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나는 매일 기적을 행한다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
- Aug 09 2023 10:29 AM
얼마 전에 10km 마라톤에 도전하는 손자녀석을 응원하러 가족과 함께 갔었다.
펜데믹 이전 해에도 갔었는데 그땐 5km이었다. 출발점에 가까이 가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응원했고, 걸음도 몸짓도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걷는 것도 이동하는 것도 어눌하고 힘들었다. 가능한 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허리도 꼿꼿이 세우고 보폭도 약간 좁게 잡는 등, 신경을 써야했다. 힘들었다. 아무리 펜데믹을 겪었다 해도 불과 삼년 전과 이렇게 차이가 있다니.
가끔 세상이야기를 수다로 주고받는 프랑크푸르트의 선배언니를 노크했다.
나의 푸념을 듣자마자 선배언니가 쏟아내었다.
“얘 아침에 일어나면서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하면 그이가 뭐래는지 아니? 당신이 죽지 않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이 기적이야.”
그렇게 나의 입을 막아버리고도 부족한지, 언니 특유의 넉살로 이어졌다.
“얘 나는 어쩌다가 그때 만난 남편과 여태 살고 있구나~”
그 선배언니는 파독간호사로 갔다가 그 곳에서 지금의 독일 남편을 만나 여태 살고 있다.
“언니 참 지루하겠다아~”
그렇게 박자를 맞추며 선배언니의 너털웃음으로 우울함을 날려버리는데 퍼뜩, 나의 몸도 태어난 지 오래인데 여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요즘 나의 십팔번이 뭔지 아니?”
“.....?”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중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곧잘 흥얼거리던 언니였는데, 요즘 바뀌었나 하고 잠시 머뭇거리는 나의 귀청을 때리는 말.
“‘아이고~~’야”
“젊어서는 펄펄 하늘을 날 것 같았고, 먹는 족족 쇠도 녹일 듯이 식욕도 소화력도 왕성했지만, 칠십 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앉으며 아이고~, 일어서며 아이고~, 걸으며 아이고~, 아이고~가 십팔번인 되었구나,”
선배언니의 수다가 귀에서 뱅뱅거린다.
때라도 맞추듯 카톡방에 올라온 ‘노년의 幸福과 기적’이란 글을 읽었다.
‘100미터 달리기를 15초 안에 달리면 건강한가요?
턱걸이 100개를 하면 건강한가요?
아닙니다.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겁니다.
행복하다는 건 뭘까요?
돈이 100억 있으면 행복한가요?
권력이 있으면 행복한가요?
아닙니다.
몸이 아프지 않으면 행복한 겁니다.
아침에 잠이 깨어 몸을 일으킬 때도 전 같지 않게 굳어있음이 느껴질 때가 잦다. 컴퓨터 앞에서 일어설 때마다 어눌함을 느끼고, 많이 걸으면 가끔 허리와 왼쪽 무릎이 아프지만, 나 스스로 합당한 이유를 갖고 있다. 오래 앉아있기 때문이라고. 매일 컴퓨터 앞에 앉으면 몇 시간이고 앉아있고, 점심도 곧잘 거르곤 한다. 그렇더라도 나는 아직 먹는 것은 물론 입맛에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맛있어서 과식을 참느라 애를 먹곤 한다.
언젠가 읽었던 의학전문사이트의 글도 생각난다. 신장(腎臟)이 2억9560만원, 간(肝)이 1억7000만원, 심장(心臟)이1억3420만원,... 어깨가 56만원, 손과 팔이 43만원... 나는 멀쩡하다.
100억이 아니라 10억도 없다. 하지만 돈 때문에 불편하지도 않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부자(富者)이다.
그러면서도 늙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어쩌랴! 이게 현실인걸. 나라고 늙음이 비켜갈 리가 없는데.
평소에 카톡방에 넘쳐나는 글들을 보면서 지우기 바빴다. 시간에 쫓겨 어떤 땐 제목만 보고, 혹은 무조건 지워버리기 일쑤였다. 아직도 이런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하고 궁시렁대기도 하면서. 그런 내가 오늘은 카톡방에서 긍정의 위안을 얻는다.
의사로부터 늘 운동하라는 권유를 받는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운동인데, 이젠 살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운동을 해야 하나보다 한심해지기도 한다.
몸 어딘가가 크게 부서진 것은 아니지만, 늙음을 실감하는 일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노년기의 편안함이나 찬양의 이야기에 매우 공감하면서도 나 자신이 직접 늙음을 실감하는 일은 서늘하다. 누구라고 늙음을 피해갈 수 없는 일.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어떻든 지금 나는 100m를 15초 안에 달리지 못하고, 턱걸이를 100개는커녕 한 개도 하지 못하지만 오래 걸으면 느끼는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뿐, 특별히 아픈 곳도 없다. 한창때처럼 날렵하지 못한 몸동작, 운동을 하면 개선될 수 있다는 정도의 해답도 갖고 있다.
좋은 글을 못쓰는 것 외에는 욕심도 없다. 걱정거리도 없고 속상한 일도 없다.
게다가 여전히 아침 6시경이면 일어나지 않는가.
나는 매일 기적을 행하고 있는 부자이다.
권천학
시인·한국시조진흥회부이사장
www.koreatimes.net/오피니언
캐나다 한국일보 (editorial@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