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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해, 겨울 여행의 애상(哀傷) (1)
박면순
- 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
- Mar 27 2024 10:25 AM
이번에도 푼타카나(Punta Cana)로 피한(避寒) 여행을 간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푼타카나는 토론토 사람들에게는 이웃 동네만큼이나 익숙한 지명일 것이다.
체감온도 영하 30, 40도를 오르내리는 토론토의 겨울은 200여 년 전에 유럽에서 온 모피 사냥꾼들이 말했듯이 ‘저주받은 땅’이라 할 정도로 매섭다. 그때 비하면 기후도 바람도 부드럽게 바뀌었지만, 여전히 겨울은 피하고 싶은 계절이다.
나이를 먹으면 추위도 점점 더 싫어진다. 이 끔찍한 시기에 25ºC를 넘나드는 쾌적한 기후와 야자수 그늘이 있는 그림 같은 백사장을 네 시간 정도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유혹이다. 비용도 all inclusive package가 2,000불이 채 안 된다.
우리 가족도 10년 전부터 이 지역을 드나들지만, 세상의 물가가 다 오른 듯한데 이 패키지 가격은 변화가 거의 없다. 이 돈으로 일주일 동안 5성급 호텔에 묵으면서 산해진미를 맘껏 먹을 수 있고, 원한다면 음주·가무도 얼마든지 가능하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할 것이다. 선택지가 많은 캐리비안 여행의 경우, 최우선으로 하는 것이 음식인데 도미니카는 여전히 가성비가 좋다고 한다.
가성비?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처럼 애매한 말도 없는 듯하여 혹시나 하는 마음에 라면 몇 개를 가방에 넣었다. 이태 전에 작은아들과 쿠바에 다녀온 아내가 가지고 간 컵라면만 먹고 왔다는 푸념이 잔설처럼 귓가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언스플래쉬
도미니카는 야자수가 넘실대는 백사장이 1,000마일이나 되는 천혜의 휴양지이지만, 신대륙 개척의 유적이 남아있는 훌륭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친절하고 안전하다. 수도인 산토도밍고는 콜럼버스와 유럽 침략자(?)들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신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유산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관광보다는 백사장에 물개처럼 누워서 파란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정경을 보며, 싱그러운 바람과 맑은 공기를 맘껏 마시고 싶다고 한다. 예전에는 관광에 더 열중이었는데…
우리 생애 처음으로 팬데믹이라는 인류 재난을 겪으면서, 어쩌면 가장 일상적인 것이 가장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 거다.
드디어 12마리의 물개 떼가 푼타카나 해변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들에게 명당 자리는 해변에 닿아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 주변이다. 칵테일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바도 같이 있고, 무엇보다 Wifi가 팡팡 터지니 사진을 찍고 올리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소고기와 랍스터를 구워 주는데 토론토에서는 일급 호텔에서나 구경할 만한 고급 퀄리티이다.
스테이크는 묻지도 않고 16온스를 뭉텅 내오는 것을 보면 미국산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하다. 캐나다에서는 8온스냐 12온스냐를 꼭 묻는다. 16온스는 거의 없다. 랍스터도 고급지게 꼬리만 구워 준다. 이 지역 특산인 캐리비안 랍스터이다. 미국에서도 플로리다 지역에서나 즐길 수 있는데, 족히 70, 80불은 할 만한 큰 사이즈이다.
여기서는 바로 앞바다에서 건져 올릴 테니 카리브해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런 음식들을 예약할 필요도 없이 해변에서 뒹굴뒹굴하다가 가서 먹으면 되니 이런 호강이 어디 있겠는가? 식당은 이 스테이크 하우스 말고도 더 있다. 매일 메뉴가 바뀌는 뷔페식당과 국가별 특색을 차려내는 스페인 식당, 이탈리안 식당, 일본 식당, 퓨전 식당이 있다.
문제는 이전의 다른 리조트들은 그 나라 이름에 맞춘 음식을 흉내만 내는 정도였는데, 여기서는 쓰리코스 정식으로 옹골지게 차려 낸다. 일례로, 일본 식당은 어느 리조트나 최고로 인기이지만, 그 맛을 잘 아는 우리는 늘 실망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타다끼 참치까지 내오며 제대로 맛을 낸다.
그런데 왜 문제인가? 음식이 이리 풍성하니 오늘은 뭘 먹을까 하는 것이 걱정이고, 돌아갈 때는 물개가 아닌 바다코끼리가 모두 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득 가방 속에 욱여넣은 라면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본다.
푼타카나에서의 물개 생활 사흘째, 호수처럼 잔잔한, 햇살에 데워져 따스한, 일렁이는 작은 물결에도 고요한, 그런 바다에서 여행자의 마음은 착해지고 순해지고 연해진다. 지치고 조이고 급했던 그것이 말랑해진다.
그런데 쿠바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화가 해변에서 도원경을 꿈꾸던 나를 혼란에 빠뜨렸다. 회사의 동업자인 A로부터 온 카톡 전화였는데, 그는 나보다 삼일 먼저 쿠바로 골프 여행을 떠났었다. 바로 옆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전화를 한 것인데, 통화감이 안 좋아서 어렵게 알아들은 내용은 온통 쿠바에 대한 고발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이들이 묵은 Varadero golf Club은 여전히 관광산업에 사활을 거는 쿠바에서 최고의 시설이고 쿠바에서는 사실상 유일한 골프 리조트이자 5성급 호텔인데, 인터넷은 로비에서만 되고 그것도 여권을 맡기고 나서야 개통이 되었다고 한다. Wifi가 해변에서도 팡팡 터지는 여기 도미니카하고는 천지 차이다.
“식당에 고기는 질겨서 먹을 수가 없어서 모두 씹다가 뱉었고, 치즈와 햄은 1인당 제한 공급해 줍니다.”
“샌드위치(그 유명한 쿠바샌드위치)에도 고기가 없어 맛이 없고, 가지고 간 라면이 효자 노릇을 하네요”
“좀 싹싹한 홀 서빙 여직원이 있어서 잘 대해주었더니 오늘 우리 팀의 미스터 김에게 다가와서 소근소근 부탁하는데, 요플레 3병만 매일 식탁에 놔두고 가달라고 하네요. 세 살배기 애가 있어서 간식으로 이걸 꼭 먹이고 싶은데 시장에서는 구할 수도 없고 리조트에서나 공급하는 것인데,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그 즉시 해고가 되니 손님이 먹다가 남은 것을 슬쩍 할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허허~!”
그 나라 최고의 시설에 묵고 있는 여행객이 안부 전화라고 한 것이 어쩌다 먹을 것 타령만 하게 되었을까? 오죽하면 아이 먹일 요플레도 없는 나라가 되었을까?
박면순 | 노스욕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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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원 기자 (press2@koreatimes.net)