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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의 맛’은 진화 중
약용비빔밥·물짜장·해장국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14 2024 11:56 AM
전주에는 왜 맛집이 많을까. 김순희 ‘태봉집’ 식당 주인은 “아마도 지키려는 사람이 많아서 아닐까요?”라고 반문했다. 그만큼 오래된 식당이 많다는 의미이자, 그 맛을 잊지 않고 찾는 사람이 꾸준하다는 뜻이다. 전주는 명실상부 맛의 도시지만 전통에만 기대지 않는다. 오랜 세월 다져온 손맛과 풍성해진 재료로 변화하는 입맛을 따라잡고 이끈다. 전주의 맛이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이유다. 전북문화관광재단이 추천하는 지역의 골목 맛집을 소개한다.
덕진구 팔복동의 갑기회관은 1988년에 문을 열어 전주비빔밥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식당이다. 대표 메뉴는 약용비빔밥(1만9,000원). 전주시에서 인정한 ‘비빔밥 명인’ 3인 중 한 사람인 김정옥 대표가 6개월의 노력 끝에 내놓은 메뉴다. 보통 전주비빔밥 식당에선 쌀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하기 위해 사골국물로 밥을 짓는데, 이 식당은 천문동 백문동 황기 당귀 등 일곱 가지 약재로 육수를 내서 밥을 한다. 그러면서도 한약재 특유의 냄새를 깔끔하게 잡아 거부감을 없앴다. 그 위에 콩나물과 당근 은행 도라지 밤 대추 육회 황포묵 등을 얹고 직접 제조한 고추장으로 비벼 먹는다. 고추장은 설탕 대신 사과, 배 등 과일 소스를 배합·숙성해 단맛을 냈다.
전주 갑기회관의 약용비빔밥. 일곱 가지 약재 육수로 지은 밥에 은행 밤 대추 등의 약재와 육회를 얹어 비빈다.
오래된 시간과 요즘 감성이 어우러진 전주 원도심 객리단길에 이름난 식당이 많다. 고사동 골목의 동창갈비는 기존 돼지갈비의 전형에서 벗어난 고깃집이다. ‘Since1984’ 간판이 붙은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길이 정겹다. 대나무를 빽빽하게 세워 낡은 벽을 가렸고 정원을 겸한 마당에는 작은 인공연못이 조성돼 있다. 식당 내부도 옛날 여관방처럼 좁은 통로를 중심으로 좌우로 배치돼 있다. 메뉴는 동창갈비와 동창고기(생고기), 삼겹살 단 세 가지. 이 식당의 돼지갈비는 양념 국물이 자작자작한 여느 식당과 달리 겉보기에는 고기 본래의 색깔 그대로다. 왠지 질길 것 같은데 숯불에 구울 때 가위로 잘라보면 의외로 부드럽다. 드러나지 않게 은은하게 밑간을 하고 숙성시켰기 때문이다. 담백한 고기 맛과 적당한 불 향이 입안 가득 퍼진다. 1인분(200g) 1만4,000원.
전주 동창갈비 식당의 돼지갈비. 생고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은근하게 밑간을 하고 숙성시켜 고기가 부드럽다.
전날 술이라도 한잔 걸쳤다면 다음 날 아침은 시원한 해장국이 제격이다. 고사동의 삼백집은 1954년 문을 열었다는 안내와 달리 깔끔한 벽돌 외벽에 현대적 감각의 3층 양옥집이다. 2015년 신축했는데 설계할 때 역사적 맥락과 주변과의 조화를 염두에 뒀기 때문에 튀어 보이지 않는다. 식당 이름은 주인장이 붙인 게 아니다.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뜨끈한 국밥을 말아 내던 창업자 이봉순 할머니는 아무리 손님이 많아도 하루 300그릇 이상은 팔지 않았다. 정해진 양이 다 팔리면 오전이라도 문을 닫았고, 이 때문에 간판 없는 국밥집은 손님들 사이에서 ‘삼백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전주 삼백집의 해장용 메뉴 한우선지온반.
요즘은 300그릇으로 제한을 두지 않는다. 대표 메뉴는 콩나물국밥(8,000원)과 한우선지온반(1만 원). 한우선지온반은 이 식당에만 있는 해장용 식사다. 맑은 국물에 선지, 소머리고기와 양, 곱, 천엽 등의 내장을 넣어 깊고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철분과 단백질 등 영양소가 풍부한 해장국이라 자랑한다. 입맛에 따라 반찬으로 나오는 잘 익은 묵은지와 새우젓으로 간을 맞추면 된다.
전주 태봉집의 시래기해장국. 곁들여 내던 음식이 정식 메뉴가 됐다.
인근 태봉집은 복어요리가 전문인데 의외로 시래기해장국(8,000원)이 인기다. 공깃밥에 딸려 나오는 된장국이 단골 손님들 요청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 특별한 비법이랄 것도 없다. 멸치와 쌀뜨물을 기본으로 한 육수에 무청 시래기와 배추 우거지를 함께 넣고 푹 끓인 후 대추 생강 계피 등으로 맛을 더한다고 한다. 이 집 시래기해장국은 오전 7시 30분부터 11시까지만 맛볼 수 있다.
전주 진미식당의 물짜장. 짜장면보다 묽고 짬뽕보다는 걸쭉한 소스에 해산물과 채소가 듬뿍 들어갔다.
전주 ‘웨딩의거리’ 끝자락에 위치한 진미식당은 문을 연 지 올해로 55년 된 중국집이다. 빼곡한 메뉴판에서 눈에 띄는 낯선 이름은 물짜장(1만 원). 짜장면과 짬뽕 사이쯤 되는 걸쭉한 소스가 얹힌 면 요리다. 새우 오징어 조개 등 해물과 버섯 죽순 등 채소가 들어간 것이 일반 짜장면과 다르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이들 재료를 볶지 않는 데 있다. 물짜장 역시 식당 주인과 점원의 식사였는데, 맛을 궁금해하던 손님들의 호평으로 정식 메뉴가 됐다. 이 식당에서 시작한 물짜장이 요즘은 전주의 다른 중식당으로도 번졌다.
전주=글·사진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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