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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대원이 카빈총 1자루에 의지
중공군 2명 사살 후 각자 은신처로 돌아가
- 김명규 발행인 (publisher@koreatimes.net)
- Oct 13 2023 03:45 PM
어머니는 떠나겠다는 말에 식음전폐 위대한 헌신 - 유격대원 주홍길 수기(15)
총숨김 -- 총 숨긴 곳
장지공사 - 진지 구축공사
공동묘지부회동 - 공동묘지서 만난 장소
무기를 찾으려 나들이 --- 칼빈 총 1자루를 찾기 위해 다녀온 루트.
◆6.25 당시 북한에 침투했던 주홍길씨에게 카빈 소총 1정이 든든한 힘이 됐다.
북한군에게 계속 쫓기는 3명의 유격대원은 조병육 동지가 원광능 산속에 숨겨둔 카빈(Calbine)총을 찾기 위해 한밤중 용감하게 나섰다. 손에 든 무기는 없지만 동지 2명이 같이 있으니 마음이 든든했다. 우리가 택한 길은 워낙 산세가 험해 사람들은 얼씬하지 않았다. 우리는 도중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무사히 물방덕리에 도착, 잠시 눈을 붙였다. 물방덕리 -- 내가 처음 체포됐던 지역 아닌가.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날이 밝아오자 산 아래에 중공군 떼거리가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방어진지 구축을 위해서 부삽과 곡괭이 등 연장을 들고 산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연합군이 원산을 통해 들어온다고 예상해서 개인호, 탄약고, 교통호(참호와 참호를 연결하는 웅덩이) 등 방대한 방어물을 만들어 북침에 대비하는 모양이었다.
‘산중에도 이렇게 방어망을 쳐놓으니 우리 후속 대원들이 상륙 후 활동하기가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은 이미 가고 가을이 다가온다고 통통하게 여문 옥수수가 알려주었다.
일행은 장재덕리를 지나 깊은 숲속에서 화전민 집을 찾았다. 조 동지가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 집을 발견,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들어가 감자를 삶아 먹었던 허술하게 지은 집이었다.
오랜만에 온돌 위에 마른 풀잎을 깔고 길게 늘어졌다. 이틀 밤을 못 잤고 먹지도 못했는데 산을 계속 올라왔으니 아무리 젊고 강철 같은 몸이지만 엄습하는 피로와 잠에는 당할 수 없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중공군이 업어가도 모를 만큼 진한 꿈나라 속을 헤맸다. 다행히 무사하게 밤을 넘기고 그 집에서 발견한 옥수수를 삶아 먹었다. 허기진 배에는 꿀떡이 따로 없어서 집주인에게 고마운 마음마저 들었다.
드디어 목적지 원강릉에 도착했다. 숯을 만들던 움막을 조심해서 살피다가 조 동지는 흙벽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끼워진 돌을 빼내더니 팔을 집어넣었다. 한동안 팔을 길게 뻗치면서 애를 쓰더니 드디어 카빈 1자루와 탄창 1개를 꺼냈다. 총의 노리쇠는 녹이 슬어 방아쇠를 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일이 안되면 되게 하라’는 말을 상기하며 기름기가 있을만한 나무열매를 찾았다. 가래열매가 눈에 들어오자 “바로 이거다”라고 말하면서 열매를 땄다. 돌조각을 주어서 따온 열매를 짓이겨 즙을 냈다. 한 사람은 총을 분해해서 열매즙으로 부속을 닦고 또 닦았다. 노리쇠는 그제야 부드럽게 작동했다. 격발음은 어찌나 상쾌하게 들리던지. 마지막으로 싸릿대를 꺾어 총구를 말끔히 청소했다. 15발 들이 탄창에는 실탄 13발이 있었다. 실탄을 빼내서 그것도 말끔히 닦았다. 1자루지만 총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든든했다. “누구든지 나타나기만 해봐라…그날이 제삿날이 되게 해주마.” 총을 보관해준 산신령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총에 의지하면서 가까운 길을 택해서 빨리 천내리로 가자고 의견을 모았다. 총을 든 내가 앞장섰다. 물방덕리와 용당리 앞산을 지난 후 대담하게 벌판으로 나섰다. 만용이었나 아니면 간이 부었든가.
건너에 강물이 소리없이 흐르고 있었다. 찬물은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강을 거의 건넜다고 안심했을 때 두개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불쑥 나타났다. 그림자는 “스이야(누구야)” 하고 물었다. 뒤엔 강물, 앞엔 중공군. 옆에는 몸을 날려 잠복할 숲이나 하다못해 거름통도 없었다. 다행히 이들은 등에 보따리를 하나씩 지었을 뿐 무장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총을 겨누면서 두 손을 들라고 몸으로 명령했다. 그들은 그제야 자기 편이 아닌 줄 알고 공포에 질리면서 허리를 굽신거렸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살려주면 그들은 본대에 돌아가 보고할 것이다. 그렇다고 비무장자들을 처치해야 하나? 그러나 어쩌랴. 전쟁의 생리는 내가 죽거나 상대를 죽이거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후환을 막아 3명의 생명을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카빈은 불을 뿜었고 그들은 생을 마감했다.
그들의 짐에서는 담배, 수건, 양말 등 생활용품이 나왔다. 잡동사니들을 건너온 물 쪽으로 흩트러 놓아 우리가 가는 방향을 위장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북한에 침투한 유격대원 주홍길씨는 송전반도 등에서 목숨을 걸고 활약했다.
우리는 천내리까지 와서 헤어져 각자가 숨었던 원래의 은신처로 돌아갔다. 물론 헤어지기 전 만날 장소와 시간, 암호 등을 단단히 결정했다.
집안에 들어갔을 때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었다. 나는 카빈을 소중하게 옆에 모셔 놓고 누웠다. 다음날 아침 마루 밑 아지트에서 고개를 내밀자 가족들은 무척 놀랐다. 총을 보이자 더욱 놀란 눈치였다. 적지에서 가진 무기, 그것은 바로 ‘제2의 생명’이었다. 서로 동격이므로 그보다 더 귀한 물건은 없었다.
휴전회담은 넉달 째에 접어들었지만 아무런 진전은 없었다. 강원도 고성까지 진격하던 우군도 감감 무소식이다. 운림면 산악지대서 작전한다는 후속대의 게릴라 활동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벌써 춥고 긴 겨울이 다가오는 서곡이 들리는데 … 앞으로 어떻게 될까.
더 이상 어머니와 동생에게 고생을 계속 시킬 염치는 없었다. 서서히 채비를 하면서 생각을 어머니에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마음은 아들과 달랐다. 아무리 고생이 되고 생명이 위험하더라도 어미가 쫓기는 아들을 버리겠는가. 반드시 당신 치마폭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모성애는 동서와 고금이 같았다. 그것은 어머니를 지탱하는 삶의 보람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했다. 아들이 죽을지 모르는데 자신이 살아서 뭐하겠나. ‘여자’는 약하더라도 ‘어머니’는 역시 강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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