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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잦은 회의·연락 줄어드니 집중력↑
산재 보험료 등 기업 비용도 감소
- 미디어1 (media@koreatimes.net)
- Feb 28 2024 11:22 AM
노동시간 다이어트했더니 가짜노동부터 없애 생산성 향상
“처음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의심도 많았죠. 하지만 결국 회사도, 직원도 모두 만족했습니다.”
2014년 12월, 스웨덴의 아동용 게임업체 필리문더스(Filimundus)는 한 실험에 도전했다. 8시간 근무제의 틀을 깨고 노동시간을 2시간 줄인 ‘6시간 근무제’를 도입한 것이다. 임금도 삭감하지 않았다. 복지 선진국이라는 스웨덴에서도 꽤나 파격적 시도였다.
필리문더스 최고경영자(CEO) 리누스 펠트의 사무실. 이 회사는 회의실을 줄이는 대신, 근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업무 공간을 만들었다. 필리문더스 제공
결과는 대성공. 회사 최고경영자(CEO) 리누스 펠트는 지난달 한국일보와의 다섯 차례 서면 인터뷰에서 “일하는 시간이 줄어도 생산성에는 변화가 없거나 오히려 증가했다”고 단언했다. 집중력이 향상되고 피로가 사라진 덕이다.
특히 정교한 작업이 요구되는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아티스트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병가 사용 횟수도 25% 정도 줄었다. 노동시간 감축이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줬다는 방증이다. 펠트는 “구직자들 사이에서 기업가치가 폭발적으로 높아졌는데, 회사 입장에선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더 경쟁력 있는 지원자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공 비결은 ‘집중 시간’의 힘에 있었다. 필리문더스는 점심시간 전후 3시간을 집중 업무 시간으로 정하고, 일에 방해되는 모든 가짜노동을 없앴다. 반드시 필요한 회의는 안건을 모아 하루에 처리하고, 나머지 날엔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메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 등 불필요한 연락 역시 자제했다. 대신 이전에 따로였던 점심을 함께 먹도록 해 직원들끼리 유대감을 유지하게 애썼다.
노동시간뿐 아니라 해외 선진기업들은 생산성을 가로막는 비효율을 척결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캐나다 다국적 전자상거래업체 쇼피파이(Shopify)가 대표적이다. 쇼피파이는 쓸데없는 회의를 줄이기 위해 ‘회의 비용 계산기’를 출시했다. 회의 초청 이메일을 보내거나 회의 일정을 기록할 때 참석자 수, 시간, 평균보상 데이터 등을 고려한 회의 가격 추정치를 제시하는 식이다. 계산기를 돌려보니 3명이 30분 동안 회의할 때 드는 비용은 최대 1,600달러(214만 원)에 달했다. 쇼피파이 측은 “회의를 줄이기 전보다 18%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는 등 업무 생산성 향상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필리문더스와 쇼피파이 사례에서 보듯, 노동시간 단축은 가짜노동을 막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시간 자체를 줄이면 노동자가 쓸데없는 일부터 없애기 때문이다. 기업만이 아니다. 국가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노동시간을 감축하기 위한 실험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는 2022년 주정부 최초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500명 이상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주 5일 40시간 근무제를 주 4일 32시간 근무제로 전환하고, 임금은 그대로 유지했다.
아이슬란드는 2015년부터 4년간 아예 정부 주도로 주 4일제 실험을 했다. 회사원, 유치원 교사, 사회복지사 등 전체 노동인구의 1%가 참여했다. 주 4일제와 함께 가짜노동을 감소하려는 여러 방안도 병행했다. 기업들은 티타임을 줄이고 짧은 회의를 도입했다. 실험은 6년이 지난 2021년 전체 노동 인구의 86%로 확대됐다. 효율성이 입증됐다는 뜻이다.
영국과 벨기에, 스페인, 스코틀랜드, 캐나다, 브라질 등 역시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특히 칠레가 주목된다. 이 나라는 연간 노동시간이 1,963시간(2022년 기준)으로 한국과 비슷한데, 칠레 하원은 지난해 4월 주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내용의 개정안을 압도적 표차로 가결했다. 결과에 따라 우리가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
다른 나라와 기업들의 여러 사례는 우리도 업체 및 업무 특성에 맞는 제도만 갖춰지면 가짜노동은 물론 일하는 시간도 줄일 수 있다는 전망을 가능케 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노동시간 단축은 제조업의 산업재해 보험료를 비롯한 기업의 각종 운영 비용을 감소시키고 생산성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과 제도로 노동시간 감축을 이끄는 프랑스처럼 한국도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다만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에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안배해 양극화의 위험을 방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전유진·이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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