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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쏘아올린 오케스트라 선율
권천학 | 시인·K-문화사랑방 대표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Feb 28 2024 11:21 AM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
2월, 셋째 주에 들어서 약간의 홀가분함을 즐기고 있었다. KMS(K문화사랑방)의 강의를 마친 후, 그리고 다음 주에 있을 스케줄 사이에 주어진 잠시의 홀가분함이었다. 이번 한 주 동안은 쉬엄쉬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겠다는 그 휴식의 시간을 흔드는 소식을 접했다.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의 별세 소식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일본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라는 것과 그것의 배경이 되어주는 몇몇 이야기들 외에는 특별히 아는 것이 없었다. 간간이 온라인상에서 접하는 그의 모습에서 일본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라는 면모를 맛볼 뿐이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내공을 쌓은 사람들이 갖는 지성의 면모와 전문성이 내뿜는 노련함을 맛볼 수 있음은 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오자와가 보이는 내공의 모습에서 ‘세계적 지휘자’답구나 하는 것 외에 그의 살아온 자잘한 개인적 역사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런 그가 나의 뇌리에 각인된 것은 두 해 전, 지구에서 우주탐사선으로 송신하는 세계 최초의 음악을 그가 지휘한 일이다. 2022년 11월, 일본 나가노현의 마쓰모토시에서는 1992년부터 시작된 ‘오자와 세이지 마쓰모토 페스티벌’의 30주년 기념으로 특별한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었다. 우주로 음악을 쏘아 보내는 작업이었다. 세계 최초로 지상의 음악을 우주로 보내는 시도 자체가 ‘새로운 역사’로 기록 될만한 일이지만, 나에게는 오래 전 내가 품었던 상상의 세계를 실현하는 일이라서 그 중계방송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오자와 세이지. AP통신
오래전, 공중에서 종횡무진으로 뻗어가는 수많은 음파가 파바박! 보이지 않는 나의 뇌파 안테나에 부딪혀오는 것 같은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우주와의 교감, 나만의 세계, 그 벅참을 감당할 수 없어 몇 편의 시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미흡했다. 지상의 음파를 하늘로 쏘아 올려 우주의 행성들이 내는 전파와 섞이게 할 수는 없을까. 그 협연이 빚어내는 음향은 어떤 소리일까? 내 안에서 펼쳐지는 상상의 세계는 끝이 없었다.
처음 자가용을 갖게 된 1980년 늦봄의 어느 자정 넘은 시간이었다. 신들린 듯, 상상에 홀려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나의 애마(愛馬)는 엑셀이었다. 당시의 현대 엑셀은 엔진을 비 롯하여 주요 부품을 일본에서 직수입해 와 한국에서 만든 차대에 올려 조립한 형태였다. 그 첫 애마를 몰고 작정도 없이 천지가 잠들어 있는 어둠 속, 속도를 낼 수 있는 만큼 엑셀러레이터를 밟기 시작했다. 아우토반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에겐 아우토반과 다름이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서울을 벗어났다. 170을 넘어서자, 차체가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더 밟았다. 180쯤? 그 이상? 바퀴가 바닥에서 떨어져 붕~하고 날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차장은 어둠의 장막에 휩싸였고, 오로지 전방만이 가녀린 빛줄기가 쏘아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190쯤? 빗줄기 같은 빛살과 고음(高音)의 회오리가 차체를 감싸는 순간, 달팽이관이 먹먹하도록 묘한 음향이 들려왔다. 행성들이 내는 우주음(宇宙音)이었다. 속도와 어둠이 빚어내는 소리? 행성 사이에서 빛과 속도가 빚어내는 소리?
형언할 수 없었지만 장중하였다. 그 선율을 타고 무한공간으로 흐르는 기분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시야 오른쪽으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고요 덩이가 거대한 날개로 밀려왔다. 음색(音色)도 달라졌다. 차가 멈추어진 곳은 다리 난간이었고,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계곡 사이에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꿈결 같았다. 그곳이 대전 지나 경부선 쪽 어디, 금강 다리 위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 후부터 우주공상과학영화를 보면서 효과음악을 들으며, 우웅우웅~하는 우주의 소리, 나만이 아는 그 소리를 떠올리며 공감했고, 영화 속 행성 사이를 날고 있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우주에서 빗발치는 전파가 나의 뇌파를 건드리는 상상을 했고, 지상의 선율과 우주의 선율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 몹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ONE EARTH MISSION / Unite with Music> 프로젝트의 명칭이다. 내가 상상하던 오래전 일을 지금 그가 실현하고 있구나! 빨려들 듯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주정거장 안에서 선율을 받아 우주로 중개하는 일을 맡은 코이치 와카타(若田光一)는 무중력의 모션으로 각종 기계를 다루며 지상에서 보내는 소리를 수신하며 응답했다. 그 역시 30년 전, 그러니까 1992년에 JAXA(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를 통하여 일본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되었고, 지금은 우주정거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우주와 지구가 하나 되는 공연이 시작되었다. 휠체어에 앉은 오자와의 손끝을 따라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이 흘러나왔다. 그의 손짓은 여려 보이면서도 매우 신중했고, 허공에 떠도는 선율 가닥을 잡아채는 것 같은 섬세함이 느껴졌다. 단원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어 그의 손짓에 집중하였다. 2010년 식도암 수술을 받은 이후, 탈장, 폐렴 등으로 고생스럽게 노년을 맞고 있는 그에게는 마지막 무대이기도 했다.
백발에 가까운 회색의 머리칼과 두툼하게 두른 빨간 목수건, 검은 상의 양소매 끝에 접힌 빨간 끝동, 그리고 빨간 운동화, 야무지게 입술을 다문 채 허벅지 위의 공간을 우주 삼아 휘젓던 그가 지휘를 마치자, 선율을 받던 우주비행사 와카타가 감격의 박수를 보내왔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박수도 이어졌다. 휠체어에 앉은 채 지휘를 마친 그는 울었다.
그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나는 또 한 번 붕~ 뜨는 기분이었다.
나의 뇌리에는 다른 한 세계가 펼쳐졌다.
지구에서 우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지금, 22년도에 그가 날려 보낸 오케스트라의 선율들을 타고 무한공간을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토벤과 눈을 맞춰가며.
휠체어에 실려 나갈 때 울었던 것처럼 지금도 울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지휘한 선율을 우주공간에서 다시 만난 기쁨의 눈물로. ♥
권천학 | 문화컨설턴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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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