는 것에 충실해야 보이지 않는 것에도 눈을 뜰 수 있지 않을까.
정영득 (vincentyjung@gmail.com)
2013 캐나다한인문인협회등단- 수필<행운목의꿈>
2018 한국문인협회등단- 그린에세이<노란불>
작품집- 수필동인지<수요일에만나요>제1권/ 제2권, <나에게묻는다>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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