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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다 <상>
손영호 | 칼럼니스트·국제펜클럽 회원·토론토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Dec 02 2023 11:23 AM
2022년을 뜨겁게 달군 영화가 박찬욱(60) 감독의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이었다. 이 영화는 살인 사건을 다루고 있는 서스펜스, 미스터리이지만 멜로, 로맨스가 녹아든 드라마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은유와 대비 요소가 있다. 산과 바다, 청색과 녹색의 옷색깔, 보색의 사용과 은유적이고 감각적인 미장센 등 그리고 원작의 탄탄한 구성과 캐릭터 간의 인간적 갈등 및 내면적 긴장을 통해 두 남녀의 웅숭깊은 사랑을 그려낸다.
▲ "헤어질 결심(2022)" 영화포스터. CJ ENM 제공
이 영화는 한 컷 한 컷, 한 장면 한 장면, 놓치고 버릴 것이 전혀 없는 영화다. 한마디로 ‘영화보기’가 아니라 ‘영화읽기’를 강조하는 영화다. 어쩌면 ‘영화씹기’가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누구의 말대로 '영화 볼 결심'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운 영화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주변에 지금까지 이 영화를 일곱 번 봤다는 매니아도 있을 정도다. 아직도 그 인기가 시들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작품은 제75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으로 출품하여 감독상을 수상함으로서 임권택 감독이 2002년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20년 만에 한국 영화사에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수립했다. 박찬욱 감독은 2003년 "올드보이"로 제57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고, 또 2009년에 "박쥐"로 제62회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 본상을 받아 한국 영화인으로 최다 칸 국제영화제 수상 기록을 세웠다.
‘헤어질 결심’은 두 가지 살인 사건으로 구분된다. 전반부는 부산에서, 후반부는 이포에서 전개된다. 두 번 다 똑같은 여자와 똑같은 형사가 얽힌다. 형사는 처음에 만만하게 당하지만, 두 번째에서 그는 그러지 않으려는 반면 여자가 오히려 의도적으로 그에게 만만해지려고 노력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부산 구소산 비금봉(기름봉) 사망 사건 현장. (이 산은 가상의 산이다. 영화를 찍은 곳은 강원도 속초 영랑호의 범바위였다.) 부산서부경찰서 강력팀 소속 경감인 40대 초반 장해준(박해일) 팀장은 등산하다가 추락사한 기도수(유승목)의 젊은 아내인 송서래(탕웨이)를 취조한다. 서래는 자신이 중국인이라 한국말이 서툴다고 말하며,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라고 말한다.
이후 차 안에서 서래를 망원경으로 감시하는 해준. 그는 며칠간 잠복하며 서래를 관찰하면서 매일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모습, 슬퍼하는 모습, 저녁밥을 먹지 않고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 할머니를 헌신적으로 간병하는 모습, 혼자 한국 드라마를 계속 반복해서 보다가 지쳐 잠드는 모습 등 그녀의 일상 생활을 엿보고 점점 동정심과 사랑이 커져 간다. 그러나 해준은 형사로서의 책임감이 큰 인물이기에 이를 억누르고 직업에 충실하는데…
해준은 형사로서의 직업의식에 투철하다 보니 매사에 자신을 짓누르는 스트레스 때문에 불면증이 심하고 자유롭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그는 잠복근무를 자처하는 일이 많다. 잠복근무는 늘 훔쳐보는 일이 태반이다. 관음증 아닌 관음증 환자이다. 불면증과 훔쳐보기, 망원경 렌즈 속의 상대는 늘 말이 없다. 일종의 거울 속의 거울이다. 사실 속에 또 다른 사실이 숨어 있으며 진실은 늘 그렇게 가설처럼 만들어지거나 때론 조작될 수 있는 것임을 느낀다.
한편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감시한다는 것을 눈치채지만 자신을 폭압하던 죽은 남편과 달리 멀리서 지켜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런 서래의 일상적 모습은, 이포 원전의 안전관리과에서 일하는 해준의 아내 정안(이정현)과의 주말부부 콤플렉스 극복을 위한 의무적인 성관계와 대조적으로 해준을, 차에서 자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의 단잠에 들게 한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 과정의 팽팽한 긴장 가운데 서로에게 특별한 호기심과 의외의 동질감을 느끼는 두 인물의 촘촘한 감정선은 관객들을 설득하기보다는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한편 자신을 의심하는 해준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하고, 서툰 한국말이지만 예상치 못한 표현과 답변으로 상대방의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서래. 상대를 당황케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태연함을 잃지 않는 서래는 무엇이 진실이고 진심인지,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단 한순간도 정답을 내릴 수 없게 만든다.
해준은 서래가 노인 전문 간병인으로 근무하며, 간병인이 도착하면 업체가 고객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고, 간병인이 연락을 대신 받아 잘 도착했음을 알리는 식으로 출근 인증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왜 남편이 죽었는데도 근무를 하러 갔냐고 물어보니 서래는 "죽은 남편이 산 노인 돌보는 일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하고 대답한다.
▲ 서래(탕웨이) 집의 바다를 상징하는 벽지. 산은 완결을 의미하지만 바다는 미결을 뜻한다. CJ ENM 제공
한편 기도수는 출입국사무소에서 입국 심사를 담당하던 공무원이었으며 은퇴 이후에는 민간 면접관으로 근무하는 중이라는 것, 그리고 기도수는 아내의 몸에도 본인의 이니셜(KDS)을 문신으로 새겨 넣고, 폭력을 휘둘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결국 남편이 죽은 월요일에도 예정대로 간병을 왔다는 할머니의 증언, 출근 확인 전화, 출퇴근 시간의 CCTV 영상 등을 통해 알리바이가 확인되었고, 한편 기도수의 유서 및 그에게 온 협박편지 등의 발견으로 서래는 용의선상에서 벗어난다.
해준은 서래에 대한 호감을 투철한 형사로서의 직업의식으로 억누르고 있었지만 서래가 용의선상에서 벗어나자 보다 적극적으로 그녀에게 호감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비 오는 날 산 속의 절간으로 데이트를 하는 두 사람. 해준이 우산을 일일이 받쳐주고 서래의 거친 손에 크림을 발라주는 등 점잖고 다정한 태도로 일관하며 자신은 깨끗한 남자라고 한다. 서래는 해준에게 점점 깊은 호감을 갖게 된다. 이 때 서래가 해준의 운동화 끈을 가리키고 해준은 운동화 끈을 고쳐 맨다.
▲ 산사(山寺)에서 첫 데이트를 하는 서래와 해준. 촬영지는 전남 순천 송광사(松廣寺)다. 영화 캡처
그리고 장면은 서래의 집. 서래는 자신이 간호사로 일하면서 시한부 목숨인 어머니가 죽기를 원하자 펜타닐 알약을 먹여 죽였고, 어머니가 말한 대로 만주 독립군이었던 외조부가 찾고 있었다는 '호미산'을 찾기 위해 죽을 고생을 하며 밀입국해서 한국에 왔다는 것, 그러나 소유권 재판에 져서 입국관리자인 기도수와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해묵은 질곡동 사건이 해결된 후 서래는 해준의 집에서 잠자리 곁을 지키며 해파리 호흡법으로 해준의 만성적 수면부족을 치유해준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하지만 해준과 서래 사이에는 첫 만남부터 좁히지 못하는 간극이 존재한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마음에 확신이 없고, 관심과 이끌림 쪽으로 기울어가면서도 둘 사이를 맴돌 뿐 서로에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표류한다.
그런데 해준은 할머니의 휴대폰을 받아 사용기록을 정리하던 중, ‘월요일 할머니’(정영숙)가 서래와 같은 기종의 폰을 쓴다는 사실과 할머니 핸드폰에 설치되어 있던 계단 오르기 앱에 기도수의 사망일에만 138층이 기록된 것을 보게 된다. 해준은 이것을 보고 할머니께 외출 경험에 대해 물어봤지만 10년 간 집에서 나가 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의 대답을 들었고, '월요일에 서래가 오는 것'이 아니라 '서래가 오면 월요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까지 알게 된다.
서래는 월요일이 아닌 일요일에 CCTV가 없는 뒷문으로 방문하여 할머니가 월요일에 서래가 왔다고 인식하게 했다. 그리고 월요일에는 CCTV에 모습만 비추고 기종이 같은 할머니의 폰과 자신의 폰을 바꾼 뒤 센터장의 확인 전화를 출근한 것처럼 받았다.
서래는 고소공포증이 있고 암벽 등반을 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유튜브에 올린 등반루트를 이용해 남편이 올 때까지 산에 숨어 있다가 암벽에서 남편을 밀어버렸다. 그래서 서래의 손이 그렇게 거칠었으며 기도수의 손톱 밑에 서래의 DNA가 묻었던 것이다. 남편 기도수의 유서와 그에게 온 협박편지도 모두 남편의 비위사실을 알고 있던 서래가 조작한 것이었다.
해준이 똑같이 기도수가 죽은 산에 올라가 본 결과, 계단 오르기 층수가 똑같이 138층이 찍힌 것을 본 해준은 절망에 빠진다. 이미 수사는 자신이 종결시킨 뒤였고, 서래가 해준에게 접근해 폰의 녹음 자료들과 그 밖의 수사 자료를 모조리 없앤 뒤였다.
해준은 경찰이란 자신의 직업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서래가 자신을 속여 왔으며 남편 살해 사건의 진범이었음을 발견하고 결국 자신의 내면이 붕괴되었음을 고백하며 서래를 놓아준다. 그리고, 유일한 증거물인 핸드폰을 바다에 던지라는 말과 함께 서래를 떠난다.
한편 남겨진 서래는 한국어 '붕괴'란 단어의 뜻을 검색한다. 그리고 해준이 무너지고 깨어졌다는 걸 알게 된 그녀는 눈물을 흘린다. (계속)
손영호 | 칼럼니스트·국제펜클럽 회원·토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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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SteveC. ( nuvi**@gmail.com )
Dec, 03, 07:16 AM감사합니다.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거같네요. 다시봐야 겠네요.
임윤식 ( kimchiman**@gmail.com )
Dec, 03, 04:16 PM손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저는 그 영화를 아직 안보았네요. 그런데요. 손성생께서 영화평만 쓰시지 마시고....영화 대본을 쓰시면 좋겠습니다. 님의 필력을 보면 명작이 될 것을 믿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